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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요리' 맛봤더니 '볼일' 보던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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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엉덩이 요리' 맛봤더니 '볼일' 보던 남자가!

[김용언의 '잠 도둑'] 도리 미키의 <먼 곳으로 가고파>

어린 시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그림 없는 그림책>(원유미 그림, 이옥용 옮김, 보물창고 펴냄)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도리 미키의 만화책 <먼 곳으로 가고파>(새만화책 펴냄)는 글자 없는 만화책이다.

<그림 없는 그림책>에선 달님이 화가에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봐"라며 풍경과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삽화가 없기 때문에 더 생생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먼 곳으로 가고파>에는 대사가 없기 때문에 딱 한 페이지, 총 9칸짜리 만화 한 편 한 편을 더 뚫어지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자는 상황 안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드시 읽어내야만 한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해석의 의미가 아니다. 각 칸에 들어찬 상황들의 미세한 디테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쪽 페이지에서 옆 페이지로 대각선을 그리다시피, 눈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일반적인 만화 독서를 이 책은 거부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금 만화를 읽는 훈련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실상 <먼 곳으로 가고파>는 꽤 얇고 글자가 없는 만화니까 한번 잡으면 10분 만에 다 볼 줄 알았다. 웬걸, 2권을 다 읽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 <먼 곳으로 가고파>(도리 마키 지음, 새만화책 펴냄). ⓒ새만화책
<먼 곳으로 가고파>의 주인공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눈을 늘 반쯤 뜨고 무표정을 유지하는 남자다. 편의상 그를 '나'라고 호칭하겠다. '나'는 자주 총채를 들고 다닌다. 총채로 먼지를 떨어내는 작업은 집안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알아채고 그것을 제거할 마음가짐을 갖췄다는 뜻이다. '나'는 무표정하게 거리를 걸어 다니지만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띄는 즉시, 총채로 털어보거나 그 이상한 물체를 건드려본다. 오가는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총채를 쥔 '나'의 눈에만 보이는 그것. '나'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무슨 결과가 나오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은 채 특유의 무표정한 성실함으로 그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례 1) '나'는 공중 목욕탕에 갔다. 탕 안에 분명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다 엉덩이를 쳐든 채 거꾸로 박혀있다. '나'는 가만히 물속에 잠겼다가 역시 거꾸로 물구나무선다. (사례 2) 결혼식장에서 케이크 커팅을 하던 신랑신부는 그 자세 그대로 테이블을 썬다. 역시 손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와 우체통을 썰고, 자동차도 썰어 새 문을 만든 다음 그 안에 탄다. 차를 타고 신혼여행지에 도착한 부부는 역시 그 자세 그대로 거대한 나무를 벤다. (사례 3) '나'는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던 중, 휴지, 주전자, 사람, 토스터기, 타조가 차례로 나타나자 별로 놀라지 않은 채 전부 빨아들인다. 쓰레기봉투에 털어 넣으려 청소기 뚜껑을 열자 주전자 머리에 사람 손이 달리고 토스터기가 등 위에 튀어나온 타조가 기어 나온다.

(사례 4) '나'는 식탁 앞에 앉아 냅킨을 두르고 요리를 기다린다. 뚜껑 덮인 접시가 나오고 뚜껑을 열어보자 누군가의 엉덩이가 얌전히 얹혀있다. '나'는 잠깐 가만히 앉아 있다가 혀를 내밀어 엉덩이를 맛본다. 다음 순간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던 신사의 표정이 황홀경에 빠진다. (사례 5) '나'는 골대 앞에서 잔뜩 긴장한 골키퍼다. 축구공 대신 삼각 김밥이, 주사위가, 술통이, 토끼 인형이, 피에로가, 공사장 인부가, 철로가 굴러온다. 그래도 골키퍼는 자세를 풀지 않는다.

네모 칸 안에 갇힌 '나'의 평화는 언제나 타인에 의해서 깨진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커다란 외부가 침입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주시당한다. 그 침입자는 외계인이기도 하고 몰래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때가 되면 자리에 돌아오는 조각품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반드시 누군가와 이어져있고 심지어 조종당하고 있다. 이집트 사막과도, 네스 호 괴물과도, 하물며 우주와도. 이 주시당하는 느낌이 <먼 곳으로 가고파>에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신경질적인 웃음을 부여한다.

(사례 6) '나'는 길을 걷다 장난감을 발견하고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씹어도 보고 한참 만지작거리다 그냥 버리고 간다. 다음 순간 양복 입고 출근하던 어떤 남자가 길거리에 쓰러져 죽는다. (사례 7) '나'의 옆에 있던 여자의 올림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자꾸자꾸 커지던 올림 머리는 어느덧 풍선이 되고, 여자는 공중 부양한다. 다음 순간 여자는 달나라에 거꾸로 처박혀있고 외계인이 신기하게 들여다본다. (사례 8) 회사에서 일하던 '나'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진다. 내 목이 쭉 늘어나고 다리가 뒤로 돌아가고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저기 어디선가, 무섭게 생긴 우주인 추장이 장난감을 갖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먼 곳으로 가고파>는 9칸 만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 칸이라는 공간은 일반적으로 독자와의 약속이다. 만화 칸은 만화의 사건이 상연되는 무대이며, 주인공들은 우리의 시선 앞에서 배우로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도리 미키의 9칸 만화에서 그 약속은 위반된다. 도리 미키는 종종 독자마저 만화 속 등장 인물로 끌어들인다. (사례 9) '나'는 칸 속에 갇혀 있다. 세 번째 칸에서 펜치로 칸의 선 하나를 끊어낸다. 그 다음엔 네 번째 칸과 다섯 번째 칸 사이의 선을 끊는다. 여덟 번째 칸에선 몸을 디밀어 빠져나갈 만한 크기로 구멍을 뚫는 데 성공한다. 아홉 번째 칸에 이르면 빠져나오는 '나'를 누군가 지켜본다. 누군가는 뒤통수만 보이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독자의 시선과 일치하는 그 누군가의 시선을 발견하는 순간, 만화 속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역시나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독자인 나는 슬며시 불쾌해진다. 지금까지 '나'를 주시하고 있던 건 독자인 나인데, 이제 독자인 나마저 만화 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사례 10) '나'는 만화 원고를 보고 있다. 그 원고 속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주인공이 총채를 들고 청소하고 있다. '나'는 원고를 덮는다. 원고를 덮고 있는 '나' 위로 거대한 손가락이 등장한다. '나'는 또 다른 만화 원고 속의 주인공이었다.

ⓒ새만화책


그렇게 9칸의 시공간은 하염없이 확장된다. 그러니까 유념하시길. 거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꼭 장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먼 곳으로 가고파>에서 우리는 원고 속에 내가 있는 원고 속에 내가 있는 원고를 읽게 되고, 칸과 칸 사이는 간단히 무너지면서 지구와 우주가 주인공의 콧물로 이어지고, 혹은 9칸 모두가 하나의 '불판'으로 변신하며 '나'는 불판 위의 고기를 굽고 있다. 독자인 우리는 불판 아래서 주인공 '나'를 올려다보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사례 11) '나'는 육상 선수처럼 포즈를 취하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테니스 볼 보이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치열하게 달려간다. 테니스 코트는 영원토록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볼을 건네주어야 할 상대방에게 닿기 위해서 '나'는 영원히 달려야 한다.

<먼 곳으로 가고파>의 주인공 얼굴 때문인지, 아무래도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버스터 키튼(격렬한 액션을 소화하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stone fac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무성 코미디 영화가 격렬한 몸 개그로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면, 도리 미키의 무성 개그 만화는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세계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거기에 기타노 다케시의 (야쿠자 영화 말고) 코미디의 매듭을 살짝 묶어놓는다면 금상첨화다.

아니, 더 좋은 비교 대상이 떠올랐다. 커트 보네거트의 대사 말이다. "아마도 저 높은 곳의 누군가가 자네를 좋아하는 모양이지."(<타이탄의 미녀>, 이강훈 옮김, 금문 펴냄) 무표정한 '나'여, 가끔 당신을 들여다보는 내 시선을 의식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나는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당신 방 창문에 달린 평범한 커튼이 실은 기대에 찬 관중들이 모인 큰 무대에 드리워진 커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훔쳐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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