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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애국가' 바꿔야? "남산 위에 야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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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애국가' 바꿔야? "남산 위에 야자나무~"

[초록發光] 2013 폭염에 관한 小考

다음 중 지난 8월 평균 온도가 높았던 도시 두 곳을 고르시오.

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② 한국의 대구 ③ 한국의 전주 ④ 태국의 방콕


다들 문제를 보고 코웃음을 치셨을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네시아와 태국(타이)은 적도 인근 열대 기후에 속하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이 잦아진 요새, 열대 지방이 덥다는 건 사회과부도를 넘어서 온몸에 각인된 정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상식이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8월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8월 19일까지 낮 최고 기온 평균을 보면 방콕이 34도, 자카르타가 32.6도를 기록하면서 평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한 반면, 전주와 대구는 36도를 기록했다. 서울도 31.4도를 나타내며 열대 지방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답은 웃기지도 않게 ②와 ③이다.

누군가는 이상 기후는 이상하기 때문에 이상 기후인 거라며 앞선 사례에 거부감을 가지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타나는 지표들이 무시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는 대구가 47일, 전주와 포항에서도 33일째 계속됐다. 그래서 상당수의 초·중등학교가 개학을 하자마자 단축 수업에 들어가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도 벌어졌다.

제주도 서귀포에선 4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갱신했고, 강릉에서는 관측 이후 처음으로 최저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 열대야까지 나타났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가 온대 지방인지 열대 지방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기후 변화의 상징 지표인 식생대의 북상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소식이다. 침엽수립인 소나무는 21세기 후반, 강원도 산간 지역과 북한의 양강도, 자강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거라고 한다. 애국가 2절 바꿔야겠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이 무슨 소린가! "남산 위에 저 야자나무 코코넛 열리듯".

▲ 21세기 후반 남산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전망이다. 그 자리를 야자나무가 채울까? ⓒwikimedia.org

그런가하면 어제 <뉴욕타임스>가 '기후 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 초안을 인용해 보도한 자료는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한다. 4차 보고서에서는 2100년이면 해수면 최대 상승치가 평균 59센티미터 정도 될 거라더니 이번 보고서에서는 최대치를 91.4센티미터로 상향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간 책임은 90~100% 수준이라고 했던 것이 95~100% 수준으로 뛰었다.

IPCC에 따르면 최근 기온 상승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못을 박았다. 물론 우리가 체감하는 기온은 온도 상승이 완화됐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들지만.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깜짝 놀랄 만한 지표들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깜짝 놀랄 만하지 않은 것 같다. "기상 관측 사상 최고"란 표현이 난무했고, 실제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더위였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아슬아슬한 무더위는 작년에도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정도의 더위가 계속 심해지고 있고, 올해는 단지 기록을 고쳤다는 의미가 더해진 것뿐이다. 언론들이 "몇 십 년만의 더위"라고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평년에 비해 많이 더운 상황이 근년에 한해도 빠짐없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만 가리는 역할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근심스럽다.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에 반해 인식도나 적극성이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자면 나는 단연 에너지 위기를 꼽는다. 올 여름에 그런 생각은 더욱 심화됐다. 여름 내내 아슬아슬한 전력난 상황이 이어지고, 핵발전소와 화력 발전소 일부가 가동 중단되는 위기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올 여름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전력난이 아니고 폭염이다. 세계 9위의 전력 공급 능력을 가졌음에도, 전력난이 발생한 것은 전력 수요 증가율이 공급 능력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 원인은 냉방 전력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중부 지방에 한 달 넘게 계속된 장마가 아니었다면 대정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누구나 전력난의 원인으로 폭염을 지목하면서도 기후 변화까지 근원적 분석을 끌고 올라가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가 '이번은 일시적인 거야, 기후 변화는 장기적이야'라며 자위하는 동안, 열 명의 열사병 환자가 발생했다. 각 기업 작업장에서도 전력난에 더운 날씨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폭염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작업장 안전을 위해 라틴의 시에스타(siesta, 낮잠 자는 풍습)라도 도입하자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제는 매년 기후 변화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해야 하나. 몸으로 느껴진다는 게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올 겨울이 되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또 한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가스요금에 입을 벌리게 될 것이고, 전기 요금을 내려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럼 세상은 모두 또 전력난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공급주의자들은 발전소를 더 짓자고 하고, 환경 단체는 수요 관리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일 것이다. 하지만 또 이미 현재에 와 있는 기후 변화는 선정적인 소식 한 꼭지로 대체되겠지.

친하게 지내는 한 에너지 전문가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탈핵만 할 수 있다면 기후 변화를 양보할 수도 있다. 핵발전소를 화력발전소로 대체하자고 하면 그러자고 할 것 같다."

심지어는 이런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다.

"어디 가서 기후 변화 심각하다고 강조하지 좀 마라. 핵 마피아를 도와주는 것밖에 안 된다."

두 입장 모두 탈핵과 에너지의 위기를 강조하다보니 다소 지나친 표현으로 나온 거라고 생각하며 웃고 말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모두 끓는 물속의 개구리가 되겠구나 생각한다. 물은 끓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내 체온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에너지와 기후 변화의 위기. 어느 것도 놓고 갈 순 없다. 그렇다면 보다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겠다. 그 얘기인즉슨 각자 제 몫을 찾아주기가 필요하다는 뜻. 후쿠시마 사태, 밀양 사태, 핵발전소 짝퉁 부품 이후 기후 변화 의제들은 제 몫을 얻고 있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2013년 폭염에 관한 小考. 사회의 의뭉스러움.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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