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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보다, <늑대소년>만큼이나 흥미로운 영화들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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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보다, <늑대소년>만큼이나 흥미로운 영화들의 출현!

11월 29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를 주목하라

"내가 불타오르게 해줘!" 11월 29일(목)부터 12월 7일(금)까지 열리는 38회 서울독립영화제의 슬로건은 'Light My Fire'다. "지난 시기 독립영화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변화의 몸짓에 불을 댕길 것입니다. 우리에겐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 측이 밝힌 이번 슬로건의 선정 이유다.

▲ 38회를 맞이한 서울독립영화제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한 해 동안 등장했던 독립영화들을 아우르고 재조명하는 이 유서 깊은 영화제는 지난 2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명박 정부 하의 영화정책이 거듭 파행을 겪으며 서울독립영화제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등은 지원금이 아예 끊기는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영화인들의 지원과 관심으로 지난 5월 29일 재개관했고, 이번 서울독립영화제도 2년 만에 다시금 정부 지원을 받으며 훨씬 활기찬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다. 서울독립영화제의 조영각 위원장은 올해 특히 "사회적 이슈들에 주목한 다큐멘터리와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겸비한 극영화들이 강세를 보인다"면서 이번 상영작들의 완성도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단언컨대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은 올해 가장 뛰어난 정치적 영화 두 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했던 '정치영화'들의 과잉 선의와 정의감과 구호에 다소 피로감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각각의 카메라 카메라가 문제적 시대를 잡아내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의 차이를 흥미롭게 느낄 것이다. 그 첫 번째 예는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작인 박세호 감독의 <거대한 대화>다. <냅둬><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 등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박세호 감독의 10년 만의 신작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2011년 기준으로) 민주당의 이해찬, 손학규, 천정배, 우상호, 임종석, 백원우, 김두관 등부터 진보신당의 심상정과 노회찬과 조승수, 민노당의 이정희, 사회당의 안효상을 아우르는 야권 계열 정치인들과 조국 교수, 이상이 교수 등이 감독의 질문에 답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내에서 합리적인 보수로 인정받는 김성식과 정태근, 이상돈 중앙대학교 교수 등도 등장하여 야권과 진보 계열 정치인들에게 끊임없이 반박하며 다른 의견을 피력한다.

▲ <거대한 대화> ⓒ박세호

영화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진보를 본 적도 없지만, 거꾸로 진정한 보수를 본 적도 없다"는 문장이 나온다. <거대한 대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말이 실감난다. 참여정부의 공과 실에 대해, 남북 문제 해결에 대해, 복지 문제에 대해,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은, 적어도 여타의 매체에서 '쿼트' 따서 올리는 표면적인 단견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꽤 솔직하게(혹은 그렇게 보이게) 자신들의 신념을 털어놓고 논쟁하고 설득하고 질문한다. 박세호 감독은 어떤 사안을 두고 첨예하게 엇갈리는 각각의 의견들을 충돌과 보완의 몽타주로 작업했고, 실제로는 개별적인 정치인이 혼자 앉아 진행한 인터뷰지만 마치 의견이 다른 동료 정치인을 향해 토론하듯이 편집됐다. <100분토론>에서 볼 수 없던 진풍경, 늘 얼굴 붉히고 고함치고 싸우며 거짓말만 한다고 여겨지던 한국의 정치인들이 논리와 정책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한다. 그것이, 놀랍게 들리겠지만, 충분히 재미있다.

두 번째 영화는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지슬>이다. 전작 <어이그 저 귓것><뽕똘><이어도>에서 <지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를 제주도에서 만든 오멸 감독의 영화를 '지역 영화'의 테두리로만 이해하는 건 너무 편한 방식이다. 낯선 언어, 낯선 얼굴, 낯선 화법, 낯선 풍경에 조금 당황하더라도 관객은 곧 그 선입견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지슬>은 1948년 제주 4.3 항쟁을 다룬다.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다"며 눈을 희번득거리는 군인들과, 영문을 모른 채 소개령을 피해 산으로 도망쳤지만 홀로 남은 늙은 어머니, 정성껏 키운 돼지, 학교에 두고 온 책 때문에 마음 졸이는 순진한 서민들을 번갈아 보여준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제주도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즉 지금까지 스크린 위에서 '관광용'으로만 채색되었던 풍광 속에 숨겨져 있던 역사성을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로 고양시킨다. 오멸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처럼, <지슬>에서 제주도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다.

▲ <지슬> ⓒ오멸

적은 양의 대사, 진부하지 않게 구사되는 비유의 이미지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 졸이게 되는 뜻밖의 내러티브. 오멸 감독의 <지슬>은 4.3 항쟁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일제 치하부터 6.25를 거쳐 한국을 지배해온 냉전 이데올로기, 그리고 미국과의 유대 관계가 한국 현대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에 대해, 목청 높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력하게 관객의 기억에 상흔을 남긴다.

<지슬>이라는 제목은 제주도 말로 '감자'라는 뜻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당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외에도 서울독립영화제의 화제작들은 즐비하다. <지슬>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4.3 항쟁의 기억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비념>(임흥순 감독), 위안부 문제에 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권효 감독),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이 개발 광풍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춤추는 숲>(강석필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활발한 현재진행형을 증거한다. 무기력한 미래를 맞이하는 청춘들의 고된 삶을 다룬 화제작 <코알라>(김주환 감독)와 <반달곰>(이정홍 감독)도 현재 높은 예매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지점을 관통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삶을 조망하는 <아버지의 이메일>(홍재희 감독), 부재하는 '옥화'를 통해 남아있는 가족의 삶을 재구성하는 <옥화의 집>(허철녕 감독), 수년 동안 라디오에서 녹음한 사운드 아카이빙을 통해 재구성된 '듣는 영화' <이빨, 다리, 깃발, 폭탄>(백종관 감독) 역시 영화제 측의 강력 추천작이다.

▲ <코알라> ⓒ김주환

서울독립영화제는 CGV 압구정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두 곳에서 열린다. 프로그램 정보와 상영시간표, 예매 방법 등은 www.siff.or.kr을 참고하면 된다. 어서 독립영화의 불길 속에 동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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