이라크 전쟁에 파견됐다가 본국으로 귀환하는 미국과 영국 등지의 언론인들이 약탈된 이라크 예술품과 현금, 무기 등을 전리품으로 챙겨 들어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돼 국제사회의 신랄한 비판을 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지식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오랜 관행'이라고 합리화하고 나서 국제적 반발을 사고 있다.
***폭스뉴스 엔지니어, 밀반입에 약탈물 교환까지**
미 세관은 23일(현지시간) 그림, 금도금된 무기, 장식용 칼, 이라크 국채 등 15점의 귀중품을 압수, 12점의 이라크 그림을 밀반입하다 적발된 뉴스전문 케이블방송 폭스뉴스의 엔지니어 한명을 기소하고 몇몇 언론인들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이 이날 보도했다.
세관 관계자들은 전리품 밀반입으로 기소된 언론인은 폭스뉴스의 위성차량 엔지니어로 6년간 일해 온 벤저민 제임스 존슨(27)이 유일하지만, ‘이라크 문화유산 작전’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도난품이 압수되고 관련자들이 기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존슨은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훔친 그림 12점을 덜레스 공항을 통해 들여오다 적발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지방법원에 형사 고발된 상태다. 존슨이 훔친 그림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장남 우다이의 초상과 아랍 역사 장면이 담긴 그림들이며, 그의 가방에서는 이라크 통화당국이 발행한 채권 40매도 발견됐다.
존슨은 세관 진술 과정에서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존슨은 최초 진술에서 미국 관리들이 그림을 줬다고 말했다가 나중에야 절도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미군들과 서로 약탈한 그림 2점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쟁때 쇼비니즘적 보도태도로 CNN을 제치고 시청률 1위로 올라서 축제분위기에 잠겨있던 폭스뉴스는 이 소식을 접하고 경악, 즉각 성명을 통해 “불행한 사건”이라며 존슨의 소행을 알게된 직후 그를 해임했다고 말했다.
세관 관계자들은 또 보스턴 헤럴드의 기자 한명이 지난 19일 입국시 몰래 들여오던 그림과 기념품 등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상당수 기자들이 유사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밀수가 오랜 전통?**
미군 당국은 이밖에 바그다드의 대통령궁 구내를 수색한 미군 5명이 은닉 장소에서 찾아낸 현찰 6억달러중 약 90만달러를 챙겼다가 적발돼 조사 받고 있으며 신원 미상의 한 군인은 모두 금도금된 AK-47 자동소총과 권총, 칼을 들여오려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군인들도 밀반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언론인들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세관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이라크 국립박물관에서 없어진 물건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 세관의 제이슨 에이헌은 “어떤 물건이건 밀수는 절도”라고 못박은 뒤 “우리는 이라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한만큼 이런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약탈물 밀수에 대해 하바드 정치공공정책대학 소렌스타인 언론 연구소의 마빈 카브 선임연구원은 전쟁에서 노획한 물품을 나눠 갖는 오랜 전통(?)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노획물 나눠갖기는 군인들 사이에서 수천년간 있어온 전통이었고 언론인들에게도 오랫동안 있어왔던 전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집어오는 것과 역사적ㆍ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인류 문화유산을 훔쳐오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언론인들과 군인들의 소행을 비판했다.
카브의 이같은 발언은 그러나 약탈행위를 '관행'으로 여기는 미국사회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의 일단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기저에 깔려있었기에 이라크의 고대문명을 보호해달라는 세계지성들의 잇딴 주문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박물관 등의 약탈행위를 미군이 태연히 지켜볼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게 국제사회의 매서운 질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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