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에 오늘 하루도 안녕하신가요?
아버지께 편지를 썼던 게 제가 초중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중동 파견근로자로 6년 동안 집을 떠나 계실 때 이후로 처음인거 같습니다. 지난주 집에 갔을 때 현관 앞에서 우산을 고치고 계시던 아버지를 보니, 항상 힘들게 몸 쓰는 일을 하시느라 근육이 잡혔던 아버지의 팔과 다리가 굽은 어깨와 앙상한 다리로 변한걸 보며, 어느새 여든을 넘기셨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눈가가 촉촉했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항상 제 편이 되어서 지지해주시던 아버지가 계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형제들 가운데 유독 저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시지만 아버지와 저 사이에는 딱 한 가지 벽이 있지요. 넘어서야 하지만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그 벽은 아버지와 함께 뉴스를 볼 때마다 불쑥 튀어나와 합칠 수 없는 깊은 골을 되새기곤 합니다. 가족들이 아버지와 제가 대립하는 대화를 하고 있으면, 불꽃 튀는 팽팽함 때문에 누구도 나서거나 끼어들지 못하는 긴장감에 퍽 불편해 한다는 걸 아버지도 아시고 저도 압니다. 그래서 대립의 끝엔 참 씁쓸하지요.
정치적인 문제, 특히 북한과 관련된 정치적 이슈가 나오면 이제는 아예 뉴스를 하는 시간에 제가 자리를 피하거나 딴청을 부리고, 아버지도 가급적 감정을 자제하시려 애쓰시는 걸 제가 압니다. 아버지가 정치적인 부분에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생각들을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아버지는 지독한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계시지요. 평소에 욕이라곤 입에 담지도 않으시고 참 자상하신 분이 정치적인 문제가 거론될 때 말끝마다 붙이시는 "빨갱이 새끼들은 다 쳐 죽여야 해!"라며 저주어린 폭언을 하실 때마다 섬뜩함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17살이던 한국전쟁 당시, 학교에 갔다가 그대로 인민군으로 차출되어 가족들과 얼굴 한번 못보고 생이별을 하셨지요. 그렇게 남쪽으로 오셔서 바로 포로로 잡히시고,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순간들을 보내셨다는 말씀은 제 가슴에도 돌덩이처럼 얹혀있습니다. 생면부지의 남한에서 홀로 견뎠어야 하는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버티셨을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쓰라려집니다. 인민군 포로 출신이라는 멍에를 지워야 했기에 더욱 더 체제에 순응하셨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아버지에게 철저히 각인되어야 했던 반공이념은 생존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였던 방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발작과 같은 레드 콤플렉스를 동의할 순 없어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떤 아흔 살이 된 노인이 양로원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와 아버지가 연로해 지시니 노인들에게 대한 어떤 이야기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더군요.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노인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버지처럼 20세기를 열심히 살았던 어느 범부의 이야기입니다.
ⓒ이미지프레임 |
아흔 살이 된 노인이 자살한 사건은 2001년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살한 노인은 1910년에 태어난 '안토니오'라는 분입니다.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처럼, 안토니오도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부터 가족이 하는 소작 일에 투입되어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미래 없는 시절을 보냈답니다. 척박한 상황에서의 가족은 믿음과 위로의 관계가 되지 못하는지, 가족들 간에도 또 다른 착취가 일어나는 일상을 버티다가, 안토니오는 청소년 시절부터 조금 더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 하나로 도시로 두세 번의 탈출을 감행했답니다.
도시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버틸 수 있던 그 시절에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조라 할 수 있는 전쟁으로, 20세기 초반 각종 이념이 각축을 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를 종횡무진 종주하던 전쟁이었습니다. 군대의 쿠데타로 일어난 독재정권과 피폐해진 삶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이 대대적인 전투를 했습니다. 안토니오는 그저 하루라도 사람 대접 받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아나키스트 활동을 하게 되었고, 생전 처음으로 사람으로 사람을 만난 동지들과 함께 보람과 정의감, 그리고 무엇보다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지원을 받는 독재세력인 프랑코파에 저항하기에 아나키스트들의 힘은 점점 밀리게 되었답니다. 게다가 소련의 스탈린이 아나키스트들의 전력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면서, 그들의 저항은 희망을 주기보다는 거대 권력의 힘겨루기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안토니오와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짙은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인 프랑코파에 저항했던 아나키스트들의 투쟁은 실패했습니다. 패배한 전쟁 이후에 안토니오는 타인을 속이면서까지 내 이득을 챙겨야 하는 생존이라는 현실과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나키스트로서의 존재감 사이에서 아흔 살이 될 때까지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습니다.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미지프레임 펴냄). ⓒ이미지프레임 |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양로원에서 청구한 양로원 비용을 보면서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매달 양로원 비용이 1일에 지출되는데, 안토니오가 4일에 자살했다는 이유로 4일치 양로원 비용을 청구하는 현실은 아들 안토니오 알타리바에겐 자신의 아버지 안토니오의 존재가 쓰레기처럼 처박히는 모멸감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토니오가 평생을 부여잡고 있었던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한 사람이 감당할 수위를 넘어선 한계를 어떤 고통으로 감내했는가를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이 저를 또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보며 저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얼마 전 제가 안토니오 이야기를 잠깐 아버지에게 꺼냈을 때, 평소에 힘없이 우물거리며 말씀하시던 것과 달리 또박또박 힘줘서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아버지가 저에게 하신 말씀이 참 크게 남습니다. 살기 위해 반공이념을 그대로 체화시킨 아버지와 살기 위해 아나키스트를 포기하지 못했던 안토니오는 참 닮았습니다.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삶으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걸 압니다.
저는 그 어떤 영웅보다 큰 울림이 있는 아버지의 삶이나 '안토니오'의 삶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쟁과 절대 권력인 독재와 수용소의 참담함을 제대로 알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그 귀한 손녀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중. ⓒ이미지프레임 |
그러나 얼마 전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이 되었답니다. 안토니오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생기를 잃어버리고 쾌락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혼란한 사회에서 겪었던 몇 개의 성교 장면이 문제라고 합니다. 영혼 없이 살아야 하는 억압된 현실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일탈은 아버지도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 모든 것이 전쟁의 상흔일 텐데 어떻게 현재의 윤리적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 다니는 아버지의 손주가 그걸 보고 과연 성적인 자극을 받을까요? 아버지도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곱고 부드럽고 예쁜 것만 주고 싶지만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들려줘야 하는 아픔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전쟁의 상처겠지요?
아버지가 항상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모습은 스스로 극복의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덮으려고만 하고 포장하려고만 하면 또 다른 절대 권력에게 휘둘려지겠지요. 그렇게 보면 이 책에 대한 심의결과는 오히려 청소년을 유해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제가 담을 수 있길 바랍니다. 구술채록을 하려고 결심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혹여 아버지의 아픈 상처를 꺼내다가 몸이라도 상하시지 않을까 염려되어, 더 많은 이유는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볼 때 화려하고 근사하진 않아도 범부인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카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덮으면서 절실해졌습니다.
저의 소망은 아버지가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심리적으로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제가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해서 아버지의 레드 콤플렉스도 받아 안을 수 있는 품이 되어야겠지요. 이 책의 원제가 '비상의 기술'이라고 합니다. 좀 더 풀어서 이해하자면 추락하는 존재가 아닌 날아오르는 존재의 가치로움이 아닐까요? '안토니오'와 아버지가 묶여있던 구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가치겠지요.
이번 주말엔 아버지 좋아하시는 감자옹심이 해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항상 넘치는 사랑을 받는 장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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