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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정치권에 기웃? "웃기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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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미화, 정치권에 기웃? "웃기고 자빠졌네!"

[인터뷰] 코미디·시사 누비는 '순악질 여사', 에세이집 내다

코미디언 김미화가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양손엔 비닐봉지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는 "기자들 저녁 먹을 때 다 돼서 배고플 텐데 이것 좀 먹고 일하세요"라며 김밥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2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난 다음 옆에 앉아 타이핑하던 기자에게 가장 먼저 "배 안 고파요? 사온 것 좀 먹고 일했어야 하는데"라고 걱정했다. 안 그래도 매일 C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여러분>을 진행하느라 한창 바쁠 터인데 그 와중에 에세이집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메디치미디어 펴냄)도 펴냈다. 책 곳곳에 배인 따뜻한 배려는 세상 곳곳을 포착하고 자기 자신만큼이나 타인의 삶까지도 놓치지 않는 그의 또렷한 시선 때문에 가능했음을 실감했다.

김미화는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책 자랑을 먼저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자인 본인 자랑이 아니라, 책 표지 자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천문학자 이명현이 인터뷰어로 나선 김미화의 인터뷰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다. <편집자>


▲ 천문학자 이명현과 코미디언 김미화가 만났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미화 : 글씨가 좋아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제목에서 '웃'하고 '자'를 크게 디자인해서 멀리서 보면 '웃자'만 보이는 거죠.(웃음)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님이 써주셨고, 책 곳곳에 들어갈 그림도 그려주셨으니 너무 고마워요. 이건 제 책이 아니라 손 화백님 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천문학자 선생님이 어떻게 저를 다 인터뷰하게 되셨어요?

이명현 : 김미화 선생님은 스타신데 제 전공도 별이니까, 그래서 제가 인터뷰해야겠다고 했죠.(웃음)

김미화 : 투 스타네요, 우리!

이명현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를 죽 다 읽었는데, 안 끝난 것 같아요. 뒤의 내용이 좀 더 있을 것 같더라고요.

김미화 : 책을 처음 써봐서 양이 가늠 안 되더라고요. 처음엔 한 400페이지 정도 분량을 썼어요. 얘깃거리가 너무 넘쳐서 뭘 선택해야 할지 몰랐는데, 출판사 쪽에서 독자의 피로도를 고려하자며 252페이지 분량으로 줄였어요. 지금 말씀은 책 덮기가 아쉬웠다는 말로 이해하겠습니다.(웃음)

이명현 : 맞습니다.(웃음) 차후에 다른 지면에서 얘기를 더 해주실 거라고 믿고요. 일단 가장 인상적인 내용부터 얘기 나눠보고 싶어요.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살고 계시죠. 반딧불도 날아다니는 곳이라고요.

김미화 : 제가 사는 곳이 용인시 원삼면이에요. 9년째 살고 있구요.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라면 되게 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올림픽 대로에서 길 막혀서 1시간 동안 서있는 거나, 안 막히는 고속도로로 빨리 달려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나 저한테는 그게 그거더라고요. 한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린 다음 나머지 30분은 가로수길이에요. 저기 신사동 가로수길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웃음). 정말 아름다운 나무 터널입니다. 책에도 썼습니다만, 개구리가 한 마리 울기 시작하면 다른 개구리는 더 큰 소리를 내서 구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난리가 나요. 몇 만 마리가 우는 것 같아요. 사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 우는 소리를 듣고 뱀이 잡아먹으러 올 수도 있거든요. 개구리들은 목숨 걸고 우는 거죠. 어느 땐 차를 멈추고 서서 개구리 소리만 계속 듣기도 해요.

이명현 : 시골하면 되게 멀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에선 거리상으로 그다지 멀지도 않고 알콩달콩 예쁜 모습이 많이 드러납니다. 농촌엔 노인만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잘 보이고요.

김미화 : 트렌드인지 모르겠는데, 엘리트 직업군 30대들도 많이 살아요. 삼성전자 직원이나 아주 유명한 강남 학원 원장 같은 분들이 애들 데리고 내려와요. 제가 9년 전에 처음 정착할 때만 해도 사는 이들이 별로 많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우리 집이 무덤들 한 가운데 세워졌거든요.(웃음) 동네 사람들은 깜짝 놀라던데, 전 죽어서나 들어올 명당자리를 살아서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마을 초입에 있던 분교에 애들이 차례로 입학하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학생들이 너무 많아져서 본교가 되어버렸어요. 분교가 본교 된 건 대한민국 최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분교 초기엔 소수의 아이들밖에 없으니까 다들 교장 선생님 자전거에 매달려서 하교하거나 선생님과 같이 벼이삭 관찰하고 개구리, 메뚜기 잡으면서 놀았거든요. 이젠 애들이 많아지니까 그럴 기회가 줄어드는 거 아니냐고 걱정들 하시더라고요.

이명현 : 젊은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돈 벌면 가야지, 라고 생각하던 게 이 순간을 더 행복하게 살자는 쪽으로요. 그나저나 집 얘기도 해주세요. 아주 멋지게 지으셨던데요.


▲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김미화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김미화 :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를 설계한 승효상 선생님이 저희 집도 설계해 주셨어요. 어떻게 하면 전체적으로 한국을 좀 더 따뜻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에서 처음 뵙고 친분을 나누게 됐거든요. 그분이 원래 아주 큰 프로젝트만 하시는 분인데, 선뜻 저희 집 설계를 맡아주신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지요. 막상 집을 지으려보니 자재비가 너무 올라서, 아주 코피 터졌습니다.(웃음) 다 짓고 나니 잔디 깔 돈이 없네요.

승효상 선생님이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설계를 해주신 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집 어디에 앉아 있어도 주변 자연 경관이 다 보여요. 창이 굉장히 많아서, 다른 식구들이 거실에 있든 식당에 있든 뭘 하고 있는지 서로 다 보여요. 게다가 집 안에서 많이 걸을 수 있도록 동선을 짜셨어요.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여기 저기 다 거쳐야 하는 구성인데, 참 감사하지요. 살면 살수록 너무 좋아요. 후조당(後凋堂)이라는 집 이름은 한문학자 이명학 선생님이 지어주셨고, 임옥상 선생님이 그 글자를 파주셨어요.

이명현 : 여러 사람의 꿈과 희망이 담긴 집이네요.

김미화 : 김미화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주셨지요.

이명현 : 혹시 태양열 난방을 이용한다든가 하는 쪽으로도 고려하셨나요?

김미화 : 아쉽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태양열 난방을 잘 활용하려면 집이 남향이어야 하는데, 승효상 선생님이 그것과 상관없이 방향을 동쪽과 서쪽으로 설계하셨어요. 집이 개울을 등지고 돌아앉은 모양인데, 앞쪽으로는 산이 보이고요. 오로지 우리 부부를 위해서, 살면서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주셨어요.

이명현 : 책에서 남편 자랑도 많이 해주셨지요?

김미화 : 아이고, 자랑 아니에요. 실제로 그래요!(웃음) 지금까지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또 힘들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재혼 부부의 공통적인 심정일 텐데,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주는 기쁨을 내세우게 되더라고요. 이왕이면 상대방 위주로 생각하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따르고. 남편도 저를 120퍼센트 지지해줘요. 남편하고 살면서, 특히 지난 5년 간 힘든 과정을 많이 겪었는데요. 그 와중에 이 사람이 내 옆에서 위로 안 해줬으면 내가 몹쓸 생각까지 했을 수 있겠다 싶어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어요.

사실 아이들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되지만, 그게 좌절스러울 때가 분명 있어요. 아이들에게 위로받거나 "내가 힘들단다"하고 울면서 하소연하기 힘들거든요. 그럴 때 친구 같은 남편, 내게 위로가 되는 사람에게는 무슨 얘기든 다 해도 잘 받아주고, "그건 부인 생각이 좀 짧은 것 같아요" 혹은 "부인은 아무 잘못한 게 없어요. 밀고 가시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하차할 때도 "부인, 우린 그냥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부인 생각대로 해요"라고 말해줬거든요. 타인과 이렇게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늘 느끼기 때문에 이 책에 들어간 내용은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얘기지, 남편 자랑이 아닙니다.(웃음)

이명현 : 멋진 집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마을 공동체를 위해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시잖아요. '순악질 프로젝트'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시죠.

김미화 : 순악질 프로젝트가 뭐냐면, 일종의 농촌 생협 같은 느낌이랄까요. 생협처럼 조직화되진 않지만 제가 어떤 매개 역할을 해보려구요. 전유성 선배가 청도에 내려가 사시면서 '개나소나콘서트'를 기획하고 계시잖아요. 저도 우리 동네에서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고 싶어요.

▲ 에세이집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를 펴낸 김미화. ⓒ프레시안(최형락)
이 지역 동네들이 꽤 많은데 동네별로 단절이 되어있어요. 그런데 각 동네마다 어디는 복조리를, 어디는 된장을 잘 만들고 또 다른 데는 김장을 잘하거든요. 지산록페스티벌 열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아서 캠핑촌이 특성화된 곳도 있구요. 아직 농촌 지역이 많이 남아있어서 오히려 동네별 특성화도 잘 되어있다는 게 경쟁력인데, 거기에 불만을 가진 동네 분도 있어요. 농지로 묶어놔서 땅값이 안 오른다고. 얼마 전에 어떤 어른이 "국회의원한테 얘기해서 산업용지로 돌리자"고 강하게 주장하시는 걸 듣고 제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분들 말에 의하면 산업용지로 돌리면 땅값이 오르고, 공장이 지어지면 식당이 지어질 것 아니냐는 거거든요.

저는 서울을 비롯한 가까운 지역 분들이 우리 동네로 놀러올 수 있게 판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친환경 체험농장으로 유명한 일본 모꾸모꾸 농장까지 견학하고 왔어요. 우리 동네는 에버랜드와도 가깝고 하니, 주말에 도시 사람들이 애기들 데리고 같이 놀러오면 할 일이 정말 많아요. 농민들이 친환경적으로 가꾼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열 수 있고, 시낭송회나 유명한 분들의 강의 같은 것도 꾸준히 열리는 문화행사까지 열리면 더 좋지 않겠어요? 저랑 남편이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아지트는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게 완성되면 2012년 봄부터 순악질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되도록 주말에는 집에 붙어있으려고요. 놀러오는 분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고구마나 옥수수도 삶아주고 같이 쑥도 캐고 그럴 거예요. 도시 사람들은 아주 좋은 먹거리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기존의 직거래 유통 경로를 알지 못해 못 팔던 동네 분들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겠죠. 우리 동네에 정미소도 있어요. 농부들이 벼를 수확하면 자루에 넣어 보관하다가 팔리기 직전에 도정해요. 주말에 사람들 놀러오면 정미소에 데려가서 직접 벼를 도정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깎여 나온 껍질은 가져가도 돼요. 이 겨를 음식 쓰레기에 덮어놓으면 음식물이 잘 분해되고 파리가 안 낍니다. 동네 분들이 가르쳐주셨어요.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웃음을 위해 고군분투한 다음, 주말엔 동네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랑 남편은 아주 꿈에 부풀어 있어요.

이명현 : 로컬 푸드 운동이 사실 구호 중심인 경우가 많은데 김미화 선생님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게 푸근하고 쉽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즐겁고 행복한 얘기만 했는데 좀 다른 얘기도 해볼까요. 끝까지 코미디언이고 싶다고 하실 만큼 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시잖아요, 지금쯤이면 다른 변신을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미화 : 저는 권위적이고 딱딱한 걸 몸으로부터 밀어내는 것 같아요.

이명현 : 본성적으로…?

김미화 : 네. 어른이 되는 게 싫어요. 세뱃돈 받는 게 더 좋은데 왜 내가 주는 위치가 됐지 싶어요.(웃음) 어찌됐건 저의 정체성은 코미디언인데, 시사 프로그램 진행한다고 그게 없어지지 않아요. 이 일이 세상사에 불만이 있거나 분통 터져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모든 일은 일어나려고 애초에 예비되었구나 하고 생각해버리면 편해요.

이명현 : 언젠간 터질 것이었다는 말이군요.

김미화 :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한 것도 언젠간 터질 일이었고, 제가 기획했던 <개그 콘서트>가 잘 된 것도 터질 일이었어요. 코미디언이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다는 것도 코미디 아닌가요?(웃음) 사회가 여러 가지로 참, 비극인데 희극도 많습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한다고 저를 코미디와 떨어뜨린 채 '당신은 지금 이거잖아'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시사가 코미디고 코미디가 시사인 겁니다.(웃음)

▲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최형락)
이명현 :
힘든 5년을 겪으셨는데요. 외부의 압력들이 의도치 않게 찾아온 거잖아요. 보통은 그냥 참고 넘어가는 편인데, 김미화 선생님은 이를테면 <동아일보>의 폴리테이너(정치인+연예인) 왜곡 보도 건과도 끝까지 싸우서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게 하셨죠.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의 관례를 만들어내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김미화 : 그러게요. 제가 성격이 좀…부드러운 것에는 굉장히 부드럽고, 어떻게 보면 이것만은 꼭 바꾸고 싶다는 게 생기면 기어이 바꿨던 것 같아요.

이명현 :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건가요?

김미화 : 네. 뭐냐면 일종의 실험정신일 수 있는데, 틀에 갇혀서 생각하기 싫다,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욕망을 되게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초기에 <젊음의 행진>에 출연했는데, 그때 주병진 선배, 돌아가신 김형곤 선배, 장두석 선배 등이 주로 활동하셨어요. 여자 코미디언들이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웃긴데도 여자 코미디언들이 보조 MC 정도에 그치면서 주류 취급을 못 받았어요.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도 없었구요. 그때 19살이었는데 되게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전 6살 때부터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거든요. 우리 집에 TV가 없어서 <웃으면 복이 와요> 방송할 때는 옆집에라도 가서 기어이 시청하고, 학교 수업보다는 코미디에 집중하면서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아니더라는 거죠. 더 기분 나쁜 건 내가 예쁘지 않아서 쓰임을 못 받는 거예요. 아니, 솔직히 안 예뻐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난 내가 웃긴 사람이고 웃기게 생겼기 때문에 코미디언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선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생겼어요. 그걸 바꿔보고 싶었어요. 아이디어 회의할 때 동기들하고 엄청 많이 싸웠어요. 그 중에서 동기였던 김한국 씨랑 특히 서로 자기 아이디어가 재미있다고 싸웠거든요. 김한국 씨가 "난 김미화랑은 절대 같이 안 해!" 막 그러고. 그런데 결국 욕심 많은 두 사람이 콤비가 돼서 '쓰리랑 부부'를 한 거예요.(웃음) 이후에도 아이디어 면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코미디 계에 뛰어들었는데, 나중에서야 제가 공부를 안 한 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넘어지고 자빠지고 그런 것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걸핏하면 코미디가 저질 시비에 휘말리더라고요. PD들도 코미디 프로는 안 맡고 싶어하고 어쩌다 맡게 되면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고. 가슴 아팠어요. 난 코미디를 너무 사랑하고 목숨을 걸만큼 하고 싶어서 왔는데 왜 남들에겐 이런 취급을 받을까? 그때 비로소 희극의 깊이에 대한 학식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990년대 초반에 공부를 시작했죠. 그때 중앙대학교가 방송국이랑 가까워서, 3년 내내 신문방송학과랑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야간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학위를 따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학교에 들어가려면 절차다 뭐다 힘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수업을 들으면서 나한테 부족한 걸 느끼고 보충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편성이 뭐고, 코미디가 뭔지 넓게 보기 시작한 거죠. 지금 제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코미디를 더 잘 하고 싶어서고, 또 나이 들면 일을 쉬어야 한다는 편견도 깨고 싶어서에요. 외국 뉴스나 정치 토크쇼를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진행하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그렇게 가혹하게 굴까요? 수명은 연장되는데 정년퇴임하는 사람들이 점점 어려지죠. 그 편견을 스스로 타파해야 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나이 들어서 후배들한테 "내가 코미디를 위해 이렇게 애썼는데 너희들이 나를 대우 안 해?" 이러려는 게 아니에요. 그럼 안돼요. 제가 후배들하고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걸 언제나 의식하고 있어요. 후배들이 스타가 되어 막 치고 올라오면, 나랑도 어느 순간 만날 기회가 찾아올 거거든요. 그때 내가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그들과 새롭게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김 선생님, 존경합니다" 운운하는 소리만 듣는 거 원치 않아요. 스스로가 물꼬를 트면서 열심히 살아야죠.

이명현 : 그런 걸 솔직하게 써주신 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요즘은 잘 못 받아들이는데, 김미화 선생님은 솔직하게 보여주셔서 좋았어요. 하지만 KBS 블랙 리스트라든가 MBC 하차 사건 등 비슷한 상황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잖아요. MBC 사장 해임안은 부결됐고 파업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요. 개선되지 않는 듯한 상황 속에서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미화 : 정치권이 한마디로 비겁한 거예요. 나이든 사람들이 비겁하구요. 자기 출세를 위해서 젊은 사람들의 심정을 하나도 헤아리지 않고, 나한테 권력 있을 때 너희를 짓밟아줄 테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50줄에 가까워지다 보니까, 똑같이 당하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세월이 지나면 돌고 돌아요. 어떤 사람이 어떤 위치에 갈지 아무도 몰라요. 내가 권력 잡았을 때 그게 다라고 생각하면 진짜 오산이에요. 내가 늙었을 때 나의 희망은 젊은이라는 걸 모르는 거죠.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데 그 작가의 <나무>(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나이든 사람들이 길에 돌아다니면 젊은이들이 신고해서 어디론가 끌려가서 없어지거든요. 나이든 사람들을 하나도 볼 수 없는 거리가 되는 겁니다. 정말 무섭지요.

이명현 : 지금 우리가 그런 보복을 받을 수도 있는 거죠. 분노가 쌓이고 있고요.

▲ 코미디언 김미화. ⓒ프레시안(최형락)

김미화 : 국민 연금이나 건강 보험 전부 젊은이들이 일한 대가를 뚝 잘라서 나이든 이들에게 보상해주는 건데, 그걸 몰라줘요. 이빨 빠진 호랑이를 누가 애틋해할 것이며, 자기 부모도 버리는 판에 회사 선배? 얄짤 없죠.(웃음) 예전에 남편이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부인은 큰 파도인데, 큰 파도가 잔 파도한테 밀리게 돼요." 와, 설득력 있다!(웃음)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낮아지라고 충고하는 거였어요. 이건 남편 자랑 맞습니다.(웃음)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많이들 못 그러고 있죠. 정치권에 줄을 대면 생명연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포도당 주사 한 대 더 놓는 수준이에요.

이명현 :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말 되게 바꾸고 싶어서 계속 말을 한다고 쓰셨지요. 사실 다들 그런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힘들잖아요. 그런 생각이 김미화 선생님의 책에 투사될 수 있으니 자기만족 비슷하게 호응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김미화 : 저야 감사하죠. 여태까지 내가 이루고 싶은 것 다 이루고 살았어요. 생각하면 그대로 됐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잘 됐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는 대로 되더라고요.(웃음) 코미디로 인기 얻고 싶었는데 '쓰리랑 부부'가 빵 터졌고, 개콘도 처음에 반대가 심하고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잘 할 자신 있다"고 밀어붙였더니 정말 잘 됐고요. 시사 프로그램도 처음 맡을 때 두려웠지만 '이거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더니 정말 잘 됐어요.

물론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전 제 인생을 굉장히 즐기고 있어요.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를 읽다가 울었다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깊은 슬픔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은 순간은 없더라는 거죠. 향후에도 걸어가는 도중 돌부리에 부딪혀 넘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으니까 좌절하지 말자는 거예요.

이명현 : 마지막으로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를 읽을 젊은 친구들에게도 덕담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김미화 : 미안하지요. 다 미안해요.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어려워서 미안하고, 대학 안 간 사람들도 그 나름대로 어려워서 미안하고, 직장인들은 그 나름대로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서 미안하고요. 시사 프로그램을 매일 2시간씩 진행하다보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요. 신부님이 고해성사 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을 만큼, 별별 사연이 다 있어요. 이걸 봐도 안타깝고 저걸 봐도 안타깝고, 직접 현장에 가 보면 더 안타깝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해고 노동자들이 스티로폼 깔고 앉아서 비닐 천막 치고 농성하는 걸 봐도 안타깝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돼요.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쓰러지지 마라, 버텨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버텨내지 못하면 그냥 손해에요. 내 아픔을 나 자신만큼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부모? 형제? 아무 소용없어요. 다 각자거든요. 자기 고통은 스스로 이기고 감당하고, 거기서 헤어나오려고 노력하고, 대신 주변 사람들한테 소문 많이 내고 살아야 돼요. 전 아플 때 소문 엄청 많이 내요.(웃음)

제 트위터 계정을 36만 명이 팔로잉하는데요, 그분들한테도 정말 감사해요. MBC 하차한 다음 7개월 동안 방송을 안 하고 지냈어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산 끝자락 집에서 산장의 여인처럼 혼자 앉아 견뎌낼 때, 인터넷을 들여다보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저를 계속 걱정해줬어요.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렇게 따뜻하게 애기할 수 있는데 아는 사람들끼리 왜 못해줄까요.

전 너무 심한 악플만 아니면 화가 나지도 않아요. 그냥 웃어넘겨요. 코미디언이 만만해야 하는데, 아직도 날 만만하게 보니까 좋은 것 같아요. 시사 프로그램 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 아닌데,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이나 저한테는 다 똑같이 열심히 하는 일일 뿐인데 그거 가지고 갑자기 저를 높이 평가하거나 하면 불편하더라고요.

이명현 : 말씀 듣다보니 진짜 김미화 선생님 묘비명으로 '웃기고 자빠졌네'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웃음)

김미화 : 사실 묻힐 생각은 없고 화장을 선호하는데(웃음), 다만 무대 위에서 웃기고 자빠졌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지요.

이명현 :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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