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내가 1년에 한 번 단식을 하는 진짜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내가 1년에 한 번 단식을 하는 진짜 이유

[초록發光] 단식하다 익힌 순환의 사고

세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초록發光' 칼럼 쓰는 날이 다가왔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을 버티고 칼럼 제목처럼 초록이 스스로 반짝일 것이라 기대했던 봄이 왔지만, 널뛰는 날씨 탓에 봄을 제대로 느낄 겨를도 없이 벌써 떠날 채비를 하는 봄 날씨 탓이 크다. (이 글을 쓰는 저녁 시간, 하필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장사익 버전의 '봄날은 간다'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요사이 초록을 생각하기엔 내 일상이 여러 과제들로 인해 여유 없이 쫓기듯 살고 있는 것이 더 큰 이유인 듯하다.

주로 관심이 꽂히는 주제와 사들이는 책들의 면면을 보면 나 자신을 녹색주의자라는 범주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녹색주의자로서 나는 자가용을 소유하기보다는 대중교통이 주는 약간의 불편함을 여전히 기꺼운 마음으로 감수하고, 텃밭은 못 가꾸더라도 창가와 컴퓨터 앞에 녹색 식물 한두 개씩은 놓고 지내려 한다.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함께 지역에 착근된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녹색주의자들이라고 마음 한 귀퉁이에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는 오아시스 같은 녹색 섬을 하나씩 품고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질적으로 녹색에 대한 친화력과 민감함을 갖추었더라도 일상이 주는 스트레스와 갈수록 각박해 지는 삶의 하중은 남들과 다르지 않으니, 가끔은 자신의 '자발적' 선택임을 알면서 녹색으로 사는 것이 피곤하고 짜증이 날 때도 왕왕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좀 극단적 처방이 있는데, 바로 단식이다. 매년 봄맞이를 할 무렵에 나는 수수팥떡이라는 민간단체에서 매월 관리 감독해 주는 생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1년에 한 번씩 벌써 4년째다. 실제 단식은 딱 5일 뿐이지만, 단식 전 감식과 단식 후 단식일의 두 배만큼 미음에서 시작해 죽으로 차차 옮겨가며 궁극적으로는 평상시 식사량의 80퍼센트 정도까지만 회복시키는 꽤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식을 하면, 무엇보다 체중이 준다. 피부 결도 고아지고, 왠지 자신감도 더 붙는다.

통상 단식을 하게 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고기와 술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 단식을 처음 할 때는 철저하게 이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단식하는 이유는 말이지, 소설 <마라토너의 흡연>(조두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한 달 간 고기와 술로부터 자유롭게 몸에 '안식월'을 선사하려는 거야. 일종의 지속 가능한 음주 생활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나 할까. 음하하" 하며 괜히 우쭐해 하기도 했다. 단식으로 단절과 비움의 경험을 하게 되면, 먹을거리와 내 몸에 배인 일상적인 나쁜 습관에 대해 한 번쯤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덤으로 따라온다.

▲ 단식은 삻의 순환을 일깨우는 순간이 아닐까? ⓒkairoscanada.org

그런데 여기서 반전. '단식 한 번 해 보세요. 좋습니다. 할 만 합니다'라는 아름다운 홍보로 이야기가 끝이 났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내 몸과 마음의 오래된 습관, 음주로 인해 발걸음이 좀 꼬였다. 요사이 더러는 떠맡게 되고 일부는 스스로 자처한 과업들의 양과 무게가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몇몇 스트레스를 부르는 사소한 사건들까지 중첩되면서 생각보다 일찍 술자리로 귀환한 것이다. 내 혀는 육고기의 단백질의 아미노산을 강하게 갈구하였고, 술자리의 벗들은 너무나 죽이 잘 맞았다. 금기와 교부들의 절제로 다스리기엔 나는 유혹에 너무나 약한 凡人이고, 세상은 너무나 많은 유혹들이 넘쳐나는 물욕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지극히 신변잡기적인 이 단식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나는 지금 조금은 진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딱 한 달만 노력하면 몸에 좀 습(習)이 들었을 텐데 그 한 달도 못 견뎠다는 생각에 붙들려 계속 우울해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지난 이틀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단식을 단절의 의미가 아니라 순환의 과정으로 바라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사놓기만 하고 바쁜 마음에 아직 들춰보지 못한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책 펴냄)이라는 책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은 페이스북 친구 분이 쓴 해제의 소제목 중 하나인 '순환이 사라진 발전의 부패'라는 구절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직선적 사고, 누적적 사고가 아니라 순환의 사고로 나의 일상을, 나의 1년을, 그 1년의 사이클 안에 연례 행사로 단식이란 이벤트를 배치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저 멀리 이상적 상황과 목표(예컨대 '정상 체중' '연간 논문 투고는 2~3편씩!')를 설정하고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라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강박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도 되지 않겠나. 살다보면 스트레스도 많고, 그만큼의 좋은 일도 많고, 친구도 만나고, 맛난 것도 먹고, 힘들면 며칠 풀어져 지내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도 괜찮을 거야. 그러다 내 몸과 마음에 안식이 필요하면, 다시 나의 습관과 마음을 점검하는 단식이든 조용한 여행이든 나에게 선물하면 될 테니 말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기는 책을 읽는다고 지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점의 전환과 경험을 통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혹은 집합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녹색주의자가 되었지만, 녹색주의자로 살기 위해서도 사소한 수준에서나마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사소한 수준에서나마 자발적 불편을 감내해 보는 것도 지속적인 훈습(薰習)을 필요로 한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단식이고, 단식의 기간 동안 내 몸에 축적된 경험과 내 마음의 자세이다. 당신의 방법과 당신의 자세는 무엇인가?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