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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책임회피로 문제 키워

건보 통합 핵심 조건인 ‘소득파악률’ 제고 회피

여야는 26일 건강보험의 재정통합을 한시적으로 연기한다는 데 의견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건보 재정통합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 위기는 일단 피했으나 근본적 대책 마련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건강보험 통합의 최대 장애물중 하나인 의사, 변호사 등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지난 2000년 6월 헌법재판소는 '보험료 부담의 평등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자영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하라'는 요지의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조세 저항과 민심 이반 등을 우려해 이 문제를 회피해 왔다. 반드시 선택해야 했을 정책적 결단을 피한 대가로 정치권에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만 셈이다.

건강보험 통합은 의약분업과 함께 현 정권 개혁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DJP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인 98년 2월 정권인수 과정에서 노사정위는 건강보험 재정과 조직의 통합을 추진한다고 합의, 이를 위한 법 제정 절차가 시작돼 99년 1월 여야가 대치 중 여권이 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당시에도 자영업자의 소득이 파악되지 않아 보험료 부과에 형평성이 무너진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현재 이런 이유로 유예가 거론되고 있으나 새로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당시 이 법안이 통과된 뒤 사유재산인 직장의보의 적립금을 사실상 국가운영의 지역의보에 통합하는 것은 재산권침해라는 논리로 재개정을 주장했을 뿐이다.

그 후 정부는 99년 7월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신고소득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자 2000년 7월에 조직을 통합하되 재정은 2002년 1월에 통합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이 때 그동안 건강보험통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한국노총이 재정통합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조직통합 과정에서 직원 4천3백명을 내보낸 의보의 조직적인 저항도 만만찮게 일어났다. 직장의보는 고의적으로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대신 부족한 보험금을 적립금에서 꺼내 쓰는 방식으로 적립금 2조6천억원을 까먹기 시작했다. 의보노조는 파업을 일으켰다.

직장의보 조합원들은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2000년 6월 합헌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재는 ‘보험료 부담의 평등을 보장하는 기반인 소득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시행되는 만큼 국가는 자영자의 소득 파악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절차와 법적,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권고했을 뿐이다.

건강보험이 파탄에 이른 원인은 2000년 7월부터 실시된 의약분업. 의약분업으로 보험금 지급액이 예상외로 급격히 증가하면서 의보 재정적자는 2000년 1조90억원에서 2001년에는 4조1천9백78억원이 됐다. 2000년 말 적립금 9천1백89억원을 감안하더라도 순부족액 3조2천7백89억원으로 예상됐다. 이중 2001년 의약분업에 의한 추가부담액은 3조7천억원으로 추산됐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3월 경질되고 4월 감사원이 특감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가 다시 불거져 11월 한나라당이 건강보험 재정분리를 당론으로 확정한 데 이어 노사정위는 3년 전의 합의를 뒤엎고 재정통합의 유보 또는 재정분리운영을 결의했다. 재정‘적자’라는 폭풍이 재정‘통합’이라는 뿌리까지 흔들어버린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재정통합의 유예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현 정부 개혁정책의 근간이라는 점 때문에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드디어 12월 24일 재정 분리를 반대하는 김홍신 의원을 교체한 후 상임위에서 재정 분리안을 통과시켰다. 재정통합을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같이 이르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건보재정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으나 여야가 건강보험을 정책보다는 정치 투쟁의 도구로 삼은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통합 분리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뒤 본회의 통과는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했다. 여권은 내년 1월 재정통합을 강행하겠다고 하는 한편 협상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여야가 여전히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재정통합이 예정대로 실시되든 아니면 유예되든, 법 제정 당시의 논란이 그대로 재연되고 혼란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30% 정도인 자영업자의 실질 소득 파악률을 높일 수 없다. 소득 노출은 곧바로 세원 노출이므로 자영업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이들을 상대로 ‘소득 파악 전쟁’을 벌일 경우 정부 뿐만 아니라 내년 두 차례의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도 커다란 부담을 지게 된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을 미룬 채 재정통합을 강행한다면 자영업자의 보험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경영자 단체와 한국노총의 반대를 또 한번 억누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스스로 부담만 키운 꼴이다.

정치권이 은근히 재정통합의 유예가 아니라 재정분리로 가는 방안을 바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건보재정의 분리는 재정통합을 위해 들인 비용과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DJ 개혁정책의 파탄은 물론이고 사회 안전망 구축에 구멍을 낸다. 그럼에도 지난 5월 정부가 내놓은 재정 안정 대책은 이미 신뢰를 잃었고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의 힘만으로는 재정통합을 밀어붙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권이 정치적 이해 득실을 냉철하게 판단한 뒤 일부 정치적 부담을 지는 방법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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