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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죽이고 돈 갈취, 결국엔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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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죽이고 돈 갈취, 결국엔 해피엔딩!?

[프레시안 books]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대표작 '리플리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국내에 극히 일부만 소개됐다. 그러니까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재능있는 리플리>만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책 출판사에서 본래 5부작에 달하는 시리즈(1권 <재능있는 리플리>, 2권 <지하의 리플리>, 3권 <리플리의 게임>, 4권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홍성영 옮김, 그책 펴냄))를 출간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톰 리플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목도할 수 있게 됐다.

책보다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이 원작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르네 클레망은 1권 <재능있는 리플리>의 줄거리의 얼개를 가져왔지만 주제 의식을 새롭게 재창작하다시피 했다. 알랭 들롱이 연기했던 리플리는 무산계급 청춘의 억눌린 분노와 욕망의 좌절, 가지면 안 되는 것을 탐냈다가 (일반적인 청춘 소설의 공식이 그러하듯) 결국 좌절당하고 파멸하는 이카루스의 초상이었다. <태양은 가득히>는 그러니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범죄물'이 아니라 르네 클레망의 '청춘물'로 보는 게 맞다.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책 '리플리 시리즈'의 느낌은 영화와 사뭇 다르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체성의 문제다. 진짜와 가짜, 변장, 가면, 위조의 문제.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펴냄)의 저자 마이클 더다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사이코패스"라 불렀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스물다섯 살에 처음 살인을 저질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보스턴의 냉혹한 고모 댁에서 성장했던 리플리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에게는 타인을 기막히게 흉내내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대도시 뉴욕은 이 빈털터리 야망덩어리를 기꺼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는 "한 주 벌어서 한 주 살았고 은행 계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만으로 노력해서 벌어들이는 주급 40달러로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유물들, 약간의 호사스러움과 여가가 불가능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아무리 알뜰하게 생활해도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 몇 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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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있는 리플리>(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그책 펴냄). ⓒ그책
그리고 리플리의 앞에 디키 그린리프가 나타났다. 딱히 미술에 재능이 없는데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만용을 부리는 부잣집 아들, "낯선 사람에게 위험할 정도로 환한 미소, 오랜 친구나 연인에게 인사할 때 더 잘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응석받이, 리플리를 충분히 좋아했으면서도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받기 싫어 "비인간적인 완고함"과 "뻔뻔한 무례함"으로 그를 밀어냈던 배신자.

"디키는 왜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걸까?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어떤 중요한 걸 갖고 있을까?"

리플리는 "증오와 애정, 조바심과 좌절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디키를 "갑자기 덮치거나 키스할 수도 있었고, 배 밖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앞에 잠시 저울질하다가 결국 그를 죽여 버린다.

이제까지 톰 리플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해 보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한 표정에 금방 잊히는 얼굴이고, 절대 지울 수 없는 겁먹은 표정이 희미하게 어려 있"던 "진정한 체제 순응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확고한 판단 하에 친구 디키를 살해한 다음, 더 이상 디키와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돌리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디키 그 자신이 되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그는 머리카락을 디키처럼 밝게 염색하고, 자신보다 체중이 약간 더 나갔던 디키처럼 되기 위해 식사량을 늘리고, 그림도 일부러 디키처럼 못 그리고, 이탈리아 어를 더 능숙하게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디키가 늘 틀리던 말실수를 그대로 따라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의 기분과 기질을 유지하고 그와 어울리는 얼굴 표정을 짓는 거였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자리를 잡았다."(<재능있는 리플리)

'타인이 되어버리는' 재능과 엄청난 행운의 도움에 힘입어 리플리는 살인죄의 의심에서 벗어나 법적으로 완전히 깨끗해졌다. 그는 디키의 돈과 함께 자유가 되었다.

6년이 지났다. 2권 <지하의 리플리>에서 서른한 살 리플리는 아름다운 엘로이즈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조용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도 있었던 리플리는, 요절한 천재 화가 더와트의 작품을 위조하며 판매하는 무리들에 끼게 되었다. 더와트의 친구였던 화가 버나드가 심혈을 기울여 더와트의 눈과 손가락이 되어 그려낸 위조품을, 리플리는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남의 작품을 더 많이 위조한다면, 위작들이 더 자연스럽고, 더 진짜 같고, 더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을까? 마침내 노력에서 벗어난다면 그 작품이 제 2의 천성이 되지 않을까?"

리플리는 "(화가라면) 예전에 한때 사용한 색깔이나 다른 색깔을 섞어서 만든 색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라며 더와트의 작품 진위 여부를 따지고 드는 미국인 사업가를 설득하려 노력하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살해한다. 이 살인은 어찌 보면 불필요했고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리플리는 창조자 더와트, 위조자 버나드, 그리고 디키 그린리프를 죽였던 그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권 <리플리의 게임>과 4권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에서도 리플리는 차례로 그 자신의 거울상 같은 인물들과 마주친다. 한때 배우를 꿈꿨으나 지금은 평범한 액자 제작자로 살아가는 조나단 트레바니는 뜻하지 않게 마피아 살인범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리플리의 게임>) 부잣집 소년 프랭크는 아버지의 삶을 강요하는 게 싫어 아버지의 휠체어를 벼랑에서 밀어버렸다. 벼랑 끝에 서 있던 프랭크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던 디키처럼 부자의 삶에 스스로를 맞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대신 리플리의 불안정한 가장(假裝)의 삶을 선택한다.(<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이들 앞에서 리플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원죄와도 같은 최초의 살인의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되지만, 그에 대해 결코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톰은 시가에 불을 붙였다. 시가가 피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가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되고 환영이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환영일 뿐이었고, 중요한 건 문제를 대하는 태도였다.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가져야 했다."(<리플리의 게임>)

"프랭크는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해서 죄의식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을까? 완전히 정당화시키는 방법은 절대 찾지 못하겠지만 태도는 견지해야 했다. 옳은 태도든 그른 태도든, 건설적인 태도든 자기 파괴적인 태도든, 살면서 저지르는 모든 실수는 태도로 맞서야 해, 톰은 생각했다. 옳은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비극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재능있는 리플리> 이후의 리플리는 결코 사리사욕 때문에 타인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더와트, 버나드, 트레바니, 프랭크처럼 정체성의 위기 앞에 흔들리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어하고 그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동료이자 일족으로서 살아가길 기원하기 때문에 타인을 죽인다. 그러나 그들 중 리플리처럼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꾸만 타인의 시선에 기댄 환상과 희망을 붙잡으려 하거나, '진짜'라고 하는 것의 절대적인 기준에 가닿으려는 과욕을 부렸다. 그들은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 같은" 기분에, 자신이 저지른 죄가 뼛속 깊이 실감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것이 그들과 리플리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다 이를테면 (1980년에 씌어진)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에서 리플리는 베를린 장벽 앞을 서성거리며, 자신이 베를린을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는 "베를린은 관광객이라면 절대 가고 싶어하지 않은 곳"임을 깨닫는다. 그는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선 쫓기는 기분을 느끼지만, 베를린처럼 감시와 통제가 억압적으로 뿌리내린 곳에서 자유롭게 활보한다.

리플리가 진심으로 지키고 싶어하는 정체성은 버나드, 트레바니, 프랭크처럼 돈이라든가 가족의 인정, 타인의 평가, 양심 같은 거대한 진심들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 엘로이즈를 포함한 집, 가구, 옷, 하프시코드, 정원, 그림 같은 자신의 소유물들을 지키고 싶어할 따름이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진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내면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을 보여주는 소유물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1권 <재능있는 리플리>에서 디키를 죽인 다음 리플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로마의 아파트 구입이었다. 손님을 초청하지도 않을 거면서 손님 접대실과 넓은 거실이 갖춰진 아파트에서 '자신의 취향으로 과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치장하는 일에 그는 몰두했다.

"그는 자기의 소유물을 좋아했다. 모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지 않을 소수의 것을 좋아했다. 그런 소유물은 자존감을 준다. 단순한 물건이 아닌 품질 그리고 그 품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정을 준다. 소유물을 보면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즐기게 된다. 그렇게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리고 소유물은 그럴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는 존재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다.(…) 그는 예전부터 그걸 찾아왔다."(<재능있는 리플리>)

이후 시리즈들에서 마피아의 테러 위협에 시달릴 때에도, 리플리는 자신의 목숨보다는 "하프시코드가 불에 타거나 폭탄이 터져 산산이 부서지는 상상"에 못 견뎌하면서 "주로 여자들이 그렇듯이 그가 집과 가정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소유물과 부에 집착하는 속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리플리가 사랑하는 것은, 다시 말해 디키의 살인 이후 그가 얻게 된 새로운 자유는 '그리스 여행, 도자기 수집, 예술가 협회 가입, 원하는 만큼 늦은 시간까지 앙드레 말로를 읽을 수 있는 자유' 같은 것이었다. 여가가 뭔지도 모르고 그것을 갈망하지도 않는 여타의 미국인들과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물론 리플리의 삶이, 아내 엘로이즈의 갑부 아버지가 선심 쓰듯 내어주는 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리플리와 엘로이즈는 프랑스의 대저택에서의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기식자'로서의 삶에 대해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안락한 평온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는 "소파의 곡선이 마치 누군가의 팔처럼, 아니 누군가의 팔보다 더 편안하게 어깨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사랑한다.

1권 <재능있는 리플리>에서 디키처럼 멋진 구찌 여행 가방을 사들고 황홀경에 휩싸여 밤마다 영양 크림으로 세심하게 가죽을 손질하던 그는, 그리하여 4권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에 이르면 "지나치게 속물 브랜드로 변해버린" 구찌 대신 마크 크로스라는 브랜드에서 새 여행 가방을 구입한다. 감쪽같이 타인이 될 수 있는 그의 타고난 재능은, 점차 자신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아보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재능으로 자리 잡는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저질렀던 살인들은,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친절한 사람들, 이를테면 세계를 향한 자신의 심미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방탕하게 노는 어린 남자아이나 청년을 나무라는" 걸스카우트나 어머니라든가 누이 같은 고지식한 이들에 대한 복수였다. 리플리의 말마따나, "넌 너 자신의 더러운 생각에 희생된 거야." 리플리는 더 이상 타인들이 자신을 싫어할까봐 두려워하고, 타인의 호의와 잣대에 자신의 인생을 건 채 안달복달하며 불공정한 내기에 패배한 채 죽어가는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

사실 1권 <재능있는 리플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시리즈는 일종의 우화처럼 읽힌다. 그러니까 살인범이자 사기꾼, 양성애자(리플리는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절대적으로 부인하지만, 아내 엘로이즈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자주 즐기지도 않는다)라는 정체성 아래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플리가, 거의 초인처럼 유럽 전역을 누비며 법망의 감시를 완벽하게 빠져나가는 상황의 되풀이는 현실적 잣대 혹은 범죄소설의 잣대로 보기에도 가끔 터무니없다.

문제는 리플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애정이다. 1955년 매카시즘의 광풍 직후 <재능있는 리플리>를 발표했던 하이스미스는 냉전의 70년대와 새로운 물질주의의 향연인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놀라운 개인주의자 리플 리가 그 시대들의 양식과 정신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응하는 방식을 일종의 대하소설처럼 기술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블러디 머더>(김명남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의 저자 줄리언 시먼스의 말을 빌자면, "하이스미스를 선호하는 것은 후천적 취향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획득하지 못하는 취향이라는 뜻이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당신의 취향을 점검해볼 때다. 시리즈 마지막 권 <심연의 리플리>의 빠른 출간을 촉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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