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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지배하는 세상? 제발 오버하지 마!

[프레시안 books]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

얼마 전, 미국의 한 뇌신경 과학자가 쓴 '맥도날드가 당신의 뇌에 관해 알고 있는 7가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는 세계 최대의 패스트푸드 체인 업체 맥도날드. 질병 종합 선물 세트로 불릴 만큼 고혈압, 당뇨, 비만, 고지혈증 등 건강에 온갖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여전히 맥도날드로 발길을 돌리는 것일까. 젊은 뇌신경 과학자 조슈아 고윈은 경영 전략적 측면이 아닌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뇌신경 과학적 측면에서 맥도날드의 성공 전략을 분석해 보았다.

맥도날드는(맥도날드만은 아니겠지만) 그동안 뇌신경 과학이 밝혀낸, 먹을거리 및 의사 결정에 관련된 우리 뇌(그리고 마음)의 속성을 야무지게 이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 뇌는 설탕에 중독성을 보인다(맥도날드 거의 전 메뉴가 설탕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 뇌는 고열량 먹을거리를 선호한다. 우리 뇌는 빠른 속도(로 먹을거리를 제공받고 먹는 것)에 중독된다(심지어 차에 탄 채로 주문해서 몇 분 안에 햄버거를 손에 쥘 수도 있다).

우리 뇌는 (어렵게 번) 돈을 쓰는 게 아까워서 값싼 먹을거리를 선택한다(맥런치 메뉴는 시중의 다른 밥값보다 싼 2900원이다). 우리 뇌는 동일한 경험이 제공되는 환경에 조건화된다(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똑같은 옷을 입은 점원이 매번 똑같은 인사말을 건네며 메뉴판이나 인테리어도 거의 변함이 없다) 등등.

바야흐로 내가 아닌 내 뇌가 왜 맥도날드를 찾는지, 펩시가 아닌 코카콜라를 선호하는지를 연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인체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신비로운 기관인 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뇌신경 과학이 단지 뇌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넘어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경험하며 행동하는지 하는 마음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면서 오늘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삶의 많은 영역들에서 뇌 과학과 맞닥뜨리고 있다.

특히 살아 있는 뇌를 형상화하는 신기술, 그중에서도 혈류량 변화를 통해 뇌의 활동성을 측정하는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는 자극에 대해 일어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줌으로써 뇌신경 과학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접근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고가의 번쩍거리는 신기술을 등에 업은 뇌신경 과학이 21세기에 접어들며 하나둘 펼쳐 놓기 시작한 우리 마음에 관한 연구들은 최근에 와서는 일반인들도 신문이며 방송이며 책과 잡지 등을 통해 거의 매일 접할 만큼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화려한 색상의 뇌 사진과 함께 이 부위는 특정 감정과, 저 부위는 특정 사고와, 또 저 부위는 특정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는 식의 기사(며칠 전에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의 뇌를 촬영한 fMRI 사진도 등장했다!)와 위 맥도날드의 예처럼 소비자 심리를 뇌신경 과학을 통해 분석한다거나(<선택의 과학>), 정치와 관련해 유권자와 정치가의 마음을 읽는다거나(<똑똑한 바보들> 및 <폴리티컬 마인드>), 일상생활 속에서의 개개인의 의사 결정과 선택을 짚어 보는(<나는 결심하고 뇌는 비웃는다>, <마음대로 고르세요>,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책들을 쉽사리 만나 볼 수 있다.

문제는 뇌신경 과학이 뇌에서의 작동 기작과 의사 결정 처리 과정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한 결과들이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믿음, 즉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이 허상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며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진정 지금까지 뇌신경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은 우리 뇌가 물리 법칙에 완전한 지배를 받는 결정론적 체계임을 가리키고 있을까? 우리 뇌가 결정론적 체계라고 한다면 언젠가 뇌에 대한 모든 비밀이 풀리고 뇌 지도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의 행동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법칙에 따라 무의식적 과정을 거쳐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개인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났을 때에도 '나'란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 <뇌로부터의 자유>(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 ⓒ추수밭
뇌신경 과학자이자 신경윤리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는 신간 <뇌로부터의 자유>(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를 통해 "뇌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져 가는" 이 시대에 서서히 우리의 일상으로 잠입해 들어오기 시작한 뇌 결정론을 뇌 과학 안팎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 뇌가 복잡계라는 점을 내세워 단호하게 뿌리친다.

가자니가는 대뇌의 양쪽 반구가 분리된 분리 뇌 환자들을 대상으로 감각/지각 능력을 시험한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 뇌가 단일한 중앙 통제 시스템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연결된 수많은 특수 회로들이 뇌 전체에 분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복잡계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복잡계는 상호 작용을 통해 부분의 합보다 큰 창발적 속성을 만들어 내고 일단 생성된 속성은 이전의 부분적 속성으로 축소될 수 없는 수많은 체계들로 구성된다. 자동차와 수많은 자동차들이 모여 생겨나는 교통 체증을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금요일 저녁 퇴근 무렵의 교통 상황을 예측해 보겠다고 자동차를 분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핸들과 계기판, 배기관 등 자동차의 부속들로는 금요일 저녁 강변북로에 교통 체증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타이어를 발명한 사람이, 계기판을 설계한 사람이, 저녁 여섯 시의 강변북로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나 했을까? 부품들이 모인 자동차 한 대의 차원에서도 교통 현상은 분석할 수 없다. 결국 수많은 차와 운전자를 다양한 지역과 시간대, 날씨, 사회와 함께 섞어 놓고서야 교통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차원이 존재하게 되고 이 새로운 차원에서 부분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법칙들과 특성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가자니가는 뇌가 복잡계로 기능하며 새로운 차원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특성들을 만들어 내기에 특정 신경 회로나 신경 발화 패턴을 분석한다고 해서 특정한 사고나 행동이 작동하는 방식을 모두 알 수는 없으며, 따라서 사고나 행동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의식적 경험(사고)은 바로 이 복잡계가 만들어 낸 창발적 자산이다.

지금까지 뇌신경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의식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하위 체계들과 각기 자신만의 전문화된 능력을 지닌 다양한 모듈에 의해 의식은 형성된다. 결국 가자니가는 신경과 신경 전달 물질들을 다루는 신경생리학의 미시적 차원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의식적인 사고나 뇌 활동의 결과 혹은 심리를 미리 예상할 수 있는 결정론적 모델을 찾아낼 수는 없으리라고 단언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급부상하며 인간과 인간의 뇌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는 인지 과학이나 사회 심리학, 행동 경제학, 진화 경제학, 진화 심리학 등도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결코 단일 신경 세포나 신경 회로 등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가자니가는 말한다. 특히 인간의 뇌와 사회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왔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통해 뇌가 결정론적 체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일부 극단적인 뇌신경 과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책임과 자유는 사람과 사람, 뇌와 뇌가 만나 상호 작용하는 사회적 차원에서 생겨난 규칙을 통해 새롭게 얻은 특징이지 뇌의 특정 영역이나 망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책임과 자유는 뇌의 속성이라기보다 다수의 두뇌들에서,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서 발견되는 사회 계약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뇌 결정론이 설 자리는 없다. 결국 행동의 책임은 뇌가 아니라 내가 지는 것이다.

책임은 정의나 공정성, 도덕, 법률 제도 같은 사회 규범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어떻게 규정하고 부여할지는 뇌신경 과학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근래 들어 뇌신경 과학이 법정으로까지 진출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 영상 기술을 활용한 증거가 법정에 제출되는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탈리아와 미국 등지에서는 fMRI 사진으로 감형을 받은 예도 있을 만큼 법정에서의 뇌신경 과학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거짓말을 할 때 전두엽 활동량이 더 증가하더라는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fMRI를 거짓말 탐지기로 사용하는 방안이 이미 논의되고도 있으며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 이상자의 뇌가 정상인의 뇌와 구조적으로 다르더라는 연구 결과는 피고인이 형사 책임을 부담할 능력이 없음을 항변하거나 고의가 아니었음을 주장하는 증거 자료로 제출되기도 한다.

가자니가는 법정이 뇌신경 과학에 답을 구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이제 막 유아기를 벗어난 fMRI 기술 자체의 신빙성 문제와 더불어 뇌신경 과학 자체가 인간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인간 행동을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자니가는 뇌신경 과학적 발견들을 근거로 판사나 배심원 등 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잘못된 추정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뇌신경 과학의 현주소를 알리고 법률 제도와 함께 책임의 문제를 탐구하는 '법과 뇌신경 과학 프로젝트'를 2007년부터 이끌고 있다. 40여 명의 뇌신경 과학자, 철학자, 법조인 등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fMRI 등 뇌 영상 기술의 신뢰성 여부와 범죄자의 형사 책임, 특정 범죄 행동의 예측과 치료 여부뿐만 아니라 법정에 선 배심원과 판사의 의사 결정 문제 등에도 주목하여 <판사를 위한 뇌신경 과학 안내서>라는 작은 책자를 출간하기도 했다('법과 뇌신경 과학 프로젝트' 홈페이지(☞바로 가기)에 가면 무료로 PDF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여운이 남는 실험이 하나 있다. 캐슬린 보와 조나단 스쿨러라는 두 심리학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었는데, 두 사람은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게 한 뒤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다만 소프트웨어에는 결함이 있어서 문제의 답이 자동으로 떠오르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키 하나를 눌러 달라고 부탁했다.

실험 결과, 프랜시스 크릭이 결정론적 입장에서 쓴 <놀라운 가설>을 읽고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키를 누르지 않음으로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다른 긍정적인 글을 읽은 학생들은 키를 눌러서 답을 보지 않았다. 두 심리학자는 자유 의지에 대한 불신이 노력은 부질없다는 미세한 암시를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결정론에 관한 글을 읽은 사람들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에게 더 비협조적으로 구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했으며 처벌을 내려야 하는 가상의 상황에서 먼저 결정론에 관한 글을 읽게 되면 글을 읽지 않은 사람들보다 처벌을 덜 내린다는 보고도 있었다.

뇌는 정신을 만들어 내고 믿음이나 사고, 열망 등의 정신 상태는 다시 우리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실제로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는 믿음은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이를 믿을 때 사회 구성원과 사회가 더 선하게 행동할 거라는 사실이 그 믿음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가 결정론적 기계인지 아닌지,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설사 자유 의지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자유 의지가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의 뇌, 마음, 정신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으로 보다 많은 불편한 진실들이 밝혀지더라도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우리는 결정론적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뇌가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도 아니며 원자도 아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백전노장이 쓴 책답게 <뇌로부터의 자유>는 100여 년에 이르는 찬란한 뇌신경 과학의 역사에서 시작해 물리학과 철학, 진화 심리학, 인지 과학 등 다방면의 학문들을 종횡무진하며 400쪽이라는 적은(?!) 분량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량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만하면 다른 이야기로 훌쩍 넘어가는 통에 글(가자니가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분야의 대가가 자신이 이루어 낸 학문적 성과가 인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다른 분야와 접촉을 시도하고 배움을 얻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록 요즘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는 뇌 과학이나 심리학 책만큼 쉽게 읽히고 구절구절 재미나는 책은 아니지만 우리 인간의 본질을 뇌를 통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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