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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때 석탄 퍼 오시면…" 공룡이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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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때 석탄 퍼 오시면…" 공룡이 가까워진다!

[아까운 책] 피터 워드의 <진화의 키, 산소 농도>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아빠, 공룡들은 왜 바닷가를 걸었을까요?"
"그야 물을 먹으려고 내려왔겠지."
"아빠, 공룡은 바닷물을 먹었어요?"
"……"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에서 목격한 어느 아빠와 아들의 대화다. 이 바닷가에는 중생대 백악기(1억 4000만~6500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과 새의 발자국이 3000여 개나 남아 있다. 아빠가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앞 문장에 있다. 당시 '한반도'는 반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중생대의 한반도는 중국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서부와 대마도까지 포함하는 넓은 육지에 속해 있었다. 공룡이 발자국을 남긴 상족암도 당시에는 해안이 아니라 호숫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아빠는 차마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다. 하긴 불과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1억 년 전은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이 아닌가!

수억 년 전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안에 살았던 수많은 생물들의 삶을 더듬는 것은 우리 삶을 멀리서 관조하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고생물학자라고 한다. (고생물학과 고고학은 다르다. 돌도끼를 발견한다면 자연사박물관 말고 역사박물관으로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고생물학자들의 일. 일반인들이 수억 년 전의 지구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어린이 책이나 아니면 지질학과나 생물학과에서 보는 교과서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교양도서를 내기는 쉽지 않다. 이런 판국에 뿌리와이파리 출판사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통해 지구상의 생명의 진화를 다룬 책들을 2007년부터 꾸준히 내고 있는데, <진화의 키, 산소 농도>(피터 워드 지음, 김미선 옮김)는 아홉 번째 책이다.

▲ <진화의 키, 산소 농도>(피터 워드 지음, 김미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이 책은 지구 역사 46억 년, 그리고 생명의 역사 38억 년 가운데 최근 6억 년을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피터 워드. 그는 워싱턴 대학교의 지구우주과학부 교수이며, 동물학과 천문학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우주생물학'의 전형적인 전공자일 수 있는데, 그의 관심은 '멸종'이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과 백악기-제3기 멸종 등 지구상의 대멸종을 전공한 고생물학자이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서 더 읽기를 포기하는 독자가 계실까봐 간단한 안내를 하려고 한다. 생명의 역사는 크게 선캄브리아기-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나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고생대와 중생대를 나눈 여러 기의 이름이 헷갈리고, 순서를 알 수 없다는 것. 심지어 자연사박물관의 학예사 가운데도 고생물학 전공자가 아니면 이 순서를 잘 모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고생대 : 브리아기-르도비스기-루리아기-본기-탄기-름기
중생대 : 라이아스기-라기-악기
신생대 : 제3기-제4기

나는 이렇게 왼다. '캄(come). 오실 때(데) 석탄 퍼(페) 오시면, 튀(트)긴 쥐포 백 마리 드릴게요.' 신생대의 제3기와 제4기는 따로 욀 것도 없다. 이 순서만 머리에 넣고 있어도 고생물학 책을 읽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가는 순간에 일어났으며, 백악기-제3기 대멸종은 중생대에서 신생대로 넘어가는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게 쉽게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고생대-중생대-신생대를 나누는 근거는 대멸종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대멸종이 일어났지? '오파비니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대멸종 - 페름기 말을 뒤흔든 진화사 최대의 도전>(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2007년)에서는 2억 5100만 년 전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화산활동이 거칠어져 산성비가 내리고 먼지구름이 지구를 덮어 햇빛이 차단되어 혹독한 추위가 닥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피터 워드는 <진화의 키, 산소 농도>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멸종 사태의 원인은 산소의 급감이라고 말한다.

육상에 처음부터 나무가 있었던 게 아니니까, 처음에는 산소가 없다가 나중에 생긴 것은 짐작할 수 있는데, 산소가 급감한다고? 공기는 꽤 옛날부터 질소 78퍼센트, 산소 21퍼센트, 기타 1퍼센트의 조성을 유지하고 있던 게 아니라고? 그렇다! 거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이 있다. 그렇다면 '아! 산소가 갑자기 줄었으니, 적응 못해서 멸종을 했겠네!'라고 생각해버리면 재미가 없을 텐데, 피터 워드는 이 책에서 '멸종'이 아니라 '탄생'을 묻는다. '삼엽충이 왜 갑자기 멸종했는지'를 묻는 대신 '삼엽충이 왜 갑자기 지구 바다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묻고, 또 공룡을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처럼 '공룡이 왜 멸종했어요?'라고 묻는 대신 '도대체 공룡이 왜 생겨났을까?'를 묻는 식이다.

5억 3400만 년 전 지구에는 생물 종수와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것을 '캄브리아기 대폭발(The Cambrian Explosion)'이라고 부른다. 137억 년 전 우주탄생 사건을 빅뱅(Big Bang)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때 대기의 산소 비율은 13퍼센트에 불과했고 이산화탄소는 지금보다 수십 배나 높았다. 숨은 쉴 수 없고 지구는 뜨거웠다.

이때는 바다에 사는 절지동물들이 가장 성공했다. 이들은 혹스(Hox) 유전자를 반복하여 사용하여 다리와 아가미가 달린 분절을 반복하여 이어 붙였다. 특히 삼엽충은 몸 부피에 대한 아가미의 표면적의 비율을 가장 높인 동물이었다. 덕분에 산소가 부족한 바다 속에서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다.

앵무조개 같은 두족류들이 껍데기를 갖는 쪽으로 진화한 것도 산소 호흡과 관계가 있다. 그들의 기하학적인 껍질 구조는 물의 아가미 통과 속도를 높여서 산소를 더 많이 포집하는 펌프 작용을 했다.

산소가 지나치게(?) 높은 시절도 있었다. 지금부터 3억 년 전 석탄기 지구의 하늘은 항상 뿌연 황갈색이었다. 산불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날개폭이 1미터가 남는 잠자리(메가네우라)들이 날았으며, 날개폭 48센티미터의 하루살이, 길이 46센티미터의 거미, 그리고 길이 1미터에 무게가 2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전갈이 돌아다녔다. 이때 산소의 농도는 35퍼센트에 이르렀다.

왜 산소가 그렇게 많았을까? 이때는 나무들이 엄청나게 자랐지만, 뿌리가 허약해서 규칙적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나무의 목질부를 분해시키는 박테리아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산소를 공급하다가 쓰러진 나무가 썩지 않고 그대로 매장되었다. 석탄매장량의 90퍼센트가 이때 생겼고, 그래서 이때를 석탄기라고 한다. 이때 탄소가 주성분인 나무가 분해(=산화)되지 않으므로 산소 수준이 올라간 것이다.

산소 수준이 낮은 시기에는 생물의 다양성은 높지 않지만 새로운 진화가 촉발되었다. 반대로 산수 수준이 높은 시기는 다양성은 높지만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비율은 낮았다. 고생대 말 산소 수준이 높을 때 진화의 속도가 굼뜬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지난 5억 년 동안에 산소 농도가 가장 낮은 시대가 도래했다. 산소 농도가 1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숨을 쉴 수 없는 수준이다.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되었다. 이 사건을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이라고 한다. 동물들이 멸종하여 빈 공간은 누군가가 다시 채우기 마련이다. 그들이 바로 공룡이며, 이들은 저산소 시대에 맞춘 몸 설계를 가졌다.

공룡들은 처음에는 모두 두 발로 걸었다. 네 발로 몸을 휘저으면서 걸으면 허파가 짓눌려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조류처럼 '기낭(공기주머니)'이 있었다. 기낭은 허파 안에서 공기의 흐름과 혈류의 흐름을 반대로 하여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게 해주는 장치다. 덕분에 조류는 해수면 높이에서 포유류보다 33퍼센트나 더 효율적으로 산소를 추출하고 1500미터 고공에서는 효율성이 200퍼센트로 높아진다. (사람들이 산소통을 매고서야 올라가는 에베레스트 산의 상공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의 V자 대열을 상상해 보시라.) 저산소에 맞춘 몸 설계로 태어난 공룡은 다시 쥐라기와 백악기를 거치면서 산소 수준이 높아지자 몸집을 거대하게 키울 수 있었다. 이때 포유류들은 태반을 이용하는 새로운 패턴의 번식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작았다. 그래야 공룡과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6500만 년 전. 신생대가 도둑처럼 찾아왔다. 거대 소행성의 충격으로 공룡이 순식간에 멸종하였다. 공룡이 퇴장한 공간을 포유류가 채웠으며 이들은 급속히 몸을 키웠다. 그러다가 한참 후 인류가 태어났다.

이 책은 경이로운 지구의 생태 역사서다. 저자는 우주선과 잠수함 기능이 있는 타임머신에 우리를 태우고 대륙이동이 일어나는 큰 그림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멸종하는 그림을 그려준다. 저자는 '산소' 농도를 매개로 설명하지만, 다른 설명을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진영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 후 그들이 놓치고 있는 점을 찌른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역자가 후기에 썼듯이 (극장에 들어갈 때 팝콘과 콜라를 사가듯이) 지질연대표와 산소곡선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책에 있다. 아직 우리 머릿속에 없었을 뿐. 고생물학과 지질연대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우리는 스펙터클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약간'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 상족암에서 아들과 함께 공룡발자국을 따라 걷던 아빠처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미토콘드리아>(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다세포 생물의 진화의 원동력인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복잡성의 형성, 생명의 기원, 성과 생식력, 죽음, 영생 같은 생물학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답을 모색한다.

2. <대멸종>(마이클 J. 밴턴 지음, 류운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지구 생물체의 90퍼센트가 사라진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학자들의 숨막히는 경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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