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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식민지전쟁, 16일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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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식민지전쟁, 16일 한-일전

[프레시안 스포츠] 한국-일본, 포르투갈-브라질의 대결

오는16일 서울 상암구장에서 펼쳐지는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팀의 사령탑 포르투갈 출신의 쿠엘류와 일본의 사령탑 브라질 출신의 지코는 모두 포르투갈어로 "비토리아 에 노수(vitória é nosso; 승리는 우리 것)"를 외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일본, 포르투갈-브라질 4개국의 묘한 신경전으로 더욱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한-일전은 축구팬들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사진>코엘류 감독(한국)과 지코 감독(일본)

***식민지 지배국 능가했던 한국•브라질축구**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은 지난해 영화 <YMCA 야구단>에서 봤듯이 대부분 돼지방광으로 만든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한편 포르투갈의 유일한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였던 브라질 축구는 포르투갈인들이 창단한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개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갈 탐험가의 이름을 딴 바스코 다 가마 팀은 백인부호들의 전유물이었던 축구를 흑인, 뮬래토(흑인과 원주민의 혼혈)등의 빈민층에게 개방하는 정책을 표방해 브라질 축구의 초석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한국과 브라질은 국제무대에서 일본과 포르투갈을 압도했다. 단순하게 월드컵 기록만 놓고 봐도 한국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비롯해 본선 6회 진출, 일본은 본선 2회 진출이며 브라질은 우승 5회, 포르투갈은 1966년 4강에 한 번 올랐을 뿐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오랜 식민지였던 프랑스를 격파한 후 거리를 가득메운 세네갈 국민들은 “이제야 진정한 독립을 한 것같다”며 환호했다. 핍박과 설움의 한을 축구로 씻은 세네갈 국민의 심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사람들에도 똑같이 적용돼 왔다.

한편으로는 이겨야 한다는 불굴의 정신과, 또다른 한편으로는 져서는 안된다는 압박감으로 한국축구는 사실상 일본축구를 압도해왔다. 반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국제무대에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서인지 한-일전과 같은 라이벌전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저 포르투갈 축구팬들은 환상적인 ‘삼바축구’의 브라질을 부러워 했을 뿐이었다.

***한-일전 두 가지 명승부 이야기**

한-일전은 친선경기라 할 지라도 강한 민족적 라이벌의식으로 숱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우리가 꼽는 최고의 명승부는 1986년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경기였다.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숙원을 풀기 위해 일본을 꼭 이겨야 하는 입장의 한국은 일본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2대1의 귀중한 승리를 따냈다. 한국은 정용환과 이태호가 연속골을 터뜨려 ‘프리킥의 달인’ 기무라가 한 골을 만회한 일본을 제쳤다.

홈에서 패한 일본은 배수의 진을 치고 잠실로 향했다. 일본과 한국 언론은 일본의 모리 감독과 한국의 김정남 감독간의 선수시절부터 싹튼 라이벌 의식을 소개하며 ‘월드컵 진출’이라는 운명이 걸린 한-일전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7만여명이 잠실축구경기장을 가득메운 상황에서 한국은 역사적인 골을 작렬했다. 스트라이커 최순호의 중거리슛이 골 포스트를 맞고 나오자 허정무 선수는 빠르게 골문으로 쇄도하며 결승골을 뽑아냈고 경기장은 온통 태극기의 물결이 계속됐다.

선 글래스를 끼고 경기를 지켜봤던 일본의 모리 감독은 고개를 떨구었고, 한국의 김정남 감독은 환하게 미소짓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70년대 일본의 명 미드필더 출신이었던 모리 감독과 ‘한국의 베켄바워’라는 닉네임으로도 통했던 수비수 김정남 감독의 명암이 확연하게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반면 일본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최고의 한-일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랑비가 내렸던 일본 요요기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 경기의 초점은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마모토를 한국이 어떻게 견제하느냐에 모아졌다. 한국은 김호 선수가 가마모토를 그림자 수비하며 그의 발을 묶었지만 엉뚱한 선수들에게 2골을 내주어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전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의 만회골에 이은 허윤정의 추가골로 동점을 만들어 경기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골득실에서 불리해 반드시 일본에게 승리를 따내야 했던 한국은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면서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종료 직전 한국의 김기복 선수는 예상치 못한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공은 크로스바를 맞았고 잠시 후 시간은 멎었다. 몇 센티미터차이로 한국과 일본축구 운명이 또 다시 갈린 것이다. 한국축구는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했고 크라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일본축구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스트라이커 공백 어떻게 메울까**

16일 펼쳐지는 한-일전에서는 승패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지는 않다. 물론 두 국가의 강한 라이벌 의식으로 한-일전의 승부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번 경기가 특별한 타이틀이 걸려 있지 않은 친선경기인 만큼 내용적인 측면을 많이 봐야 할 것이다.

유럽파들이 결장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대부분 국내파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믿었던 스트라이커 최용수와 구로베가 각각 소속팀 반대와 부상으로 빠졌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킬러의 부재’로 공격력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화려한 공격축구를 신봉하는 지코나 지난 콜롬비아 전에서 스트라이커의 문제점을 절실히 느꼈던 쿠엘류 감독도 이 점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전체 게임을 조율해야 하는 유상철과 섀도우 스트라이커를 맡게 되는 안정환의 비중이 매우 커진 가운데 팬들은 후반전 교체투입이 가능한 떠오르는 스타 최성국이나 조재진 선수의 깜짝 활약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지코 감독은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쿠엘류가 나와 같은 포르투갈계통인 만큼 서로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꼭 이겼으면 좋겠다”라며 한-일전 필승의지를 다지고 있다. 평소 한-일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쿠엘류 감독도 데뷔 첫승을 일본과의 경기에서 따낸다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자국의 승리여부를 떠나 두 팀이 수준 높은 축구경기를 펼쳐 이번 한-일전이 ‘아시아축구의 축제’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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