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기업의 매각을 주선하며 사례금을 받은 이유로 지난 달 27일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장직을 사임한 리처드 펄 의 또다른 과거 돈벌이 행각이 미 언론에 폭로되면서 부시행정부내 강경파의 정상배(政商輩) 본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캐리커쳐>
펄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 차관보를 지냈고 부시 행정부내에서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핵심 보좌관으로 이라크전쟁 계획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강경 매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New Yorker)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최근 엄청난 사실 하나를 폭로했다. 뉴요커 3월 17일자에 '국방정책위원장과의 점심식사(Lunch with the chairman)'라는 제목으로 실린 허쉬의 기사는 지난 1월 있었던 펄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뒷거래를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보여준 펄의 뒷거래는 30여년간 '국방'을 명분으로 사리사욕을 채웠던 그의 행적의 전형이요 결정판이었다.
펄의 사임으로 잇따라 재조명되는 그의 과거 비행은 이번 사퇴를 몰고온 사례금 수수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테러 지원 말라'면서 뒤로는 '우리 회사 투자하면 봐준다'**
허쉬 기자는 테러를 돕고 있다는 이유로 사우디 정권을 비난하던 펄이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사우디 왕실의 투자 계약과 무기 판매를 성사시키고자 지난 1월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사우디 기업인들과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펄은 국방정책위원장직에 있는 동시에 국토 안보 및 방위와 관련된 기업인 트라이림(Trireme)의 경영 임원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무기를 사우디에 팔고 수백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동료 임원을 시켜 사우디 유력 인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동료 임원은 편지에서 유럽이나 사우디,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트라이림이 생산하는 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를 받고 프랑스 비밀접촉을 주선한 사람은 사우디의 유명한 무기 거래상 아드난 카쇼기였다. 카쇼기는 평소 사우디 왕실과 미 중앙정보국(CIA) 양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로 80년대 이란-콘트라 추문과 빈 라덴 일가와 관련된 BCCI은행의 붕괴에 중요 역할을 한 것으로 악명높다.
비밀 접촉에서 투자에 대한 설명을 펄에게서 들은 카쇼기는 트라이림이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허쉬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란 것이 없다면 왜 보안 장비가 필요하겠나. 전쟁은 펄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줄 것이다"며 테러리즘을 없애기 위해 일으킨다는 전쟁의 이면에 있는 트라이림의 음모를 전했다.
트라이림 파트너의 경영진에는 미 국방정책위원이 세명이나 있고 그중 하나가 위원장인 펄이라고 자랑하는 편지를 받은 카쇼기는 자신이 비밀 모임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편지에 언급된 나머지 두명의 국방정책위원은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펄의 사업 동료 제럴드 힐만이다. 특히 힐만은 특별한 공직 경험과 군사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펄에 의해 천거된 인물이다.
***후세인 망명 타진설의 진원도 1월의 비밀 모임**
1월의 비밀 모임에는 펄, 카쇼기 외에도 사우디의 기업가이자 부호인 알 주하이르가 참석했다. 그는 펄에게 이라크 전쟁을 막을 몇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이 있고 나서 펄의 동료 힐만은 알 주하이르에게 편지를 보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망명하면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협상을 시도했다. 힐만의 서한은 사우디와 레바논 언론에 유출되었는데 현지 언론들은 이 계획을 펄과 사우디 정부와의 협상으로 묘사했다. 이는 얼마전 나돌았던 미국의 후세인 망명 타진설의 진원지가 펄과 카쇼기 등이 참가한 1월의 비밀 모임인 것을 뜻하고 있다.
이 모임과 관련, 주미 사우디 대사인 반다르 술탄 사우디 왕자는 펄의 행동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우디 정권 흔들기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펄은 이중적"이라며 "한쪽에서는 수억달러의 거래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사우디가 일만 성사시켜주면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누그러뜨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하고 있다"고 허쉬 기자에게 말했다.
국방정책위원장이라는 공직에 있으면서 국방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기업 투자금 마련을 위해 국가 정책을 내다 팔며, 경험이 일천한 인물까지 국방정책위원에 등용시키면서 기업의 이익을 좇았던 리처드 펄. 허쉬가 밝혀낸 미국 매파의 그늘이다.
***펄, "허쉬 기자는 테러리스트"**
아무도 모를 줄로만 알았던 1월의 비밀 모임이 폭로되자 펄은 허쉬 기자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CNN의 울프 블리처 기자는 지난달 9일 펄과의 인터뷰에서 "펄은 후세인 제거가 옳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그의 회사는 전쟁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허쉬의 기사를 읽어 주었다. 펄은 이같은 결론을 반박하는 대신 전쟁으로부터 개인적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은 "완벽한 난센스"라고 깎아내렸다. 그는 자신의 회사는 순전히 본토 방위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할 뿐이라며 허쉬를 "무책임한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리처드 펄의 '화려한' 과거사**
그러나 펄의 과거 행적은 허쉬의 결론이 '난센스'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국방부 고위 관리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리를 챙겼던 펄의 과거사는 실로 화려하다.
마크 크리스핀 밀러 미 뉴욕대 교수는 <자유언론 2000년>에서 펄을 "노골적인 이익추구로 출세한 인물"로 묘사했다. 밀러 교수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제 안보 담당 국방장관보였던 그가 5만달러의 사례금을 준 이스라엘 무기제작사의 무기를 국방부가 구입하도록 촉구하는 글을 써 말썽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이스라엘 집권 강경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과 연계를 맺고 있다고 국제사회주의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wsws.org)에 지난달 13일 게재된 글이 밝히고 있다.
한편 언론 재벌 소유의 '홀링거 디지털' 최고경영자였던 펄은 군수산업과의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 해 국방부 사업권을 주선했다. 그는 또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국방정책위원으로 당시 국방장관 체니를 보좌하면서 군수 업체인 메모렉스사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워싱턴에 있던 터키 로비회사에 고용돼 있었으며 FMC사의 고문, FMC-터키 합작 회사의 군사 장비 관리자도 겸했다. 레이건 행정부 당시 펄은 터키에 대한 군사 원조를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었다.
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를 유출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헨리 잭슨 상원의원의 보좌관이던 70년대 초 이스라엘 대사관에 기밀문서를 제공하기도 했던 펄은 87년 <비망록>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지필했는데 당시 국방부는 이 소설이 국방부의 기밀서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에 관해 조사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펄은 국방장관보 자리를 그해 4월 그만두고 제목을 <강경노선>으로 바꿔 소설을 냈다.
***럼스펠드, "펄은 청렴과 명예를 지닌 사람"**
펄은 일주일전 국방정책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이번에는 미 통신기업 글로벌크로싱과 중국계 업체들간의 합병을 성사시켜 주는 대가로 12만 5천만 달러의 사례금을 받은 일로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프레시안 3월 28일 보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달 27일 펄의 사임 소식을 전하며 "펄은 미국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국방정책위원장을 훌륭히 수행했다"며 "나는 펄을 오랫동안 알아왔고 그가 청렴(integrity)과 명예를 지닌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다"고 평했다.
돈벌이와 사욕 추구로 점철된 과거사를 '청렴과 명예'로 추앙하는 럼즈펠드는 펄에게 위원장직은 사임하더라도 국방정책위원에는 계속 남아줄 것을 간청, 그의 기반을 여전히 남겨주었다. 펄은 럼스펠드의 '선처'를 이용해 또 어떤 돈벌이를 꾸밀 것인가.
미국 매파의 그늘은 더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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