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출자총액제한 제도, 증권관련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3대 재벌개혁 과제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노 당선자가 "현실을 왜곡오도하면서 신 정부의 정책의지를 흔들고 시험하려고 하는" 세력으로 전경련을 지목한 대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분위기다.
노 당선자의 이같은 격노로 오는 7일 예정된 차기 전경련회장 선출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며, 손병두 부회장 등 현 전경련 지도부의 사퇴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전경련, 나를 시험하는가"**
노 당선자는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 3대 재벌개혁 과제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인수위 경제1분과 정태인 인수위원이 4일 전했다.
정태인 위원은 이날 "노 당선자는 전체회의에서 간단히 새해인사를 한 뒤 작심한 듯 재벌개혁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면서 "노 당선자는 '앞으로 전경련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3대 과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노 당선자는 또 "재계가 자꾸 재벌정책을 흔들고 있고 심지어 왜곡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면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면 허위공시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게 정 위원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점진적·자율적 개혁'을 강조하던 노 당선자의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이 강경책으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은 이와 관련, "기존 재벌정책 기조와 근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서 "재벌정책이 강경하게 선회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정순균 대변인은 그러나 "노 당선자는 최근 전경련 등 일부 재계가 현실을 왜곡하거나 오도하면서 신정부의 정책의지를 흔들고 시험하려고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해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그룹들의 움직임에 노 당선자가 격노하고 있음을 전했다. 그는 또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 의지가 확고하며 재벌정책을 확실히 추진하겠는 뜻을 재계에 표명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가 크게 격노한 것이다.
***화해 제스처에도 계속되는 저항에 격노**
이같은 노 당선자의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표명은 최근 전경련의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게 인수위 주위의 전언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28일 집단소송제 도입, 출자총액 제한제도 강화,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금융사 계열분리제 등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재벌개혁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계속 천명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지난 연말 경제 5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며 각종 규제 등 정부 간섭을 최대한 줄이겠다"면서도 "정치가 합리적으로 변하듯이 다른 분야도 변하도록 도와 달라"며 재계의 자발적 개혁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말 대선직후의 김석중 전경련 상무의 '사회주의 발언',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의 '한국에는 재벌이 없다'는 발언, 재벌개혁정책에 대한 반대입장 표명 등 저항이 계속되자 개혁 의사를 분명히 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 지도부 물갈이해야"**
노 당선자측의 이같은 강경 분위기는 노 당선자의 경제브레인인 김효석 민주당 의원이 4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전경련 지도부와 체제의 전면쇄신'을 촉구한 대목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김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전경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대대적 개혁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우선 전경련의 시대착오적 멘탈리티를 신랄히 비판했다.
"전경련이 과거의 개발독재, 관치경제, 또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 시대에는 나름대로 기능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 모형 가지고는 안 된다. 전경련은 이번에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우리가 국민의 정부 5년 내내 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뭘 또 더 하란 말이냐, 이런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 전경련도 좀더 개방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 과거에 경제성장을 독점했던 재벌들이 이런 멘탈리티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5년 동안 개혁을 해왔는데 좀 정리를 해보자. 우리가 어떤 것을 성취한 반면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하면서 일을 해나갈 생각을 해야지. 우리가 할 만큼 했는데 뭘 또 하란 말이냐. 이건 좀 아니다.
전경련이 대한상의와 통합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지만, 또 그걸 우리가 통합하라 마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전경련의 기능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제주체든지 글로벌한 시대에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서로 도우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아마 경총도 비슷할 것이다. 지금까지 끌어온 책임자들은 좀 심하게 얘기하면 극우적인 생각, 친기업적인 생각을 가졌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균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좀 어렵지 않겠나."
김 의원은 이같은 변화를 위해선 전경련의 현 지도부 교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경련이나 경총이나 실제 운영하는 상근 부회장들은 꽤 연세가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젠 좀 젊으신 분들, 새로운 개방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 맡아서 같이 일을 해나가는 게 좋겠다. 정부하고 대화를 해 나가면서 과연 어떤 게 진정으로 기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금 전경련이 이야기하는 게 진정으로 기업을 위하는 길이라고 보지 않는다. 기업을 위하는 길은 기업이 우리 사회에 파고들어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사랑받는 것 아닌가. 그래야 기업도 사회 속의 하나의 산물로 살아남는 건데... 좀 바꿨으면 좋겠다."
한마디로 말해 손병두 부회장, 김석중 상무 등 문제인사들을 대거 물갈이하라는 주문에 다름아니다.
***'재벌개혁론자 김종인 차기부총리 되나' 긴장**
재계는 노 당선자가 재계에 대한 분노를 공개리에 표출하자, 향후 미칠 파장을 분석하며 부심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우선 7일 예정된 차기 전경련 회장 선출에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다. 전경련은 '빅3'의 오너가 모두 회장직을 고사하자, 외유중인 손길승 SK회장을 일방적으로 후보로 내정한 상태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전경련의 최근 행태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자, 그동안 회장직을 고사해온 손회장이 이를 수락할지 여부를 자신 못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손병두, 김석중 등 전경련 상임집행부의 전면교체도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관측이 급속히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인수위는 그동안 '사회주의 발언' 파문을 빚은 김석중 상무의 교체를 공식요구해왔다.
아울러 노 당선자의 이번 분노 표출로 차기 경제부총리가 강력한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전 경제수석으로 굳어져 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힘을 얻어 재계를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노 당선자의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은 오는 12~14일 예정된 전경련 국제경영원 주최 '새로운 희망, 새로운 리더십, 경제강국을 향한 대도전' 신년포럼에서 강연자로 초청받은 자리에서 천명될 것으로 알려져, 재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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