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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천재, 제 머리도 못 깎는 민주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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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천재, 제 머리도 못 깎는 민주주의자?

[프레시안 books]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

1.

'프레시안 books'의 독자라면 '러셀의 역설'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거나, 적어도 그 말을 들어보긴 했을 것이다. 러셀의 역설은 말 그대로 러셀이 발견한 역설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집합들의 집합을 A라고 하고, 그 A의 원소가 되는 하위 집합들을 a, b, c, d, 등으로 표기해볼 수 있다. 여기서 집합 a는 자기 자신, 즉 a를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다. 집합 b 역시, 다른 모든 것들을 원소로 가질 수 있지만, 오직 집합 b 자신만은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집합 A속에는, 그 원소로 A가 다시 포함될 수 있을까? 만약 A의 원소로 A가 들어간다면, A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이라는 최초의 정의와 모순된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해버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는 집합들의 집합이라는 정의가 어긋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집합 A에 A가 원소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라는 본래의 정의에 충실하게 되지만, 엄연히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 중 하나인 A를 빠뜨리는 셈이 되어, 역시 스스로의 발등을 찍게 된다.

러셀 자신이 이 희한한 역설을 발견한 후, 그것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들었던 예시를 다시 꺼내보자. 어떤 마을에는 이발사가 단 한 명 있는데, 그는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이다. 따라서 다른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그는 아무 문제 없이 깎아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떨까? 만약 그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른다면,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라는 정의와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줘야 하는데, 분명 그 이발사는 자기 자신의 머리를 깎고 있지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이발하고 있지 않는 한 자신의 머리를 이발해줘야 하는 역설에 부딪치게 된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잠시 검색해본 후, 머리를 끙끙 싸매며 '러셀의 역설'에 대해 다시 써본 것이니만큼, 위 내용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독자 여러분은 고민하실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저 역설의 본질이다. 러셀의 역설은 어떠한 정의나 규칙을 재귀적(再歸的)으로 적용할 때 발생한다. 그리고 그 역설에는, 오늘 이 서평의 주인공인 버트런드 러셀의 이름이 붙어있다.

2.

▲ <인기 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함께읽는책
이 서평에서 다루게 될 <인기 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와 같은 대중적 저술을 빼고 나면, 러셀의 이름을 후대에까지 기억되게 해준 것이 바로 저 '러셀의 역설'이지만, 정작 러셀 본인은 그것을 찾아낼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는 알프레드 N.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집필하여, 모든 수학적 사고의 논리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모든 과학은 수학적 사고 위에서 작동한다(고 당시의 지식인들은, 적어도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의 '과학'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과 철학 등을 너끈히 포함해내는 넓은 개념이었으므로,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계획은 모든 지식과 학문을 흔들리지 않는 논리적 토대 위에 쌓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학과 수학의 연결고리 노릇을 하는 집합론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러셀 본인이 그것을 발견해내고야 만 것이다.

학문적 기획이 좌절되어버렸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젊은 시절부터 지속되어온 사회 참여 및 현실적 사안에 대한 발언의 욕망이 남아있었다. 더구나 그는 원하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어도, 그 과정에서 중요한 수학의 발견을 해낸 천재였다. 수학이 모든 지적 작업물의 모순 없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 덧붙일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증명된 것이다. 적어도 러셀이 무슨 말을 할 때, '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저런 소리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할 만큼 용감한 사람은,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학, 논리학, 분석철학의 역사에서 러셀의 역설은 불멸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동시에 그것은 러셀의 학자로서의 경력에서 정점을 찍는 것이기도 했다. 10년에 걸쳐 수학과 논리학의 기초를 탐구했지만, 그 깊숙한 땅바닥 속에서 깨뜨릴 수 없는 바위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 자체가 대단한 업적이긴 하지만, 극소수의 동료가 읽는 전문적인 논문을 쓰는 학자로서의 러셀은 큰 좌절을 맛보았다. 그의 인생은 그 후로 줄곧, 마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올라간 다음부터는 외부의 동력을 제공받지 않고 굴러가는 롤러코스터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내리막길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러셀은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고, 미국의 참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당연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평화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했지만, 나치의 반문명적인 행태 앞에서 비교적 호전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나니, 수학과 논리학 영역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던 안티 히어로는 어느새, 말하자면 '국민 멘토'가 되어있었다. 주변의 불만과 공권력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해온 그는, 말하자면 서방 자유세계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조지아대학교 사학과 교수 커크 월리스가 2009년판에 쓴 서문을 인용해보자. 러셀은 영국의 위대한 과거를 계승하는 살아 있는 증거, 더 나아가 사악한 파시즘과 소름끼치는 나치즘을 이기고 살아남은 서양 문화 전체의 강건한 상징"(14쪽)이 되었다. 일흔 살의 노인이 된 그에게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후로 러셀이 쓴 책은 거의 모두 예외 없이 잘 팔려나갔다. 이 서평의 대상이 되는 <인기 없는 에세이>도 그런 책이다. 워낙 러셀의 인기가 높아졌고, 그의 이름이 붙어 있으면 내용과 무관하게 잘 나간다는 것을 알아챈 출판사가, 말 그대로 이전까지는 그리 큰 호응을 받지 못했거나 책으로 엮여 나온 적 없는 에세이를 모아서 '패기 넘치는' 제목을 붙여 내놓은 것이다. 물론 제목과 달리 <인기 없는 에세이>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서 쓴 다음의 에세이들은 대부분 투쟁의 기록으로서, 그 목표는 이제껏 우리의 비극적인 세기를 특징지었던 교조주의가 좌파에서도 우파에서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는 것"(23쪽)이었다고, 러셀 자신이 <인기 없는 에세이>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말마따나 이 책은 전반적으로 교조주의, 독단주의, 비과학적인 맹신을 조롱하고, 대신 건전한 회의주의, 경험주의, 과학적인 검증에 기반한 지적 활동을 옹호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평화를 유지하던 유럽 국가들 사이에 갑자기 서로 전쟁을 하자는 들뜬 분위기가 휩쓸고 지나갈 때, 난데없이 유대인을 몰살시켜서 순수 아리안 혈통의 국가를 만들자는 자들이 여기저기 전쟁을 선포할 때, 그럴 때에는 인기가 없었을지 모를 내용이지만, 영국과 미국과 이른바 '자유세계'는 두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책을 묶어 내는 러셀 본인 뿐 아니라, 한때의 열렬한 애국 청년들마저도 이제는 부담 없이 이런 내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라는, 나치라는,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인류를 진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스탈린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악이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그런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4.

▲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제껏 대다수 문명국가에서 철학은 거의 언제나 정부 당국의 공식 견해를 담는 그릇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를 빼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교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얽혀 있고, 소련 정부는 마르크스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나치스는 독일 관념론을 떠받들었는데 다만 그들이 칸트와 피히테, 헤겔에게 각각 얼마만큼 충성을 바쳤는지는 명확히 규정하기가 힘들다. 가톨릭교회와 공산당과 나치스는 모두 자신들의 실제 정치에 대한 견해와 이론 철학에 대한 견해가 밀접하게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일찍이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던 초기에 존 로크가 발전시킨 경험론 철학과 엮이곤 했다. (28쪽)

'철학자' 러셀의 전문 분야는 철학사적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라, 이른바 '분석철학'이라고 불리는, 철학에서 통용되는 논리적 명제의 분석 및 그 논리적 방법론의 검토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중들을 상대로 책을 쓸 때 러셀은 언제나 이렇게 쉽고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기존 철학사의 인물과 사조들을 거침없이 조롱하곤 했다. 따라서 그는 같은 에세이의 후반부에서,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 따라서 정신적 기질 자체가 민주주의와 어울리는 철학은 오로지 경험론뿐"(50쪽)이라고 확언하게 된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사상 검증에 임하는 태도로 말해보자면, 나 역시 결론에 있어서는 러셀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이며,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제도와 절차를 통해 얻어지는 한 줌의 진보가 혁명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근본적 사회 전복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철학자 러셀, 혹은 논객 러셀은 언제나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특히 <인기 없는 에세이>의 앞부분에 담긴, 1930년대에 작성된 철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에세이들을 보면, 그는 '경험론은 민주주의의 철학이다'와 같이, 그 자체가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는 없는 명제들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면 그는 민주적 대의제가 도입되고 또 정착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그 어떤 관념적 철학이나 민족적 기질 따위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시행착오와 반성임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 발칸 반도의 어느 나라에서는 총선에서 근소한 차로 패배한 정당이 다수당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반대편 당의 의원들을 부족한 자리 수만큼 사살한 적도 있었다. 서유럽 사람들은 일찍이 자신들의 선조인 크롬웰과 로베스피에르가 똑같이 행동했던 것은 까맣게 잊고서 이 사건이 발칸 사람 특유의 성격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285쪽)

민주주의, 과학적 사고, 러셀이 사랑하는 경험론적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의회 민주주의의 경험을 쌓아온 영국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고 수행하기 위해 별다른 개념적 허구를 요구하지 않는 반면, 자비로운 계몽군주의 품 안에서 비로소 대학이 건설되었던 독일이나 여타 후발주자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대한민국 같은 제3세계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러셀의 정치적, 사회적 에세이들은 어디까지나 영미권, 특히 영국, 그 중에서도 유산계급의 여유롭고 지적인 삶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보편적' 시각과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5.

여기서 다시 한 번, 러셀의 역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경험론자이고, 근거 없는 주장이 가져다주는 지적, 정치적 폐단에 대해 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진짜 '정치적'인 주장을 펴고자 한다면, 세상에 그 누가 논리적으로 완벽한 '근거'를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사례를 들먹이며 그것이 오늘날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냐고 묻는 러셀이지만, 그의 주장 중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의 첫 걸음은 바로 이 두 독립국[미국과 소련]이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올 전쟁이 아니라 합의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292쪽) 같은 말을 2013년의 오늘 우리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러셀이 다른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방식대로 러셀을 비판한다면, 그 누가 러셀만큼 능숙하게 러셀을 조롱할 수 있겠냐만은, 어쨌건 그 또한 비판의 범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러셀 스스로가 인정하다시피 "철학이 바람직한 목적을 수행하려면 회의주의를 가르치는 데 그쳐서는 안"되며 "교조주의자는 해로운 반면 회의주의자는 쓸모가 없"(76쪽)지만, 두 가지의 위험을 모두 피하면서 올바른 판단으로 향하는 길이 러셀의 책에 프라모델 조립 매뉴얼처럼 등장하고 있지는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그 전쟁 과정에서 얻어진 막대한 기술의 발전, 전쟁으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 및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경제 성장, 전쟁을 통해 부득이하게 발생하게 된 '국민'의 확대와 여성 및 저소득층의 투표권 확보 등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러셀은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자기 자신이 자초한 것 외의 별다른 위험을 겪지 않고 살아온 인물이기에, 그가 교육받아온 전통적 윤리관과 새로운 시대의 성과 도덕에 대한 관념 등을 적당히 조합하여 자신의 도덕률로 삼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대가로 장학금, 말하자면 G.I. 빌을 받아 대학에 다니게 된 하층민 출신의 미국 청년과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당시에는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차이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 돌이켜 보면 러셀과 '그 외 모든 사람들'의 지적, 정신적, 유물론적 차이는 그리 쉽게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러셀의 책을 읽는 것은, 그의 책을 어떤 '참고점'이나 '행동의 규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문학 작품을 즐기는 것에 더욱 가까워진다. 이것은 마치 그 어떤 철학 연구자도 <러셀 서양철학사>(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를 철학사 연구를 위한 진지한 참고 도서로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는 단 한 권의 시집이나 소설집도 내놓지 않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이기에 러셀의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한결같은 기쁨, 특히 지적인 청량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오늘날을 살아가는 양심적인 지성인이라면, 러셀을 넘어서 지금의 현실을 해석하고 그 속에서 실천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다른 책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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