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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핵심은 '윤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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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핵심은 '윤리의 힘'!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

풍부한 이야기 거리와 방대한 접근법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아카넷 펴냄)는 자칫 이론적 난해성에 빠질 수 있는 학술 서적을 이렇게 쓸 수 있기도 하겠구나 하는 찬사가 나오는 책이다. "땀"과 "피"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서술 방식도 구어체 강연을 듣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안에는 학술이라는 이름 아래 이론의 뼈대를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방대하고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담겨 있다.

김상준이 던지는 질문도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유교 문명의 전통이 근대 이후의 우리의 삶을 위해 어떤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다가서는 그의 방법론도 단지 유교 경전의 재해석이나 유교 문명의 강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 전체의 맥락과 연결시켜 그 위치를 조망하고 유교의 내면에 담긴 핵을 건져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법론의 풍족함은 이 책을 읽는 이를 기쁘게 한다.

서구적 학문의 훈련을 받은 사회학자인 그가 기본적인 사회학의 틀 거리를 비롯해서, 세계 체제 분석의 다양한 입장을 섭렵하고 중국의 유교 사상사와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 사상사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리해나가는 솜씨는 이 책의 학술성을 깊게 각인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세계사(World History)'의 경이로운 발전과 다양한 담론을 소화하고 있는 토대 위에서 펼치는 논리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유교 문명권에 근대의 동력이 담겨져 있다고?

▲ <맹자의 땀, 성왕의 피>(김상준 지음, 아카넷 펴냄)ⓒ프레시안
김상준은 무엇을 고민하고 이 책을 썼는가? 서구가 중심이 된 자본주의 체제의 확장 과정을 근대사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보다 더 선도적으로 근대적 사유와 정치 윤리의 힘을 지닌 유교 문명 체계를 재점검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우리가 몰랐던 자기 발견의 의미를 지닌다. 또는 아시아의 아시아적 각성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과 접근은 아시아의 주체성 세우기나 아시아에도 유럽의 근대 못지않은 근대적 자산이 있다거나 아시아가 먼저 근대적 사유와 역사 발전의 계기를 열었다든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유교의 정치사상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의 삶에서 확인되는 "윤리의 힘"이다. 그리고 이 유교적 윤리의 힘이 오늘날의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의 위상과 역할에 결합될 경우,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김상준의 주장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비롯한 세계 체제론자들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 발전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에 반해, 그는 자넷트 아브 루고드, 군데르 프랑크, 조반니 아리기 등의 입장을 바탕으로 그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그것은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론에 충분히 포괄되지 못했던 비서구 체제의 역사성과 역동성, 지구적 연관 구조를 주시하고 여기에서 중국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적 세계 체제의 의미를 재평가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16세기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지구적 성립사는 프랑크를 비롯한 이들이 지적했듯이, 유라시아 전체와 인도양 등에 걸쳐 구축된 이슬람권과 중국의 아시아 체제가 기초가 되어 당시 주변부적 위치에 있던 서구가 이 체제에 결합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시한 김상준은 "근대"의 의미가 재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근대"가 역사적 자본주의의 출현이나 이성을 기본으로 하는 합리성의 등장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성(聖)의 체계가 속(俗)의 체계에 통섭되면서 생겨나는 변화로 이해한다.

성과 속, 그 통섭의 역전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한데, 달리 말하자면 성(聖)의 원리가 속(俗)의 논법 속에 내면화되고 재해석되어 현실 발전에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의 기존 질서를 신성시하는 논법에 대해 세속의 요구로 비판적인 해체와 재정립을 하는 것은 현실의 권력과 지배 질서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된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구성된 중세 유럽의 권력이 더는 성역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인민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된 것이 근대의 정치적 변화를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한다면, 같은 논법에 따라 왕의 권력을 하늘이 준 성역이 아니라 민심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자리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또한 근대가 된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이러한 사상적 의지는 송과 원대에 활발하게 터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형은 이미 고대 유교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은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서구의 근대 사상사도 고대 그리스 철학과 만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유교의 원형적 근대성의 힘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 눈을 돌린 김상준은 야스퍼스가 "기축의 시대"라고 불렀던 인류 문명사의 정신적 태동의 시기에 생겨난 유교의 내면을 살펴본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춘추 전국 시대 이래 지속되어 온 군주의 폭력적 권력에 대한 윤리적 통제력의 발휘에 노력해온 이들의 소산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그는 "성왕의 피"라고 부른다. 왕권 찬탈과 계승의 역사에서 수없이 벌어진 유혈 사태와 이로 인한 전쟁과 폭력은 권력에 대한 유교의 윤리적 비판의 출발점이 된다. 죽음 앞에서도 비판의 의지를 꺾지 않는 자세다.

그리고 이보다 앞선 사상적 기초는 비참한 지경에 처한 이들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공감이다. 김상준은 이를 가리켜 들판에 버려진 죽음에 마음이 으깨어져 땀이 나고 그 비극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는 "맹자의 땀"이라고 부른다. 인(仁)의 탄생이다.

예치 시스템의 등장과 정치 윤리적 통제력의 의미

이러한 마음과 자세를 기둥으로 하여, 유교는 미조구치 유조가 명확히 정리했듯이 예치(禮治) 시스템을 작동하고, 군왕의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군왕의 덕(德)이 민생을 위해 공력(公力)을 내뿜도록 만든다. 그는 군주의 권력에 대해 이러한 정치 윤리적 통제력이 바로 설 때 <예기>에 나오는 "천하위공(天下僞公)", 즉 "천하의 모든 일이 공(公)의 실현을 위해 나간다"는 뜻을 갖게 된다고 강조한다.

백성들의 삶이 허덕이고 있다면, 권력은 마땅히 "윤리적 고통"을 느껴야 하고 이것이 오늘날 시민의식과 하나가 된다면 역동적인 시민 민주주의의 근간과 국제 평화를 지향하는 체제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동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 사상사의 재발견

그가 1659년 현종 때의 장례 문제로 터져 나온 기해예송을 다루면서 노론의 조부가 되는 송시열과 그에 맞선 윤휴의 논쟁, 이후 남인들의 몰락과 득세, 이들이 다시 주변부화되어가면서 전개되는 일체의 논쟁 속에서 군주 주권을 안에서부터 통제하고 조여 대는 유교 정치의 윤리적 역량을 재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후 조선 후기 사회의 분해와 민중들의 열망에 결합해서 이루어진 동학으로 발전하면서 인민 주권적인 민중적 영성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나간다.

조선 사상사의 흐름을 이렇게 짚어내면, 우리는 동아시아 내부에 오늘의 정치와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는 사상적 저력을 재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숙제가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늘의 세계 체제 내부에서 유교 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일 못지않게, 역사적 자본주의의 모순과 갈등, 수탈 체제의 극복은 공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해도 유교 문명의 사상적 자산을 가지고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근대 아시아의 역사에서 골이 깊어진 국제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자칫 이러한 논의가 중국의 사상적 주도권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는 오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윤리적 고통의 공감대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는 그런 점에서 매우 논쟁적인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펼쳐질 수 있는 논의는 아시아라는 문명 공동체를 다시 돌아보게 할 것이며, 그 안에서 길어 올려야 할 역사와 사상의 요체가 무엇인지,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가 분명해진 시점에서 이것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이 될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공공의 정신, 천하위공의 마음으로 동아시아의 거듭남, 지구 문명권의 정의로운 재편에 뜻을 모으자"고 결론짓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도덕 정치 또는 정치 윤리의 힘을 강화하는 노력을 주목한다.

옳은 말이다. 그리고 이 노력의 밑바닥에는 김상준이 책 첫머리에 강조한 "윤리적 고통"을 느끼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앞에는 백성의 눈물이 있기에. 백성의 눈물과 땀과 피만 요구하는 권력이 아닌 새로운 정치현실을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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