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민주당의 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이 끝난 직후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갖고 "정치구조가 변화될 수 밖에 없는 토대 위에 있고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정계개편 추진을 예고했다.
하지만 노 후보는 "막상 후보가 직접 나서서 정계개편을 할 거냐... 이제는 당과 상의하고 또 당 바깥의 사람들과도 상의하면서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계개편을 스스로 주도하기 보다는 당 내외 공론화 과정에 따르겠다는 한발 물러선 자세를 취했다.
노 후보는 또 정계개편과 관련, 김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을 포함한 민주세력 대통합을 주장하며 "이는 민주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복원한다는 의미이지 두 사람이 정치로 복귀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후 후보 재신임 문제와 관련 노 후보는 "영남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는 약속은 변함없다"고 재삼 확인하고, "재신임의 구체적인 방법은 당에서 찾아줄 것"이라며 당이 결정하는 어떤 방법이든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인제 고문과의 관계 설정에 관해 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사퇴한 이인제 고문과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내가 만나 인사하고 그런 것보다 그분이 바라보는 정국의 전망이 결정적인 것"이라며 이 고문의 향후 행보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대통령 간접 사과, "현단계에서 적절했다"**
노 후보는 또 '급진적'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경선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이) 일부 수구 언론 등에서 공격을 받을까봐 당의 정강 정책보다 한발 물러나서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내가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착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우리 당의 정강정책과 아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당과 항상 협의해서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불안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을 불안하다고 느낀다"면서 "나는 정치는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경제정책이나 한국 사회의 문화는 안정된 토대 위에서 서서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불안하다는 평가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들 비리 의혹에 대해 간접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검찰이 대통령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하라는 뜻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현 단계에서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인터뷰는 민주당 서울지역 경선이 열린 잠실실내체육관 기자회견실에서 이루어졌으며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이후 프레시안의 추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정관용 : 우선 축하드린다. 감회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좀 놀라지 않았나.
노무현 : 오래 전에 놀랐다. 점차 상황이 굳어지고 나서 점차 마음이 가라앉고 지금은 담담하다.
정관용 : 언제부터 '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노무현 : 3월 16일 광주경선 이후다.
정관용 : 경선을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노무현 : 어느 한 순간보다는 제주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이 어려웠다.
정관용 : 그때 어떤 마음 고생이 가장 심했나.
노무현 : 지금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 경선을 막상 해보니까 모든 것이 우리가 예측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행되고 새로운 정치의 흐름이 많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것을 부분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나도 변화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분열의 정치 극복, 새로운 정치질서 만들 수 있느냐가 첫째 관심"**
'노무현 당신은 좋은데 계보가 없지 않나, 측근 정치인이 없지 않나, 돈도 조직도 없지 않나, 현재 지지도가 낮지 않나.' 이런 평가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로서는 힘들었고 내 스스로도 내가 그동안 주장해 오던 것이 막상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는 흔들렸다.
정관용 : 이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방금 마친 후보 수락연설 제목도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서 개혁과 통합의 시대로'인데, 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쟁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노무현 : 결국 이 시기의 정치적 과제가 뭐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이냐, 이런 것이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소위 권위주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첫 번째 관심이다.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겠는가.
그 다음에는 우리사회에 앞으로 위기가 온다면 기술이나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원칙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빈곤에서 비롯된 위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신뢰와 원칙을 바로 세워나갈 수 있느냐, 이것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중요한 과제이자 역량을 필요로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정관용 : 정치개혁과 국민통합 그리고 신뢰와 원칙의 구축이라는 세 가지를 지적했다. 한나라당 보다는 민주당이, 그리고 노무현 후보가 어떤 측면에서 이 세 가지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노무현 : 예를 들면 낡은 정치라고 했을 때 우리가 얼른 떠올릴 수 있는 게 제왕적 총재 또는 계보정치, 측근정치 이런 것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 줄 세우기 문화, 그래서 자발성과 창의성이 죽어버리는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한나라당 경선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제왕적 지도자와 줄 세우기가 이뤄지지 않나.
***"한나라당은 분단 논리와 냉전주의"**
이에 비해 우리 민주당은 계보정치가 깨어져 나가고, 측근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돈도 조직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후보가 낡은 정치 청산 등 정치개혁을 이루는데 적합하다.
국민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이회창 전총재가 분열의 한 구조에서 지역정서, 타 지역에 대한 불신과 증오감을 부추겨 정권을 잡아보겠다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무현은 호남사람의 꼭두각시다', 이런 분열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분열주의 정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남북대화의 성공이 한국의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번영에 정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여기에 대해 한나라당은 냉전적 사고를 가지고 상호주의라든지, 자존심이라든지, 돈이 아깝다든지,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민들은 분단의 논리와 냉전주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시대의 정치적·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상대적으로 이회창 전총재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겠는가.
정관용 : 한번의 격전에서 승리했지만 본선이 기다리고 있고 아직 기간도 많이 남아 있다. 최우선 과제가 당의 단합과 화합을 어떻게 이끌 것이냐는 문제인데 당 대표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노무현 : 나는 제도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보가 소위 제도적으로 지휘와 명령 권한을 갖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타협과 대화를 통해 협력의 관계로 풀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인제 고문 정치적 입지 스스로 선택할 것"**
그리고 민주당의 지도자들을 보면 욕심들이 더러 보인다. 그러나 팽팽한 순간까지 이해 관계 다툼을 하다가도 결국 막판에는 극적인 타협을 이뤄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량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을 이끄는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어느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정관용 : 조금 더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당의 중심은 대통령 후보인가, 당 대표인가.
노무현 : 집단지도체제이기 때문에 당 최고위원회다. 그러나 그 중심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기 합리적 상식과 공론이라는 판단 기준이다. 그것은 당 대표도, 후보도 거역할 수 없다. 국민적인 여망이랄지 압력이랄지 이런 것을 수렴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정관용 :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많은 후보가 사퇴했다. 그분들을 만날 계획이 있는가.
노무현 : 김근태 고문은 이미 만났다. 전화통화를 한 분도 있다. 한분 한분 기대와 나에 대한 평가에 따라 조금씩 내가 만나자는 제안에 대해 반응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상적인 상태, 말하자면 서로 협력하는 상태로 갈 거라고 믿는다.
정관용 : 이인제 고문은 언제 만날 계획인가.
노무현 : 지금 싱가폴에 가 계신데... 마음의 상처가 크지 않겠는가. 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안정되고 그러면서 주변 기류를 다 수렴해 보실거다. 그리고 나서 어떤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적절하게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도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 인사하고 그런 것보다 그분이 바라보는 정국의 전망이 결정적인 것이다.
정관용 : 선거대책위원장은 누구를 했으면 좋겠다거나 이런 계획이 있나.
노무현 : 그동안 정국운영에 관한 판단은 젊은 참모들과 내가 의논해서 결정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당에서 정치적 경험이 많이 있는 분들, 또는 경험이 좀 적으면서 변화를 지향하는 분들을 적당하게 배치해서 논의 구조를 만들어 그 안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김원기 고문께 그 팀을 좀 조직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정관용 : 그 팀에서 선대위원장은 누가 좋겠다, 대선 전략은 어떻게 짜는 것이 좋겠다, 이런 기초가 나오는 건가.
***"대통령과 후보 관계 당 지도부와 상의하겠다"**
노무현 : 그렇다. 단순한 기술적·전략적 문제라면 전문가들이 해야겠지만 정치에 관한 한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그 팀에 맡기겠다.
정관용 : 정권재창출이라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또 중요한 것이 대통령과 후보와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그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된다고 보는가.
노무현 : 과거에 당 대표와 대통령 사이에서 주례 회동을 해 왔듯이 꼭 주례회동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한번씩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역할도 분담하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사분쟁이나 의약분업 같은 큰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2-3년 뒤까지 일관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서로 협약을 맺지 않나. 이런 문제 때문에 현직 대통령과 앞으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그런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큰 갈등들이 풀려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정관용 : 대통령 선거가 있기 까지 국정 쟁점에 개입하겠다는 말인가.
노무현 : 그렇지 않다. 원칙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의 관계가 그렇다는 말이고, 한국에는 그런 전통이 없다. 이번에도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막혀있고 다시 복원할 수도 없다. 더욱이 이제는 당 지도부와 후보와의 관계도 전하고 달라졌다.
여러 가지 모색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좀 어렵다. 당 지도부가 구성 되는대로 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논의할 생각이다.
정관용 : 이제 첫 관문이 지방선거 아니겠는가. 영남권에서 패배하면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는 약속은 변함없는 것인가.
노무현 : 그렇다. 내가 자신을 갖고 한 얘기고 반드시 성공시켜내려 한다.
정관용 : 필승의 전략은 혹시 가지고 있는가. 공개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노무현 : 당이 국민들에게 비전과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후보. 그 다음에 그 시기 국민들이 간절히 소망하면서도 미처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던 변화의 욕구를 찾아 일으켜 내는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하면 재신임 방법 당에 맡길 것"**
부산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너무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바라면서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그래서 침체된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의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폭발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후보의 개인적 지명도 보다 후보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나 이미지가 중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후보를 내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관용 : 새로운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노무현 : 문재인 변호사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도 지금은 고사하고 있고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한두분 더 검토하고 있다.
정관용 : 만약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인가.
노무현 :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약속을 무력화시키고 회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서 실제로 그 말의 본뜻을 뒤집어 버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법이냐'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재평가를 받을 의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은 당에서 찾아줄 것이다. 내가 까다롭게 이 조건과 이 방법은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한번 판단해 보라...
정관용 : 당에서 결정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재신임을 받겠다는 뜻인가.
노무현 : 그렇다. 당이 합리적인 기준을 내놓게 되어 있다
정관용 : 방금 마친 후보수락 연설문 안에 '지역분열로 흩어진 개혁세력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정계개편론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정계개편을 추진할 의사가 있는가.
***"정계개편 당 안팎과 상의해 적절한 태도 취하겠다"**
노무현 : 그것이 한국정치의 새로운 비전이고 필수적인 비전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다. 또 민주당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막상 이제 후보가 직접 나서서 정계개편을 할 거냐... 이제는 당과 상의하고 또 당 바깥의 사람들과도 상의하면서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한국의 정치구조가 변화될 수밖에 없는 토대 위에 있고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정관용 : 김대중 대통령 뿐 아니라 김영삼 전대통령도 곧 만나겠다고 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이 바로 정계개편에 대한 논의를 하려는 것 아닌가.
노무현 : 구체적으로 논의하기엔 조금 빠른 시기다. 또 그분은 제가 옛날에 모시던 어른이다. 지금도 공과 과가 함께 있지만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아주 큰 발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당장 내가 쫓아가 실무적인 얘기를 논의하는 것 보다는 인사를 드리고 예의를 갖추면서 '혹시 바쁜 일이 있으면 한 말씀 주십쇼' 넌지시 여쭤볼 수는 있겠다.
정관용 :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부산·경남권에 김영삼 전대통령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노무현 후보가 과거 정치의 지역주의적 논리를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무현 : 많은 국민들이 '3김 청산'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권위주의 정치, 계보정치, 측근정치의 청산을 의미한다. 그분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하되 자기의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 그리고 그 역사와 오늘 현재 사이에 있어 정통성은 꼭 있어야 한다. 모든 나라가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민주세력의 역사를 복원해낸다는 상징적 의미로 김영삼 김대중 두분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바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분들이 정치로 복귀하라는 뜻이 아니고.
***"내가 말한 것은 당의 정강정책과 가장 유사하다"**
정관용 : 경선 과정에서 급진적이다, 불안하다, 이런 평가가 있었다. 본선 공약들을 준비해야 할텐데 당이 정해주는 대로 하겠는가, 아니면 후보의 색깔을 드러내겠나.
노무현 : 실제로 우리 당의 정강정책을 들여다보면 내가 말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일부 수구 언론 등에서 공격을 받을까봐 당의 정강정책을 써놓은 대로 말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앞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착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당의 정강정책을 분석해 보면 어느 후보보다 내가 잘 맞는다.
정관용 : 노 후보 정책노선이 당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인가.
노무현 : 그렇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제는 당과 항상 협의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끌고 간다기보다는 협의해서 끌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안하다는 얘기는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을 불안하게 느낀다. 나는 한국 정치에 대해 강력하게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치는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경제정책이나 한국 사회의 문화는 안정된 토대 위에서 천천히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관용 : 대통령 자제분들의 문제는 대통령이 판단해서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26일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대국민 사과 표명을 했다. 이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부족하다고 보는가.
***대통령 간접사과, "그 정도면 적절하다"**
노무현 :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나서기엔 이르고 내가 나서야 할 만한 상황도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 것이다.
대통령께서 간접적이나마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이것은 '검찰이 내 눈치를 보지 말고 수사하라'는 당연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검찰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수사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문화가 대통령 눈치를 보게 한다. 부자지간이 얼마나 애틋한가. 그래서 검찰이 멈칫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국민 사과로 일단은 우려를 불식시켜 줬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그 정도면 적절하다.
이상은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프로그램의 인터뷰 내용이며 이하 내용은 프레시안의 추가 인터뷰 내용임. 편집자
정관용 :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 정부의 정책 중 반드시 계승하겠다는 것과 고쳐야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만 말해달라.
노무현 : 국민의 정부 정책 중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은 바로 남북대화, 대북정책이다. 그 부분은 지금 가고 있는 기본적인 방향으로 계승 발전해 나가야 된다. 아울러 외교정책도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것은 꼭 뜯어고치겠다는 것보다는 여러 부분이 시행착오가 걸려있거나 또는 이해집단들 사이에 타협이 잘 되지 않아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부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정책 내용보다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이 용의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매끄럽게 풀어가는 정치적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사정 위원회도 좀더 발전적으로 잘 운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외에 많은 갈등에 대해 좀 깊숙한 개입 등을 통해 시행착오를 잘 극복하고 국민적 동의를 최대한 받아서 정책의 추진력을 높여 나가겠다.
정관용 :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은 방향과 방법이 다 옳았고 나머지 정책에 있어서는 방향이 문제가 있다기보다 방법상의 문제가 있어 이를 고쳐나가겠다는 지적인가.
노무현 : 그렇다.
정관용 : IMF 이후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 왔다는 비판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있다. 노 후보는 노동자와 가장 친숙한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복안이 있나.
노무현 : 노동자나 서민계층이 고통을 많이 받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들에게 고통을 전담시켰다고 하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불가피하게 생긴 고통이고 그것이 빈부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 서민 위한 특별 배려하겠다"**
이젠 위기를 극복했으니까 새로운 정책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소득을 늘려나가는 정책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자유주의다 아니다, 이런 큰 체제논쟁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들을 평가하면서 좀더 실질적으로 토론하고 평가해 가면서 정책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기간동안 너무 많은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 그분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은 여러 차례 드렸다.
정관용 : 대미관계와 관련해 최근에 FX 사업 기종선정 과정이 국내와 해외에서 쟁점이 됐다. 이것을 계기로 젊은 층 사이에 강한 반미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노무현: 알고 있다.
정관용 : FX 기종 선정이 잘 됐다고 평가하는가.
노무현 : 그것이 경제적 사업이라면 쉽게 자료를 보고 어느 정도 논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 반도체 매각에서 보듯이 경제적 거래에서도 그것이 얼마만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 평가하기 참 어렵다. 그런데 FX사업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수준을 뛰어넘는 대단히 복잡한 정치적·안보적 전략요소가 함께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무기를 사면서 그 무기를 쓰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그 무기를 쓰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전략적·정치적 판단이 수반돼야 하는 문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또는 일반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다. 바로 이런 것을 맡기기 위해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이 부분은 좀더 시간이 흘러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겠나. 어느 쪽에도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FX 사업에 대한 평가, "경솔한 판단 않겠다"**
정관용 : 말씀 도중에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는 자료도 충분치 못하다는 표현은 그래도 정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니까 정부의 결정이 옳다고 봐야한다는 얘기인가.
노무현 : 말하자면 미국의 압력이라든지 절차에 있어서 들러리였다든지 이런 얘기는 있었어도 동북아시아의 정치적·군사적 질서를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는가 하는 쟁점, 또한 그에 덧붙여 안보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느냐에 대한 토론이 있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앞으로 안보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느냐. 북한이나, 아니면 중국과 일본이 군비경쟁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면 한국 군사력의 역할이 무엇이냐. 이런 것은 외교적 관계 때문에 함부로 내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안보적 관점이 전부 고려돼야 FX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다.
또 무기의 거래가 실제 군사력보다는 정치적 거래인 경우가 더 많은 것이 국제질서의 현실이다. 그러면 무기를 사면서 그 무기를 쓰자는 것이 아니라 그 무기가 필요 없는 정치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치적 타협도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부분은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갈 지도자의 판단에 대한 우리의 신뢰이고 그 판단을 잘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면 그건 민족의 복이다. 일반적인 상업상의 거래처럼 평가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관용 :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본선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노무현 :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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