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일부 언론, 공세로 전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일부 언론, 공세로 전환

"소송 두려워 보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최근 명예훼손 소송에 대한 언론사의 대응이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언론사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송을 의식, 사회적 의록 보도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올해 들어 공직자의 소송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혹보도를 활성화하면서 이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또 비록 하급심이긴 하지만 법원의 판결도 의혹보도의 원칙을 새로 제시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는 최근 소송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분당의 백궁-정자지구 비리 의혹과 국정원 2차장의 비리 연루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한국일보 편집국 간부는 “나름대로 사실관계 확인에 최선을 다했고 공공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소송이 두려워 보도를 미루거나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보도 후 성남시와 김은성 당시 국정원 2차장(현재는 사임)은 허위보도로 피해를 봤다며 각각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일보는 소송에도 불구하고 경영진 쪽이 최근 일련의 보도를 격려했으며 소송에 대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기자의 취재과정과 자료 등 증거를 준비해 법정공방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최근 검사들로부터 여러 건의 소송을 당했고 일부 패소했음에도 비리 의혹 보도의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도 최근 대형 비리 의혹사건에서 수사관계자의 발언 등을 근거로 보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80년대부터 명예훼손 소송은 언론사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언론계에 몰아친 명예훼손 소송은 언론계 내부를 흔들기 시작해 지금은 언론사간에도 거액의 소송이 줄을 잇는 전대미문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중앙언론사 간부는 “옛날엔 편집국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술집 외상값을 남겼지만 이젠 법정소송을 남긴다"며 "소송액만 40억원을 남겼다”고 말했다. 80년대 명예훼손소송을 당한 한 기자는 이 때문에 출입처까지 바꿔야 했으며 이로 인해 “내 인생역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명예훼손소송이 본격화한 지난 10여년간 언론 취재관행의 변화는 거의 혁명적이었다.

92년 중앙 언론사들은 해외유학 사기사건에서 ‘유명여배우의 공모사실이 확인되었고 그가 미리 미국으로 도피해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수배 중’이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종전의 관행처럼 발표자료에 없는 이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가 손해배상판결을 받았다.

95년에는 청부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혼 주부의 이름을 실명으로 보도했다가 배상판결을 받았다. 97년에는 회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회사원에 관해 검찰의 공식발표가 아닌 구속영장만을 보고 보도했다가 결국 이 회사원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음으로써 허위 보도라 하여 패소했다.

99년에는 방송사가 아파트 매매계약을 둘러싼 분쟁 사건에서 당사자의 동의없이 목소리를 방송했다가 음성권 침해로 배상판결을 받았다. 2000년에는 조폐공사 수사검찰이 용의자를 감청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 내용을 근거로 쓴 사설이 ‘감청 사실을 전제로 쓴 것이어서 이를 암시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패소했다.

한 지방신문사는 한 도의원이 김정일에게 남북교류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를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자 이를 ‘김일성 애도 편지’라고 보도했다가 손해배상 건은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되고, 정정보도와 형사고발 건은 각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승소하는 무려 3건의 지루한 소송을 벌여야 했다.

이처럼 소송이 급증하자 기자들은 법정에 나가 자신의 수첩을 보이며 취재과정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고역을 겪었다. 또한 진실오신의 상당성(보도 내용이 오보로 밝혀졌더라도 취재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도로 근거가 있고 충분히 취재를 했으면 면책), 전문보도의 법리(공인의 말을 그대로 보도하면서 그 말이 진실이라는 인상을 주는 과장이나 설명이 없으면 일정 범위 내에서 면책), 개별적 연관성(보도 내용으로 보아 주위 사람이 보도의 인격권 피해자가 되는지 여부) 등 들어보지도 못한 법률용어를 접하게 됐다.

언론사는 이 과정에서 소송에 대비해 취재매뉴얼을 만들고 기자들에게 법률교육을 받도록 하고 고문변호사를 위촉하는가 하면 소송보험에 들기도 했다.

이같이 10여년간 소송 사태를 겪었음에도 법원은 “기자들이 아직 언론보도에 신중함이 부족하고 인격권에 대한 배려가 미흡하다”(윤재윤 서울지법 부장판사)고 말하고 있고 언론은 “법원의 기대수준이 워낙 높고 취재 현실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김진원 중앙일보 기자)고 한다.(언론중재 2001년 가을호에서 인용)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신문방송학)의 조사에 따르면 90-99년 10년간 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은 1백39건. 이중 72.7%인 1백1건이 언론사 패소였다.

최근의 이슈는 공직자의 명예훼손소송. 90년대 10년간 공직자가 낸 명예훼손 소송은 12건으로 이중 11건이 언론사 패소였으며 평균 손해배상액은 5천4백만원이었다. 일반인의 평균 배상액은 1백61만원.

97년 9월 김해시 공무원이 언론사를 상대로 3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고 98년 4월 진주경찰서 경찰관이 1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지방공무원이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이 본격적으로 표면에 떠오른 것은 99년 6월 서울지검 검사가 KBS 기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이후. 지난 2년간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검사, 병무비리 수사 군검찰관, 대전 법조비리 당시 대전지검 근무 검사, 기무사 장교,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 등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줄줄이 승소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공직자가 낸 소송은 20건 가량에 총 소송가액은 7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정부가 공직자의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부 측에서는 공직자 개개인의 소송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공직자의 공무 수행과 관련한 법적인 보도 기준이 아직 명확하고 세밀하게 판례로서 확립되지 않은 까닭에 일어나는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도 공직자에 관한 보도는 미국처럼 보도 내용이 허위이며 악의에 의한 것임을 입증할 책임이 공직자에게 있다는 ‘현실적 악의의 법리’를 법원이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에 관한 보도일지라도 그 진실의 입증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는 것이 확고한 판례이다. 대법원이 97년 판례로서 확립했고 98년 재확인했다.

동아일보 정동우 이슈부장은 최근 언론중재위 주최로 열린 정기세미나에서 “최근 정부기관이나 검찰 등 공인들이 제기하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법부의 판단은 오히려 더욱 엄격한 듯하다”며 “현실적 악의의 이론은 공직자와 관련한 보도의 경우 언론보도의 면책 범위를 넓혀 사회비판기능을 활성화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호순 교수는 “공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자유를 다른 인격권이나 명예권과 동일시해 사안별 이익형량을 측정하는 관행을 버리고 언론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법적 기준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의 전제로서 언론은 이해 당사자의 반론을 신속 정확하고 균형있게 보도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중견기자는 “공직자의 소송도 그들의 권리행사이므로 이를 두고 언론의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며 “현실적 악의의 법리는 미국의 가치규범에 따른 것이며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공인에 대한 보도도 명예훼손을 피해나가야 마땅하다”며 “취재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해야 할 경우 유보적 중립적으로 보도해야지 심증만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현재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에서 △발언을 가감없이 전달해 독자에게 발언 내용이 진실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경우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논평 △공개회의의 보도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면책되고 있다.

다만 형사 처벌과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가 99년 6월 ‘시간과 싸우는 신문보도에 오류를 수반하는 표현은 사상과 의견에 대한 아무런 제한없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고 이러한 표현도 자유토론과 진실확인에 필요한 것이므로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같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서울지법 민사25부가 의혹제기보도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 최근의 변화.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주장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며 그 주장이 명예훼손을 당하는 쪽의 주장과 대등 또는 유사한 정도로 볼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위법성이 조각(위법성이 없어짐)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차형근 변호사는 “취재기자의 법적 부담을 덜어주는 의미있는 판시”이라며 “그럼에도 의혹 제기 발언이 사실보도인 것처럼 비치고 균형관계가 나타나지 않으면 법정공방에서 사실입증책임을 지고 있는 언론사로서는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관련 판결 해설 참조)

언론사간의 소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법원은 지난 4월 언론사간의 소송 사건 판결문에서 손해배상 건은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으나 정정보도 청구 건에 대해서는 ‘언론사 사이에 있어 상대방의 태도나 입장이 자신과 다를 때 올바른 여론 형성의 틀을 깨뜨리지 않는 한 이를 비판하여 견제할 자유가 있어야 하며 또 이러한 표현은 폭넓게 수인(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기각했다.

장호순 교수는 관훈저널 2001년 겨울호에 게재될 논문에서 “언론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상대에게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때에는 언론자유가 위축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언론사간의 소송은 스스로 여론의 공론장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공직자나 공공인물이 아닌 일반인에 관련된 명예훼손 관련 법리는 수많은 소송을 거쳐 익명보도의 원칙이라는 대전제가 확립되면서 거의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에 관해서는 공인의 범위, 원고의 적격, 프라이버시의 범위, 사실확인 의무의 수준, 논평과 사실적시의 경계 등의 논란에 이어 최근 제기된 상반된 주장의 대등한 근거에 관한 세밀한 판례가 더 나와야 하며 그때까지 법조계와 언론계는 지난한 역정을 계속 거쳐야 할 것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