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았던 합의의 성과들을 직시해야
북한이 6차 회담 결렬 이후 배포한 자료를 근거로 판단해 보자. 사실 많은 성과가 있었다. 우리 정부가 국제화 방안으로 제시한 ① 외국기업 유치 장려 ② 노무, 세무, 임금, 보험, 관리운영 등 관련제도의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 ③ 제3국 수출 시 특혜 관세 인정 등을 북한이 모두 받았다. 물론 이 조항들이 현재 개성공단에서 얼마만큼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 지난 25일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6차실무회담 종료 후 박철수(왼쪽) 북측 수석대표가 남측 기자실들이 머무는 프레스룸을 방문해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이날 박 수석대표의 돌출 행동 이후 남북 간 접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
먼저 외국기업 유치 장려를 보자. 정부는 아마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기업이 들어가면, 북한이 공단을 함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른바 개성공단의 국제화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검토해 본 적이 있는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때문에 들어가기 어렵다. 이익대비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 경제제재 완화는 북한에 요구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중국기업들은 어떤가? 중국기업들은 들어갈 수 있다. 미국기업들처럼 대북투자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기업이 개성에서 생산한 상품의 물류는 어떻게 될까? 우리 국내 내수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원산지를 북한으로 하고 민족 내부거래로 허용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중소기업들을 고려할 때, 정부가 권장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노동집약 업종들의 소비시장인 미국에 수출할 수도 없다. 중국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중국으로 갖고 간다고 할 때 물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과제다.
제3국 수출시 특혜관세 인정 조항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자유무역에 가까운 나라들, 싱가포르나 아세안과 같은 나라들은 한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개성공단 제품을 무관세로 인정해 주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다. 경제제재를 취하고 있고 한미 FTA에서도 개성공단에 해당되는 역외가공지대 인정문제는 복잡한 전제조건이 해결되어야 가능한 문제다. 특혜 관세는 북한도 원하는 부분이다. 이 또한 북한에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 해결해야 할 과제다.
3통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인터넷과 이동전화 통신을 보장했다. 얼마나 중요한 합의인가? 북한은 지금까지 통신 주권을 이유로 이 문제를 반대해왔다. 인터넷이 가능해지면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현재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은행은 사실 은행이 아니다. 인터넷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환율결정을 비롯한 정상적인 은행 업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로 정상적인 은행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적 문제가 협의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동통신 허용이 갖고 올 변화들도 결코 적지 않다. 그만큼 북한의 개방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재발방지 문항, 왜 협상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합의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결렬의 원인이다. 바로 재발방지에 관한 부문이다. 우리 정부는 '통행제한과 근로자 철수 등 일방적 조치를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 개성공단 중단 사태의 직접적 이유가 북한의 통신선 차단과 출입통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공단의 정상운영에 저해를 주는 정치적 군사적 행위를 일체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남측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마지막 회담인 6차 회담에서 북한은 수정안을 제시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업지구의 정상운영을 보장하며, 그에 저해되는 일을 일체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표현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3차 회담부터 북한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표현을 고수했다.
협상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북한이 제시한 최종 수정안은 일단 남측 책임을 강조한 표현(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행위중단)을 삭제했다는 측면에서 진전된 표현이다. 그리고 문장 앞절(정세 영향 받지 않고 정상운영 보장)은 정경분리 원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 표현(저해되는 일을 일체하지 않기로 함)이다. 정부는 군사훈련 등의 이유로 북한이 공단을 다시 중단시키는 명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협상의 기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왜 그러지 않았는가? 가장 바람직한 표현은 "남과 북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업지구의 정상운영을 보장한다"고 하면 된다. 뒷부분을 삭제하는 것이다. 재발방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 방안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개성공단에 대한 정경연계는 우리 정부가 먼저 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5.24 조치에 포함된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 금지나 통행제한은 정경연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서로 앞으로 그러지 말자 하는 것과 반드시 북한의 일방적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는 주장 사이에는 인식의 격차가 너무 크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살리겠다는 솔선수범의 자세가 있다면, 얼마든지 북한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재가동 시점도 마찬가지다. 재가동과 제도마련은 병행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제도 개선 노력이 끝나야 재가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재가동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입장을 왜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성공단의 주인은 바로 투자기업이다. 재발방지 약속을 근거로 곧바로 공단을 재가동하고, 양측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비한 제도 개선에 힘써 달라는 것이 기업의 일관된 요구다. 정부가 협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우리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애타는 심정을 왜 외면하는가?
이대로 중단시킬 것인가?
정부가 협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경직된 자세를 유지하다 회담이 결렬되자, 최후통첩을 꺼내 든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도 좋다는 뜻인가? 중요한 합의 내용들이 적지 않은데, 단지 자존심과 관련된 몇 가지 표현 때문에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야 하는가? 이념의 색안경을 벗고 해당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협상력을 발휘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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