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라오스에서 잡힌 9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필자는 5월 3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탈북 루트가 되어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ODA(공적개발원조)를 늘려서라도 탈북자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는 데 도움을 받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라오스 정부는 탈북 청소년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대사관은 완전히 왕따시킨 반면, 북한 대사관과는 찰떡 공조로 청소년들을 평양으로 보냈다. 그런 차별대우가 '관계'의 심도 때문이라 보았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런데 필자의 그 같은 주장이 효과가 난 것일까?
최근 외교부가 2014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라오스에 대한 ODA 액수를 대폭 증액 편성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올해보다 137.6%가 증액된 48억 4900만 원을 라오스에 대한 ODA로 배정해줄 것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한동안 줄어든 원조를 증액하기로 했다는 후문을 접하면서 지난 5월 라오스 정부가 왜 그랬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주던 걸 안 주거나 줄이면 섭섭해지고, 그러면 상대에 대한 대접이 달라지는 건 개인이나 국가나 다들 똑같다. 우리 외교부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동남아 탈북 루트가 된 라오스에 대한 지원은 탈북자들의 안전과 한국입국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지난 5월 라오스에서 적발돼 북한으로 송환된 청소년들이 지난 6월 20일 평양에 있는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했다. ⓒ로이터=뉴시스 |
그리고 외교부는 제3국에서 남한으로 오고자 하는 탈북자들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전담팀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한국 국적이 없으면 우리 정부가 그들을 보호·관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도 해결하려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정부가 제3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보호·관리하기 위해서는 국적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일반적으로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일정 기간 특수시설에 머물면서 탈북의 진정성을 심사받게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불만도 있지만, 정부가 이런 과정을 반드시 거치는 것은 북한 공작원의 위장 탈북이나 북한 주민으로 행세하는 제3국 동포들을 가려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짜 탈북이라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주민등록번호도 나오는데, 이런 일을 남의 나라에서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 정부의 이런 적극적 대응과 조치에 대해서 북한은 당연히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그들 나름의 대응을 할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을 둘러싼 남북 외교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그것이 두려워 주저하거나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예산삭감이나 인력부족을 구실로 흐지부지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정부의 대내 행정이나 대외 외교가 왕왕 처음에 소문은 요란하게 내놓고 나중에는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번의 대응과 조치도 시작만 요란하게 끝날까 염려스럽다. 이는 인권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관심과 문제 제기의 효과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우리 국민들과 언론,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 제기는 당위성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계속되어야 한다. 일련의 관심과 문제 제기는 현실적으로 효과를 내었다. 지난 5월 말 결국 강제 북송된 9명의 라오스 탈북 청소년들은 체제 홍보성 행사에 동원되기는 했지만, 당초 언론의 예상과는 달리 처형되지 않았다. 아마도 9명의 청소년들이 강제 북송되면 극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 국제적으로 제기되고 보도되자 북한도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한 것이다. 이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문제 제기가 최소한 견제구(牽制球)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탈북청소년들을 곱게 다룬 북한은 지난 7월 3일 유엔의 장애인권리협약에 서명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의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장애인권리협약 서명은 2009년 4월 헌법 개정 이후, 인권관련 법제 정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 당국이 인권 존중 내지는 인권 개선에 대한 의사를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지난 2009년 4월 9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에 처음으로 '인권 존중 및 보호'를 명시했다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8조 2항)고 규정했다. 이전까지 북한은 변호사법, 형사소송법, 인민보안단속법(舊 사회안전단속법) 등 하위의 개별 법령에서 '인권'을 형식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막상 상위법인 헌법에는 인권 조항이 없었다. 상위법에 근거조항이 없는 하위법의 규정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고, 자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에 인권조항이 들어간 사실에 의미를 주었고, 일종의 북한 인권의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 제기의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9년 4월 헌법 개정 이후 북한은 대내적인 차원에서 인권 관련 법규들을 정비했다. 2010년 7월 8일 노동보호법, 2010년 12월 22일 아동권리보장법, 2010년 12월 22일 여성권리보장법을 비롯해 일련의 인권 관련 법규를 제정해 왔다. 이번 북한의 장애인권리협약 서명은 김정은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인권 관련 조치다. 그리고 이것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이 국내법 정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법, 즉 국제적 수준에서 인권 기준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둔다. 그리고 이는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와 국제사회가 기울였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내외적인 입법조치나 국제협약 가입을 정치적 선전차원의 행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변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2012년 1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 3차 핵실험 감행 등으로 악화된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키고, 경제지원을 받아들이기 위한 전술 차원에서 장애인 문제를 이용했다고 혹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행위에 의구심이 들더라도 인권법제를 정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의 출발이라고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국회와 정치권의 사보타지(Sabotage)다
지난 7월 31일자 한 일간지에 영국의 20~3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단체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국제인권단체들의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은 초기에는 정치범수용소의 고문과 처형 등에 대한 고발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식량권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올 봄에 설치된 유엔 북한인권특별조사위원회(COI)도 8월 19일이나 20일부터 서울에서 공식적인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며, 탈북자들을 상대로 북한 인권 실태에 관한 증언을 듣는다고 한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 유엔이 움직이고, 멀리 영국의 젊은이들까지 나서고 있는데 우리 국회는 여야가 북한인권법안만 상정해 놓고 그 이후 어떤 후속조치도 안 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 국회는 북한인권 관련 입법 조치를 언제쯤 하려고 하는 것일까? 9월 정기국회 개회는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각 당별로 법안은 이미 연초에 상정해 놓았다고는 하는데, 각 정당별로 이와 관련된 공청회를 열거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또 해를 넘기지 않나 싶다.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주민들의 인권은 우리의 책임에 속하는 문제다. 제3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보호·관리하려는 정부의 조치는 그들을 돌보아야 할 최종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서 국제사회보다 앞서가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국제사회만큼도 노력을 안 하는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금년 정기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심해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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