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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토피 잡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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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토피 잡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없나요?"

[초록發光] 아토피 없는 나라

나는 아토피 환자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은 마치 당뇨병 환자와 그러하듯 이 병과 공존하며 스스로를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완치가 어려우니 증세가 확 번져 뒤집어지지 않도록 다독이며 같이 갈 수 밖에 없다. 물론 물 좋고 공기 좋은 데서 살고, 스님들처럼 먹고 살면 이 병은 낫는다(고들 말한다). 서울서 아토피로 고생하던 가족이 남양주만 나가도, 아예 시골로 내려가거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더니 완치되었더라는 이야기들도 널리 회자된다.

그렇지만, 오염 물질 범벅된 세상, 실제로 몸에는 독이 되지만 간사하게도 입에는 짝짝 붙는 온갖 정체모를 먹을거리들의 유혹이 엄청난 도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아토피 환우들은 그저 관리하며 살 수 밖에. 몸에 안 좋은 것들은 웬만하면 덜 하며 '착하게' 살거나 그런 환경에 쫌 노출되었다 싶으면 환자나 환자의 부모 성향에 따라 단식을 택하든 양방이든 한의원이든 병원을 찾으며 자신의 평소 생활 습관을 반성하며 다독거리며 오래도록 함께 가야 한다.

아토피로 한 번 뒤집어지면, 이건 정말 대책이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 외우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서너 달 괴롭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과의 싸움을 그저 견뎌야 한다. 밤낮 없는 가려움증은 괴롭고 혼자 감당해야 해서 고통스러우며 남에게 보이기 심각한 피부 상태는 환자를 집 안에 고립시키기에 아토피는 참으로 외로운 질병이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온 몸이 뒤집어졌다. 어느 날 갑작스레 수포 동반 두드러기가 올라오더니 몸의 항상성 조절 체계가 된통 고장이 난 모양이다. 근 열흘을 끝도 없이 방울방울 솟아오르는 진물과의 전쟁을 하고 그 두 배쯤 되는 시간 동안 각질과의 전쟁을 치렀다. 잠 못 자고, 먹을 거 제대로 못 먹고, 한 동안 모아둔 비자금은 홀랑 약값으로 소진하며 방바닥을 벗 삼아 한 달을 보냈다. 다행히 한 달을 넘어서자 진정세에 들어서기는 했는데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이유는 다르지만 혹자들처럼 대선 무렵까지 금주는 당연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와 꾸준한 운동과 체력 보강을 통해 내 몸에 사과하고 조심조심 섬기며 살아야 할 터이다.

대표적인 면역성 질환(과민한 면역 반응)으로 알려진 아토피는 어느 날 솟아난 질병은 아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흙 밟기 시작하면 가라앉는다"고 여겨져서 일부 아기들이 영아기 때 겪다 저절로 좋아진다고 태열(胎熱)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1990년대 이래로 한국에서 아토피 질환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 되었다.

아이만 앓는 게 아니다. 호르몬이 변화하는 사춘기에 발병하거나 노년기에 갑작스레 발병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아토피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진료환자의 수는 879만 명이며, 치료에 소요된 공식 비용만도 6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바로 가기 : 환경부 산하 건강 포털 케미스토리).

부정을 의미하는 'a'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아토피(atopy)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아토피는 발병 원인도 발현의 증상과 발현 국소도 특정하기 어렵다. 유발 원인은 통상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양자로 구분되는데, 지난 20년간 유전적 측면의 교란이 갑작스레 증가하기는 어려운데다가 소아/청소년기를 넘어서 성인 아토피나 노년기의 갑작스런 발병도 증가하고 있는 까닭에 최근의 아토피 질환의 증가는 환경적 요인에서 주로 찾고 있다.

그렇지만 환경적 요인이라는 것도 특정하기는 어렵다. 우유나 계란과 같은 일반적인 단백질 성분에 그야말로 과민 반응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온갖 가공 식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첨가제며 색소와 같은 식품에서 유래하는 원인에서부터 미세 먼지, 공기 오염, 부유 세균, 곤충, 새집 증후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포름알데히드, 각종 인공 방향제, 시멘트에 이르기까지 원인을 찾자면 그 리스트는 세상에 없던 모든 인공 합성물을 포괄할 만큼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는 지구적 기후 변화가 가져온 곤충과 난대성 식물(예컨대, 대표적인 외래종인 돼지풀의 확산)의 생육 범위의 확장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각종 유해 물질을 접한다. 이런 유해물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아토피의 원인으로 꼽힌다. ⓒchemistory.go.kr

사실 성인 아토피 환자들의 경우엔 이 병의 원인이 곧 자기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 당장 내 경우가 그렇다. 아토피 소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좀 방만하게 산다. 생활협동조합 아줌마를 자처하지만 술과 길거리 떡볶이를 사랑하고, 그다지 능률이 따르는 것도 아닌데 어둠이 내려야 일을 시작하는 올빼미 습관으로 잠시간 줄이는가 하면, 나 없이도 세상 돌아간다는 것 모르는 바 아니면서도 온갖 곳 관여하며 일 벌이는 것을 좋아라하면서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 못하는 아가들이나 '묻지마 공부 개미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서 아토피 질환이 증대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아토피 환자들이 모여 있는 게시판을 좀 돌아다니다 보면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사연들이 그야말로 구구절절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밤새 긁어대 피칠갑 된 아이를 안고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기 직전이더라는 아토피 엄마의 이야기는 레퍼토리처럼 반복된다.

아이들에게 더럽다 놀림 받아서 학교를 기피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넘쳐난다. 당사자인 아기와 청소년들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소위 아토피 자녀를 둔 엄마들은 그야말로 '터가 안 좋았다'(우리 집엔 그러 사람 없었다, 임신 기간 중 뭘 먹은거니? 등등)는 안팎의 눈초리를 감내하며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기도 한다.

이런 아토피 어떻게 하면 줄어들까? 지난 달 한 언론의 사회면 기사에서 소개된 대구 영진고등학교의 100일 간의 현미 채식 급식의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먹을거리를 바꿨을 뿐인데, 아토피와 비만이 줄었을 뿐 아니라 집중력도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자기 자녀의 아토피로 고민하다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환경 파수꾼이 된 환경정의의 '다지모(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의 모임)'이 나눠주는 아토피 관리 노하우나 몸을 이롭게 하는 단식 요법을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수팥떡가족사랑연대'(☞바로 가기)의 아름다운 나눔에서도 아토피를 완화할 수 있는 자구책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개인들의 자구책과 이것의 아름다운 나눔에만 기댈 것인가? 위의 영진고등학교의 실험을 특수하게 바라보는 대신 정책적 과제로 안을 수 있지 않을까. 무상 급식을 넘어 친환경 급식 건강 급식을 강조해야 할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엄마들의 자구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건강한 먹을거리를 원활하게 생산하고 유통하기 위해 국내 유기농 생산을 장려하고 현재의 생활협동조합 경제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이미 1조 원 단위의 큰 시장이 된 아토피 치료 시장을 공공 의료의 몫으로 돌려놓는 것이야 말로 국가 수준에서 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 때 아토피는 생활 정치의 대표적 아이템으로 지방선거에서 반짝 거론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개인이나 개별 가정의 문제이자 시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짓고 부수고 파헤치고 공구리 치는데 몰두했던 5년짜리 정부로 인해 환경 분야의 숱한 과제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렇게 망가진 하드웨어들을 원상복구하기 위해서 소요되어야 할 재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하드웨어 속에서 살아가야할 국민들이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아토피와 기타 환경 질환으로 인한 고통과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상당히 불합리하지 않은가.

오래 전 유럽의 광부들은 탄광의 유독가스 수준을 감별하기 위해 새장 속의 카나리아를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아토피 환자들은 시대의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그 수가 늘고 대상자의 범주가 늘어간다는 것은 곧 이 사회가 점점 더 살만하지 않은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토건 국가를 넘어 '아토피 없는 나라' 만들기. 생태 복지 국가를 거론하는 대선 주자들이라면, 대표 슬로건으로 검토해 볼 것을 제안한다. 온갖 사회 현안이 논의될 수 있는 대선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단순히 토건의 수레바퀴를 세우겠노라 선언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들에게 떠넘겨진 무거운 짐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건강한 노력이 환경 분야의 주요 주제로 논의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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