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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는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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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는 모성

<바그다드 리포트> 미 평화운동가의 현지보고

'바그다드 리포트: 어머니들과 아이들, 그리고 구급약 상자(Report from Baghdad-Mothers,Kids and Crash Kit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정치잡지 <카운터펀치(www.counterpunch.com)>에 소개된 한 편의 기사가 전 세계 어머니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비록 미국이 정밀폭탄과 초대형폭탄으로 이라크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지만, 지금 이라크의 어머니들은 병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절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캐시 브린스는 "정말 나의 조국 미국이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라고 절규하며, "병든 아들을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겠다"는 한 이라크 어머니의 눈물겨운 모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바그다드 리포트'의 전문이다. 편집자

***'바그다드 리포트: 어머니들과 아이들, 그리고 구급약 상자'**

바그다드 폭격은 19일(현지시간) 새벽 5시 35분에 시작됐다. 나는 독자들에게 뭔가 얘기할 게 있어서 펜을 들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인터넷 센터가 문을 열고 서버가 가동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바그다드의 거리가 폭격으로 황폐해졌고 상점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인터넷 센터가 문을 연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느꼈다. 모든 사람들은 미국의 또 다른 공습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는 폭격이 새벽 4시 이후에 시작됐다고 들었다. 나는 뉴스위크 기자로부터 새벽 2시에 전화를 받았다. 캐시 켈리도 전화를 받고 깨어 있었다. 우리는 동료들을 깨우기 위해 호텔방의 문을 두드렸다. 동료들은 서로에게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구급약 상자 외에 또 무엇을 가져가야 할 것인가?

이것은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이 시작됐으므로 뭔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평화운동가 가운데 일부는 '이같은 상황을 처음 겪는다' '함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 혼자 이런 고난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에는 이라크 사람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머물고 있다. 그중 일부는 가족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도 있다. 따라서 호텔에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는 폭격의 굉음과 건물의 진동을 느끼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호텔정문에서 15야드 정도 떨어진 1층 로비에 있는 카페에 모였다. 신시아가 나에게 귀마개 한 주머니를 주었다.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귀마개를 나눠줬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귀마개를 받고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들 중 일부는 지하의 피신처로 들락날락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1층에서 서성이거나 해가 떠오르고 있는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몇몇은 또 무차별 폭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잠시 동안 밖을 거닐었다.

한 명의 이슬람 여신도는 울음을 터뜨렸고 또 다른 사람은 그녀를 위로하며 일으켜 주었다. 구부정한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왔다갔다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녕 나의 조국 미국이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나는 하느님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했다. 나는 폭탄이 떨어지는데도 계속 기도를 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에 동참한 것이다. 매 15분마다 폭격은 간헐적으로 계속됐고 몇 시간 후에는 멈췄다. 우리는 미국의 정밀폭탄은 후세인을 겨냥한 것이라는 정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의 '충격과 공포'전술은 엄청난 양의 폭탄으로 이라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었으면…'**

베테조와 나는 오늘 아침 늦게 호텔에 들른 대학생이자 택시 운전사인 월리드 덕분에 오후에 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월리드는 우리를 아동병원에 데려다 주었고 우리 일행중 일부는 물 치료 클리닉이 있는 곳에서 텐트 두개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텐트는 여성들을 위한 4인용 텐트였고 또 다른 것은 남자들을 위한 6~8인용 텐트였다. 이 텐트는 병원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설치됐는데, 텐트를 친 이유는 이라크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가운데 일부가 텐트에서 머물며 병원을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병원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본 것은 부상자가 발생에 대비해 하얀 시트가 깔려있는 병원침대들이었다.

소아암(癌)과에는 환자가 없어 조용했다 . 화학요법 치료를 받아야 하는 소아과 환자들이 많았어야 했지만 병원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이라크의 가정주부 아드라와 그녀의 다섯 살배기 아들만을 제외하곤 모든 환자들은 폭격을 피하려고 집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의 가정주부들은 (아무리 미국이 정밀한 폭탄으로 병원과 같은 곳은 피해를 안 준 다 해도)폭격의 위험 때문에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드라의 아들인 아타리드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집에 두 명의 아들이 더 있는 아드라는 아들 아타리드를 집으로 데려갈 수 없다.

아드라는 우리들에게 "만약 아타리드가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는다"라고 절규했다. 나는 "아타리드가 얼마나 오랫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아드라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아타리드가 죽을 때까지요"라고 답했다.

"미국에 있는 어머니들도 세상의 다른 모든 어머니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아드라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우리는 아드라와 아타리드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편지와 이 사진을 보낸다. 사진을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보고, 또 그 카메라로 자신과 어머니의 사진을 찍어보며 아타리는 처음으로 생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가야겠다. 시간이 다 됐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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