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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에 꽂혀 전 세계를?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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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에 꽂혀 전 세계를? "이게 뭐라고…"

[프레시안 books] 글렌 칠튼의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갈라놓는 베링 해협에서 물이 빠진 적이 있다. 물이 빠진 베링 해협은 그 폭이 최대 700~1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제법 넓은 지역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살았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점차 동쪽으로 생활 반경을 넓혀가다가 1만 4000년 전에는 알래스카에 도달하였고, 큰 동물들을 쫓아 캐나다 내륙과 해안지방으로 점차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들은 대륙의 포유동물 135종을 멸종시켰다. 특히 덩치가 큰 포유동물은 4분의 3을 멸종시켰다.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캐나다 북동부의 래브라도 해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1만 년 이상 먼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땅을 가로챘으며 작은 동물들을 멸종시켰다. 1871년에 캐나다에서 마지막으로 총에 맞은 까치오리(Labrador duck)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구의 마지막 까치오리는 1875년 미국 롱아일랜드 섬에서 죽었다.)

▲ 까치오리. 왼쪽이 암컷이고 오른쪽이 수컷이다.

어린 시절 '위기에 처한 북미 야생 생물'이라는 카드를 수집하던 글렌 칠튼은 '까치오리'에 꽂혔다. 이 카드의 최고봉인 1번이 까치오리였으며, 이미 멸종했다는 애잔함, 그리고 오리의 당당한 자태가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칠튼은 결국 새의 울음소리와 생활방식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조류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까치오리를 카드로 만난지 25년이 흘렀을 때 전 세계에 남아 있는 55점의 박제표본과 9개의 까치오리 알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40개 도시의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한다.

▲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그는 전교생이 600명에 불과한 작은 대학의 교수로 자비를 탈탈 털어서 근근이 여행한다. 여행비를 아끼기 위해 마찬가지로 근근이 살아가는 외국의 젊은 여성학자와 함께 호텔방을 사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나와 나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인류 문화 및 자연사박물관인 로열온타리오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600만 점 이상의 유물을 비롯하여 내가 최초로 보게 될 까치오리 박제표본을 소장하고 있었다." (65쪽)

내가 미친다! 지난 7월 4일 내가 분명히 캐나다 가이드에게 토론토의 자연사박물관을 안내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말했다. "토론토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없다!" 이게 무슨 망발이냐! 하지만 현지인이 우기는 데야 별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오늘날 13만 4000점의 조류 박제를 소장한 로열온타리오박물관은 세계에서 약 13위이지만 새의 뼈대만 놓고 본다면 4만 2500점으로 세계 1위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이 자연사 유물을 그렇게 많이 소장했으나 큰바다쇠오리나 까치오리가 없어서 한(Hahn)은 몹시 속상했던 모양이다. 그는 박물관에서 그 조류 박제를 소장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150년 전에는 박물관에 큰바다쇠오리가 필요하면 그저 최고액수를 지불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다 해결되었다. 혀를 내두를 만큼 고액을 제시한 순간, 빚에 쪼들린 수집가들이 한 마리 잡아오겠다며 곤봉을 든 채 아이슬란드 해안가의 외딴 섬으로 떠났으리라. 이제는 큰바다쇠오리와 까치오리가 완전히 멸종되었으므로 그런 일은 좀 더 까다로워졌다. 많은 박물관들이 차선책으로 박제사에게 여러 조류들을 짜깁기하여 위조품을 만들도록 했다. 한은 이런 방식을 해결책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기관이 소장한 표본을 구입하거나 교환하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그는 까치오리를 한 마리 훔쳐올 생각은 없었다." (66~67쪽)

그렇다, 글렌 칠튼의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위문숙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어판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2009년에 출판된 책이 비행기로 불과 14시간 떨어진 서울에서는 2013년에야 출판되었다. 그것도 하필 7월 15일. 한 달만 일찍 나왔더라도 나의 이번 여름 캐나다 여행은 신나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로열온타리오자연사박물관의 한은 다른 데서 까치오리 한 마리를 훔쳐올 생각이 없었다. 대신 1965년 3500달러를 지불하고 뉴욕의 안전금고에서 한 마리를 꺼내와 토론토의 안전금고로 옮겼다.

전시된 곳들이 있기도 하다. 그것도 아주 허술하게. 글렌 칠튼이 방문한 두 번째 도시는 몬트리올이다. 1882년에 세운 맥길 대학교의 레드패스 박물관은 캐나다가 최초로 설계한 박물관 건물이다. 나는 이곳에 7월 3일에 방문했다. 이 박물관에 대한 내 느낌은 글렌 칠튼의 그것과 같다.

"캐나다자동차협회는 '소장품의 전시 상태는 예전과 거의 비슷하다'라고 너그럽게 설명해 놓았다. 이것은 전시 상태가 칙칙하고 먼지투성이며 지루하다는 의미의 정중한 표현이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 폭풍우를 만났는데 커피 한 잔 마실 돈이 없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75쪽)

토론토의 로열온타리오자연사박물관에 간다고 해서 까치오리를 볼 수는 없다. 수장고에 깊숙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래드패스 박물관은 다른 선택을 했다. 감춰둔 표본으로는 멸종에 대한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유로 2007년 까치오리를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래드패스 박물관의 까치오리는 유리 보관함에 넣어진 채로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참에서 볼 수 있었다. 유리 보관함에 들어 있는 까치오리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허접한 박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캐나다에서 글렌 칠튼의 책이 발간되자 박물관은 다시 정책을 바꾸어 까치오리를 수장고로 옮겼다. 책이 나오고 나자 까치오리 박제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 래드패스 박물관의 2층과 3층 층계참에 놓인 고릴라 박제. 이렇게 훌륭한 박제가 먼지에 노출된 채 전시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이정모
지난 6월 27일에 방문한 레드패스 박물관의 층계참에는 화가 난 고릴라와 표범, 영양 등의 박제도 전시해 놓았다. 정말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박제다. 원래 이 박제들은 유리장 속에 고이 모셔진 채 전시되어 있었지만, 새로 취임한 박물관장에게는 자신의 전공인 광물을 전시할 공간이 모자랐다. 신임 박물관장은 고릴라 등의 멋진 박제를 유리장에서 층계참으로 옮겼다. 박제가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하게 보존된다고 해도 기껏해야 500년 정도 버틸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먼지에 노출시킨다면 그 수명은 불과 몇 십 년으로 줄어들고, 그 아름다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화난 고릴라의 표정을 볼 때 내 가슴이 다 아팠다.

(래드패스 박물관에 가면 그래도 수각류 공룡인 고르고사우루스의 정강이뼈를 맘대로 만지고 들어볼 수도 있다.)

세계 유수의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류의 표본은 수만~수십만 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연사박물관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조류 표본 수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 생명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보존해야 할 자연사박물관이 이렇게 많은 표본을 수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여기에 대해 글렌 칠튼은 이렇게 말한다.

"공공박물관의 죽은 동물로 가득한 진열장은 관람객의 인기를 끌기 어렵다. 하지만 유능한 가이드가 제대로 설명해주면, 이런 전시물을 통해 자연의 조화로움과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연구실의 알이나 박제 자료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조류를 신중하게 채집한다면 개체 수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을뿐더러 조류학의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까치오리가 멸종에 이른 이유는 박물관의 수집품과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이처럼 박제표본이 없다면 그들의 영구적인 소멸을 생생하게 기억하지도 못한다." (88쪽)

정말 이 책은 빨리 나와야 했다. 파리에 갔을 때 당연히 월요일에는 파리자연사박물관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포기했는데, 파리자연사박물관은 월요일에도 연다. 으이그~~.

까치오리라고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조류 박제를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무척 재밌다. 우리는 글렌 칠튼과 함께 세계 각국의 도시를 코미디 영화의 장면처럼 여행한다. 도시와 박물관 그리고 함께 여행한 이들에 대한 그의 평은 신랄하면서도 진지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카트리나는 능수능란하게 치근덕거렸다. 소금을 건네 달라고 말하는 대신, 오른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왼팔을 쭉 뻗었다. 그녀의 다리는 내 다리와 자꾸 스쳤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잦았다. 그녀가 말을 할 때면 숨이 내 뺨을 스쳤다. 그날 밤늦게 호텔로 가는 도중에 잡목 뒤에서 소변을 보다가 운하로 굴러 떨어졌다. 참으로 교활하구나, 네덜란드 운하여." (195쪽)

글렌 칠튼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55마리 가운데 결국 한 마리를 보지 못한다. 뉴욕 시의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한 점이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30년 전 천장에 파이프를 설치하는 공사를 할 때 전시장 점검구를 잠깐 열어놓았다. 이때 일꾼이나 관람객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까치오리를 꺼내어 유유자적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다 있다.

사람들은 내가 자연사박물관장이라고 하면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을 다 돌아다녔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헐~~. 아마 세계에서 글렌 칠튼만큼 자연사박물관을 많이 다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박물관 평에 귀 기울일 만하다. 글렌 칠튼은 독일 마인츠 박물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55년에 할아버지의 부엌에서나 보았음직한 페인트를 칠해 놓았고, 백열등은 불이 나가 있었다. 난방 장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수십 년 전에 타자기로 친 설명문 몇 장이 성의 없이 붙어 있었다. 예술적인 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217쪽)

글렌 칠튼을 흐뭇하게 만든 박물관들은 대개 작지만, 이야기를 염두에 두며 전시물을 배치했다든지,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서 만져도 되는 모형을 설치한 박물관들이다. 이런 곳에서는 어린이들이 전시에 '홀딱' 빠져 친구들과 조잘조잘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박물관은 재정보다 행정가들의 상상력과 학예사들의 열정이 만들어가는 곳이다.

뉴욕자연사박물관이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을 다녀온 사람들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찾아와서 규모를 비교하곤 한다. 그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들이 있다.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을 일주일 관람해 봐야 다 못 본다. 하지만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세 시간이면 다 본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과학서 저술가이자 번역가인 이한음은 "이 책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여행기, 직접 겪으면서 고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눈과 귀만 혹사하고, 본래 인류의 기원을 담당했던 두 발은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발로 뛰어서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으며, 그 지식이 여전히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참, 까치오리를 일반인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베를린자연사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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