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얘기만 나오면 참으로 답답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1년 3월 퇴임 국무위원 및 수석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당시 2000년 8월부터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오다 퇴임하며 이 자리에 참석한 노무현 당선자는 "새만금 사업을 시작할 때는 갯벌의 가치 중요성 효용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갯벌의 가치가 상승해 갯벌을 오히려 복원하는 추세"라고 새만금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새만금 얘기만 나오면 답답"**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르고 노 당선자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노 당선자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에는 종전의 입장과는 달리 새만금 간척사업에 찬성하는 쪽이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친환경 정책을 표방한 노 당선자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반대하던 새만금 개발을 찬성하는 것은 전북을 고려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며 "지금이라도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생태계 보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대선기간에 '새만금사업 신구상 추진기획단' 구성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후 노 당선자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아직 새만금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새만금사업 신구상 추진기획단'은 이름만 언급됐을 뿐, 새만금 사업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수위에서는 경인운하사업 재검토, 북한산 관통도로 백지화 등 친환경적인 방향에서의 사업재검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유독 새만금 만큼은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노 당선자에게는 새만금이 김대중 대통령만큼이나 '답답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새만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작품**
새만금 간척사업은 서산, 시화, 영산강 등 간척사업들 중의 하나였다. 새만금 지역도 간척 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새만금 지역의 계화지구 등도 간척에 의해 새로 생겨난 땅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당시 경제성 등을 고려했을 때 회의적인 상태였으나, 87년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새만금사업 공약을 발표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89년 당시 농림수산부가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91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방조제 공사가 진행됐다.
96년 '시화호 폐수 방류'는 새만금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주장을 불러왔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될 것이 뻔하다며 사업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98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는 새만금사업의 전면적 재검토를 결정했고, 99년에는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환경영향 민관공동조사단을 발족시켜 재조사에 들어갔다.
1년간의 환경영향 조사를 마친 뒤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수질과 갯벌 문제를 들어 반대의 뜻을 내비쳤고, 시민ㆍ환경ㆍ종교ㆍ지역단체와 전문가들의 문제제기가 줄을 이었다. 논란 속에 지연되던 사업은 결국 지역 여론 등에 밀려 2001년 수질개선 문제 등의 대책을 포함한 '순차적 개발안'을 최종 확정하고 간척사업을 재개했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사업이 전북지역의 득표를 노린 민주당의 작품"이라며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된 새만금사업이 다시 정치적 목적에 의해 강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새만금사업의 주관사인 농업기반공사의 임원들을 보면 '정치색' 있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신임 배희준 사장은 민주당 배기선 전 사무총장의 형이고,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과 전남 문태고 동기동창이다. 또 새만금 사업단장이었다가 올해 이사로 승진한 임채신 이사는 인수위 임채정 위원장의 동생이다. 두 사람이 농업정책 분야의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친인척 관계만을 두고 볼 때, 새만금사업 강행이라는 정치권의 논리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새만금 간척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총 4만1백ha의 갯벌과 바다를 막아 2만8천3백ha의 농지와 1만1천8백ha의 담수호를 조성할 목적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 방조제 공사는 총 33km 중 73%인 24km정도가 진행됐다.
***화려한 간척의 역사**
간척사업은 그동안 국토가 좁은 한국에 국토확장의 대 역사(役事)로 칭송 받았다. 지금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산 간척사업 당시 물살이 빨라 막지 못하고 있던 방조제 마지막 구간을 해체직전의 폐유조선으로 막은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쌀의 증산과 식량자립이 절박했던 시기에 간척사업은 국민의 생존을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 새만금사업도 주목적은 농지의 조성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쌀 공급 과잉으로 정부차원에서 쌀증산정책을 포기하고, 13만ha의 농경지를 축소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2만8천3백ha의 농지를 만들겠다는 농림부의 새만금 간척사업은 상호모순 된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수조원이 들어가고 국가의 지도를 바꾸는 거대한 사업이 불과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농림부는 "현재 우리나라가 쌀을 자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곡은 기상재해 등 언젠가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항상 여유 있게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새만금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001년 발표된 한국갤럽의 국민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66.3%가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고 있으며, 국민의 83%가 합의절차를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새만금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이러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행되는 새만금사업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농림부는 농민들을 위한 사업이라고는 하나, 정작 농민들은 새만금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새만금 간척지에 대규모 담수호가 조성되면 수질관리를 위한 상류지역의 환경규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김제평야의 농민들은 비료 사용량의 30%를 줄여야하고 축산농가도 강제적 감축을 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새만금지구는 계획된 토지이기 때문에 대규모 농장이 들어설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소농의 경쟁력만 하락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30년 동안 6조원이 넘게 드는 공사에 들어갈 돈을 차라리 농가부채를 해결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 일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라북도의 개발요구에 새만금 간척지가 별로 도움 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유종근 전 전북지사는 새만금 간척지의 1/3을 최첨단 공단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지는 현재 용지 개발 목적상 농지로만 사용할 수 있으며, 감사원은 공단조성을 위해서는 29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새만금호의 수질대책으로 환경부가 제안해서 채택된 전주권 그린벨트의 녹지보전은 전주권 개발요구에 의해 이미 건설교통부로부터 그린벨트 해제를 결정 받은 상황이다.
농지개발이익과 갯벌이익 중에 어떤 것이 더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냐는 논쟁도 치열하다. 새만금 사업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새만금에 서식하는 어족 자원과 환경정화 능력은 간척을 통한 농업 이익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1년 1월 노 당선자가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시절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조사 결과, ha당 농지가치는 최대 1천3백8십3만원인데 반해, 갯벌은 최대5천5백4십3만원으로 갯벌이 4배정도 더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농림부는 현재 새만금에서 거래되는 갯벌의 가격이 농지에 비해 1/10수준이며, 농지가치에 대한 평가는 이미 99년 민관공동조사단의 검토에서 갯벌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99년 발표된 세종대 세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간척으로 인한 농지 이외의 담수호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자원과 생태적 가치를 반영하면 농지가 갯벌보다 2.6배 정도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발표됐다.
***새만금, 1조의 공사비 투입 불구 4조5천억 더 필요**
지금까지 새만금사업에 1조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됐다. 완공을 위해서는 앞으로 4조5천억원의 혈세가 추가로 투자돼야 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새만금 갯벌생태계와 전북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악을 멈춰야 한다"며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전북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장지영 팀장은 "농림부 측에서는 어떻게든 방조제만 완성하면 새만금사업을 완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일단 방조제 건설을 중단하고 새로운 대안 모색에 노 당선자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담수화를 포기한 죽음의 호수 시화호는 한국의 간척개발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화호를 만들고 죽음의 호수를 만드는데는 십수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시화호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른다.
정치적 선택은 정치 상황의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훼손된 자연환경은 어떠한 정치적 변화에 의해서도 살릴 수가 없다. 과연 새만금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되새겨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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