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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미네르바 '입막음'의 나라…600년 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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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미네르바 '입막음'의 나라…600년 전엔?

[프레시안 books] 한만수의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한만수는 필자의 책 <진실 유포죄>(다산초당 펴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진실 유포죄>는) '표현의 자유=근대 서구'라는 등식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다. 표현 자유는 근대 서구에서 비롯되어 세계에 전파된 것일까. 또한 현재 그 지역의 사례들이 모범적이기만 할까.

예컨대 조선 시대는, 물론 양반 계층의 남성으로 한정되긴 했지만,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도 그에게는 사초(史草)를 보여주지 않았으며 유림들의 상소는 거리낌이 없었다. 한국에서 의사소통의 자유란, 서구적 근대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싹튼 것이 아니라, 식민 체험과 독재 시기를 겪으면서 왜곡되고 후퇴된 셈이다.

게다가 식민 시기와 독재 시기에,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표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헌신했던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은 무수히 많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보완될 때 이 책은 설득력이 더해지지 않을까." (☞관련 기사 : "불온한 검열관, 커밍아웃하다!", 강조는 인용자)


사실 이 비판을 듣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서구적 근대를 숭상해서 서구적 근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명예훼손죄, 모욕죄, 업무방해죄, 사전검열제, 집회허가제, 본인확인제 등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제도들 모두 서구적 근대의 산물들이다.

이 서구 문물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구 문물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주로 인용하는 것은 서구 국가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만든 법을 해체하는 과정과 논리이다. 캐나다의 준델(Zundel) 판결, 미국의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Sullivan) 판결, 독일의 사소(私訴) 제도 등을 얘기 안할 재간이 없다. 이 책이 사대적으로 읽힌다면 우리 법제의 사대적인 역사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마저도 그 역사에서 왔겠지만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들이 사해(대?)주의적임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거의 대부분의 정책들이 모두 외국에서 그 원형을 찾아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역으로 필자는 UN 및 소위 인권 선진국들의 사례들이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억압 법제들에 대한 반대 논리로서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 서글펐다. 이 억압적인 기제들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제가 그냥 거대한 '똥더미'처럼 싸놓고 가버린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많은 것들 모두 일제 시대의 잔재 청산 아니 똥치우기라고 보면 된다. 이 생각만 하면 내 숭고한(?) 지식으로 너무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한다'는 청소부의 자긍심으로 버티기도 했다.

▲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한만수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그러나 이제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는 책이 나왔다. 바로 한만수가 내 책의 서평에서 나에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던 "식민 시기와 독재 시기에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헌신했던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이다. 이제 그들의 사연 속에서 나의 작은 사연들을 묻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책은 왜 인쇄일과 발행일이 다를까?'는 책에 실린 글의 제목이다. (25쪽~) 그 답이 궁금할 것이다. 난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서평이 스포일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벽돌 신문'이 무슨 뜻인지, '미국 들어간다'는 말의 역사성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지 않으련다. 대신 다른 책을 소개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충격을 간접 경험시켜 주고자 한다.

한만수가 <진실 유포죄>를 비판하며 '왕이 보지 못하도록 한 사초(史草)'를 언급하여 일부러 찾아본 책인데, 바로 세종대왕의 표현의 자유 정책들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왕의 경영>(이준태 지음, 다산초당 펴냄)이다.

황해도 강음현의 백성 조원이 토지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해당 고을 수령이 오랫동안 미루면서 처리를 하지 않자,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해서 이런 수령을 임명했다고 말[하여 감옥에 갇혔는데 세종은 풀어주라고 지시하면서](143쪽. 세종실록 24권, 6년 4월4일 인용) …"

자신의 민원을 방치하고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은 고을 수령 때문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내뱉은 말인데다가 그런 고을 수령을 뽑아 보낸 내 탓도 크다"(126쪽. 세종실록 24권, 6년 4월17일 인용)[고 말한 후 신하들이 다시 처벌을 읍소하자 며칠 후] "다시 물어보지 말라. 무지한 백성이 나를 착하지 못하다 한 것은 (몰라서 그런 것이니) 차마 어찌 죄를 주겠느냐. 속히 놓아 보내라"(143쪽. 세종실록 24권, 6년 4월4일 인용)고 명령한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이천 사람 전남기가, '지금의 임금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서해도에도 임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하였으니 (…) 엄한 형벌에 처하시 (…) 옵소서"라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 예부터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원망하는 말을 하기 마련이 아니냐 (…) 전남기 또한 관에서 빌려준 곡식의 상황을 독촉하자 생활이 힘들어져 그런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일 뿐이니, 나를 상하게 하고 해를 끼침이 뭐가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144쪽. 세종실록 59권, 15년 3월13일 인용)

세종대왕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세종의 다른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어질지 못하고 일처리에 어두우니, 내 행위 중 분명 하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힘써 나의 허물을 찾아내어 나로 하여금 하늘의 꾸짖음에 반성하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라" (123쪽. 세종실록 30권, 7년 12월8일 인용)

특히 세종은 "지금은 밝은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한 자에게도 "국정을 비방한 것에 대해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며 판결을 내렸다. (146쪽. 세종실록 40권, 10년 4월21일 인용) 세종은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신하들에게 "나에게 솔직히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죄를 주라 하니, 나로 하여금 아래의 사정을 듣지 못하게 하여 무지몽매함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냐?"(147쪽. 세종실록 61권, 15년 7월 27일 인용)며 꾸짖었다.

미네르바가 한국 정부의 환율 정책을 비판하였다고 100일간 감옥살이를 하고, 언론소비자국민캠페인 활동가들이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신문에 대해 불매 운동을 했다고 하여 60일간 감옥살이를 하고, 제작진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고 하여 6개월치 이메일 압수수색 및 체포를 당하는 MB 시대를 막 견뎌낸 여러분들, 무엇을 느끼는가? 서구의 표현의 자유 이념 창시자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존 밀턴(John Milton)이 태어난 1608년 보다 200년 앞선 이야기이다(세종, 1397~1450).

바로 이런 느낌을 한만수의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를 읽으면서 느끼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도 다른 시대의 다른 장소의 사람들이 똑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힘을 얻는다. 나는 법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의 역사를 읽으면서 나의 신념들을 다시 확인하는 좋은 경험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4년 전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론을 처음 펼쳤을 때 느꼈고 지금도 적지 않게 견뎌내야 하는 고독감, 인터넷실명제 헌법소송을 처음 기획하였을 때 변호사들에게 거듭 거절당하며 느꼈던 좌절감, <검열자 일기>가 기소 당했을 때의 모멸감과-물론 지금은 모두 승소해서 달콤하지만 승소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도-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 해소되는 느낌이다. 나에게, 혹은 <진실 유포죄>를 읽은 독자들에게도 책은 일종의 해원 굿이 될 것이다. 특히 '검열의 생산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 너머'(189쪽~)라는 글을 제대로 읽으면, 검열과 반 검열이 저자의 손에서 하나의 문화사로 엮여지는 광경을 보면서 결국 검열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나 조급함도 많이 다스려질 것이다. 내가 그토록 많이 이야기하는 '위축 효과', 이렇게 치유될 수도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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