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도 않고 그럴 의지도 없다. 이는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유효성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아직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지속되고 있고, 한중간의 신뢰 수준은 높지 않고, 한미동맹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양안 통일문제가 남아 있고,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 가능성이 상존한다.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이 보수적이며, 변화에 저항적이란 것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대북정책은 근본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함께 거닐며 손을 흔들고 있다. 양국 정상의 노타이 차림으로 알 수 있듯이 양국은 이번 회담을 두 정상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AP=연합뉴스 |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좀 더 고려해봐야 할 점이 존재한다. 우선은 중국의 현 대북정책 변화를 전술적이고 임시방편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크고 본질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중국 내부의 번민과 갈등, 즉 현재 북핵 문제 및 동북안 안보정세를 놓고 "북경은 온통 회의 중"인 현상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러한 경직된 해석으로 인해 우리의 대(對)중정책을 오도하고 전략적인 기회의 시기를 놓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중국의 대북정책에 전략적인 변화는 없고 단지 전술적인 변화만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박근혜 정부에서 굳이 대중정책에 이리 공을 들이고 중국에 대해 기대할 필요는 없다. 중국은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의 핵무장화에 직면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대북정책을 놓고 기존과는 다른 환경, 기준, 정책 우선순위를 가지고 비판적인 재검토에 들어가 있고, 그 결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술적 변화와 전략적 변화의 그 어느 중간 사이에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설사 외양적으로는 기존과 별 차이 없는 정책으로 회귀한다 할지라도 그 전제가 되는 중국 외교의 DNA는 상당한 정도의 변화를 겪으면서 기존의 대북정책과는 전혀 다른 변화의 씨앗을 이미 잉태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전례 없이 학계는 물론이려니와 일반인들의 대북비판과 시위를 허용하였다. 국경무역은 물론이고, 중국 내 북한의 금융활동에 대해 압박을 강화하여 김정은 정권의 허리를 바짝 압박해가고 있다. 한국 측과 군사부문에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고, 민간전문가 회의에서는 한반도의 중장기 미래나 북한 위기관리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북한의 목젖까지 위협을 하였다. 2013년 6월 미·중 간 정상회담에서는 북핵문제에 관한 한 미중의 이해가 합치한다는 란초미라지 선언까지 나왔다.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역시 변화를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대(對)한반도정책은 전쟁방지, 북한혼란방지, 한국에 의한 통일저지, 비핵화라는 3不(불) 1無(무)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기존의 3不 1無 원칙 대신에 비핵화, 안정과 평화유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중국의 공식적인 대한반도 정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에 3不 1無 원칙에 내포되어 있는 '한국에 의한 통일 저지' 원칙이 새로 제시한 원칙 속에는 사라졌고, 심지어는 (한국에 의한) 자주적 평화통일 지지라는 원칙을 제4원칙으로 제시할지 숙고 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숨에 이뤄졌다기보다는 후진타오(胡錦濤) 시기 이래 추진해 온 대북 정상국가관계 수립 추진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인은 최근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미국 발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현재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시진핑 시기 내에 세계 제1규모의 경제 대국이 될 전망이다. 시진핑 개인 역시 후진타오와는 달리 변화가 수반하는 불확실성을 감내할 자신감과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변화의 동인은 중국이 이제는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세계, 지역, 한반도 전략을 재해석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진타오 시기에는 중국은 발전도상국이라는 인식이 강하였고, 경제발전을 위해 주변 환경을 어떻게든 안정시키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가 주어졌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이 명백하고 민간인 사상자까지 난 2010년 연평도 사건이 벌어졌을 때조차도 안정을 강조하였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대외문제에 대해서 조심스러워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국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이미지를 가꾸며, 중국의 핵심 및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세 번째, 북한 핵문제에 대한 판단 역시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까지도 북한의 핵 개발 기술과 의지를 과소평가하였고, 북한 정권의 안정문제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비핵화보다는 북한의 안정을 더 중요한 정책 우선 순위로 놓았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북한은 핵 무기화를 아예 헌법조항에 넣고, 제3차 핵실험에서 놀라운 기술적 진전을 보여주었다. 이에 중국은 북한의 핵 무기화 추구가 실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저해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네 번째, 중국은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판단 및 대중 배려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지니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과거 김정일 정권이 지닌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대한 배려 및 존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였다. 대신 과도할 정도의 일방적인 도발과 긴장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중국이 개입하여 이를 억제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니게 하였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핵 무기화 체계 완성은 중국의 대북 통제권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북핵문제는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대외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로 추진하는 미국과의 "새로운 강대국 관계" 설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제시하는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미·중 간 새로운 관계의 가장 중요한 '리트머스지'가 "북한의 비핵화" 에 대한 상호 협력인 것이다. 중국은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향후 시진핑 시기 대외관계의 핵심적인 정책방향인 새로운 강대국 관계는 파탄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요인들이 결합하여 중국은 북핵문제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면서 비핵화에 이르는 수단들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 제1차 핵실험 이후 배운 교훈은 '미국보다 먼저 나서지 마라' 였다. 제2차 핵실험 이후 배운 결론은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의 분리였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대북정책은 제1차 핵실험 이후의 교훈을 이미 포기하였고, 북핵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 다룬다는 결론 역시 포기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강하게 내보내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중 관계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최룡해와 김계관에게 분명히 전하였다. 북·중 관계는 과거의 특수 관계가 아니라 국가이익에 기반한 정상적인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주가 된다는 입장 역시 분명히 하였다. 이것이 이번 6월 북·중 간 전통적인 당대당이 아닌 외교부 간의 전략대화를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핵무기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즉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의 중대한 전략적 이익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화에는 분명히 반대하지만, 현 단계에서 이로 인해 북한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내의 토론과정에서 북한 "전략적 자산론", "전략적 부담론", "전략적 함정론" 등이 혼재하지만, 현 정국에서 북한에 끌려다녀서는 안 되겠다는 전략적 함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북한 "전략적 부담론"과는 달리 중국이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인정하고 있어, 한국이 기대하는 중국의 역할과는 분명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중국의 입장을 지극히 곤혹스럽게 할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대북 설득과 압력을 최대한 강화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여전히 일정 정도 배려를 해주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이 궁극적으로 사용할 대북 정책수단의 항목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환경은 북한의 핵무기화 추진으로 인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추이는 전략적인 선택을 고심하던 한국에 중국과 협력과 상생의 공통영역을 급속히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다만 중국의 대북 인식과 정책은 여전히 한국과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도 동시에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중국 대북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중국의 이러한 변화를 잘 활용하여 한중 전략적 협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추후 중국의 직접적이고 압도적인 압력에 부담을 느끼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의 관계는 일정 정도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한국을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미·중이 다 같이 협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동북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비전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중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중국의 대북 정책의 변화를 담보하는 데 미국의 역할은 가장 중요하며, 미국의 북핵 관련 정책 형성에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3년 7·8월호(제24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한반도 정세와 중국의 역할'입니다. * 원제 : 북·중 관계의 변화와 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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