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이들 단체들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여 정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로비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에서 이제 선거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형태의 정치 참여를 시도하고 있다. 교육개혁이나 의료개혁을 둘러싼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들 단체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하게 한 원인이다.
이러한 정치 참여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로비를 통해서 음성적인 방식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공개적인 정당 지지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비는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정과 비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활동인 반면, 정치 참여는 공개된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당과 단체들의 관계를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다.
모든 개인과 단체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정치적인 선호를 공개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보장받아야 될 권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지금까지 금지되어 왔고 또한 꺼려져 왔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정권에 반대하는 정당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가 정권 안위를 위협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익단체들의 정치 참여를 금지시켰었다. 대표적으로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노조의 정치 개입을 금지해왔던 주된 이유가 바로 권위주의 정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가 정치적 의견이나 지지 정당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몇 사람만 모여도 정치 이야기를 한다. 정치가 일상적인 담론의 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정치와 더불어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적인 차원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대단히 제한이 되어 있었다. 그 결과 정당들은 일반 시민이나 지역주민의 참여가 없는 특정 개인의 정당으로 변했고, 정치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밀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는 다섯 가지 점에서 한국의 정치 문화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보다 구체적인 사회집단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게 되는 정당 본연의 기능이 활성화될 것이다. 정당은 사회계급 혹은 사회집단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변하는 조직이다. 지역주의가 정치화되어 정치의 발전을 막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 정치가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는 데 이익집단의 정치참여가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교총이나 의사협회뿐만 아니라 많은 이익집단들의 정치 참여를 촉발시킬 것이다. 노동조합은 물론 각종 시민단체들까지 특정 정당에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할 수 있는 정치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적 입장 표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사상의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와 단절되어 있는 많은 시민사회 조직들을 정치적으로 재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까지 특정 정당과의 연계는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면 선호하는 정당에 따라서 개인과 집단을 결집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시민사회의 정치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한국인은 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정치 참여는 대단히 저조하였다.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는 일반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촉진시켜, 참여 정치 혹은 참여 민주주의의라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장기적으로 이익단체의 정치 참여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약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지역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다양한 이익단체들이 고유한 집단의 이익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우,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라는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지역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경우, 한국의 맹목적인 지역주의는 사라질 수 있다.
다섯째, 이익단체의 정치 참여는 3김 시대의 종식을 앞당길 수 있다.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정치는 냉철하게 이익과 손해의 계산에 기반을 둔 정치이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에서 벗어나 보다 냉철한 손익계산은 3김처럼 감정과 정서에 근거한 지지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익단체의 정치 참여가 감정의 정치에서 계산의 정치로, 맹목적인 정치에서 합리적인 정치로의 전환을 촉진시켜, 한국 정치의 인적 쇄신을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위적인 3김 청산이 아니라 자연적인 3김 청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우려되는 바도 크다. 현재와 같이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당체제로 인하여 이익단체들도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 이익단체들의 지역주의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 결과 지역주의를 둘러싼 정당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익단체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정치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지역주의로 분열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이 보여주는 정치적 관심의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나, 한국 정치는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의 하나는 근대적인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당에서 권력을 가진 당수 한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정당의 정치인들은 유권자들보다는 당수에서 충성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왔다. 유권자들에게 충성하지 않더라도 공천만 받으면, 지역주의에 기초하여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익단체의 정치 참여는 이러한 정치를 질적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정당이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를 첨예하게 인식하고, 특정 이익단체의 이해관계를 정당들이 대변하고자 할 때, 정당들은 점차 근대적인 정당 즉 정치 이데올로기와 정책적 차이를 보여주는 정당으로 전환될 것이다. 즉 서구적인 계급정당화가 정당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의사협회의 정치 참여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조합의 정치 참여 모두가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변화이다. 한국정치의 변화 조짐이 교총과 의사협회의 정치 참여 선언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근대 서구 정치의 본질이 바로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에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화제 거리가 아니라, 직접 참여의 대상이 될 때, 한국의 정치도 한 발짝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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