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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안철수와 '담판'? 바보 같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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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안철수와 '담판'? 바보 같은 소리!"

[박동천 칼럼] 민주당 경선 결과에 대한 감상문

1. 아픈 곳부터 찔러 보자.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김두관은 경남도지사직을 버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도지사직을 버리고 경선에 참여한 것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인데, 이와 같은 모험주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다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경주를 3위로 마감했을 뿐만 아니라, 모험주의 전략 덕택으로 파괴력이 조금이라도 증가한 흔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없으니 판단 착오였음이 분명하다.

다음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어는 부드러우면서도 함축적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지만, 열세로 시작한 입장에서 판을 흔들 수 있는 도발적인 이미지 구축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가 단순히 관리자형 지도자를 찾는 의미에 더해서 권력의 속성을 바꿔야 한다는 전투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손학규와 김두관이 게임의 규칙과 심판에 대한 항의로만 일관한 점은 민주 진보 진영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낙인을 찍고 싶어 하는 박정희 이래의 보수 프레임에 딱 걸린 셈이 되었다. 권투 선수가 링 위에 올라 상대방과 펀치를 주고받을 생각보다 심판과 싸우는 데 몰두한 격이다. 지도자들이 이런 지경이니 지지자들은 물병과 계란을 던지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줄 알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흥행이 안 됐다"는 헛소리를 누구보다도 민주당 내부에서 사실인 양 떠들어댄 것도 하늘에 대고 침 뱉기였다. 흥행이 안 됐다고 말하려면, 어떤 경우에 비해 안 됐는지 비교의 준거가 있어야 한다. 자체 목표로 정한 200만 명 모집에는 못 미쳤지만, 등록 선거인수 108만 명은 새누리당에 비해 훨씬 많은 수였고, 과거의 어떤 사례에 비해서도 적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선두를 달린 문재인의 위상이 박근혜와 안철수에 버금가도록 시나브로 올라간 사실 역시 흥행이 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흥행이 안 됐다"는 저주어린 문구를 너도나도 덩달아 입에 담은 작태는 민주당 내부에 전통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 대한 반성은 후보, 캠프,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평론가, 논객 그리고 관전객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깨어있는 시민층이 두꺼워지고, 한국 정치가 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물론 손학규와 김두관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이것으로 닫혀버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상황 판단과 전략에서 저지른 과오를 뼈저리게 성찰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2. 문재인이 당선되자마자 안철수와 단일화 시나리오가 화제로 떠오르고, 그 틈에 누가 퍼뜨렸는지 "담판"이라는 옵션이 느닷없이 거론되고 있다. 한 마디로 바보 같은 소리다. 담판을 한들, 문재인이 사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담판으로 단일화한다는 얘기는 곧 문재인이 담판을 통해 안철수를 주저앉힌다는 시나리오를 전제하는 소리다.

문재인 입장에서는 물론 안철수의 사퇴를 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원한다면 안철수더러 사퇴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지, 마치 담판이라는 것이 양 쪽의 가능성을 다 열고 있는 것처럼 가식을 부리게 되면, 단일화의 효과만 축소시키고 만다.

문재인이 이런 가식을 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무책임한 자들이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재인 측에서는 구경꾼들의 무책임한 입방정 때문에 오해와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나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하루 빨리 만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이 만나서 "담판"을 해야 할 주제는 안철수가 사퇴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단일화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담판으로 정할지 경선으로 정할지를 논할 일이 아니라, 경선을 하되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 한다.

아울러, 경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차기 정부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협력할지를 동시에 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두 사람이 어떤 정책과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나 복지 국가, 반값 등록금이나 검찰 개혁 따위 이미 상투어로 굳어진 문구들의 공유로는 안 된다.

표어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세부적인 실천 계획에서 공통분모를 최대한 넓게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급적 조속한 시일 안에 공표하고 유권자들에게 최대한 널리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될 것이고, 본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다음에도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차기 정부를 위해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누가 당선되든 새누리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는 국회를 상대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배후에는 재벌, 관료제, 군부, 법조계, 언론, 학계 등으로 연결된 강고한 기득권 동맹이 도사리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과반 점유라도 막았더라면 사정이 조금은 나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동안, 대통령 한 자리 차지한 것으로 사회 개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극명하게 증명되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내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해도, 민주 진보의 앞에는 장애물 투성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효과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하게 판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그야말로 뱀처럼 여우처럼 지혜롭게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는 일차적으로 선거 공학적인 필요에서 나오는 결론일 뿐이다. 집권해서 성공을 거두려면 5년의 짧은 임기 동안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를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 중구난방, 사분오열 상태인 민주당의 고질병을 건강한 리더십으로 치유할 길도 오로지 여기에만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3. 이정희도 출마할 것으로 보이고,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론과 "사회 연대 후보 경선"론도 흘러나온다. 가히 선거의 철이 맞다. 개인적으로 평하자면, 이런 소리가 4·11 총선 직후에, 나 같은 사람이 멘붕 상태에 빠졌을 때부터 나왔더라면 적어도 눈을 한 번이라도 크게 뜨고 봐 줄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침내 12월 선거도 한 번 붙어 볼 만한 것으로 비쳐진 후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는 심산이 아닌지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누가 나오든지 비난할 일은 아니다. 우연히 미국 선거 역사를 살필 일이 있어서 봤더니, 사회주의노동자당은 1888년부터 1976년까지 끈질기게 후보를 냈다. 많게는 5만3000표, 적게는 2000표도 받았고, 9000표도 받았다. 1972년 닉슨이 4700만 표로 당선, 맥거번이 2900만 표로 낙선한 선거에서 5만 표를 받았다. 미국 사회당의 유진 뎁스는 이보다는 낫다. 그는 1900년 8만여 표(0.6퍼센트), 1904년 40만 표(2.98퍼센트), 1908년 42만 표(2.83퍼센트), 1912년 90만 표(5.99퍼센트), 1920년 91만 표(3.4퍼센트)를 얻었다.

이들의 시도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후견지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이 출마하지 않은 것보다는 출마한 것이 미국 정치에 도움이 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보다 많은 표를 얻은 예로, 랠프 네이더는 2000년에 출마해서 288만 표(2.74퍼센트)를 얻었다.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고어가 당선되었으리라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이더를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고어를 찍었을 리도 없거니와, 어차피 그 해 고어는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연방대법원의 정치에서 진 것이다.

이정희가 나온다면 출마할 이유가 있으니까 나오는 것이다. 여타 제3지대에서 후보가 나온다면 역시 출마할 이유가 있으니까 나오는 것이다. 이들이 나왔을 때 찍어줄 사람들이 이들이 안 나온다고 모두 안철수나 문재인을 찍지는 않는다. 절대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라도 대다수는 실제 선거일에는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니까 미리부터 민주 진보 개혁 진영이 "후보 난립" 때문에 진다는 따위의 패배주의 언설은 입에 담을 필요가 없다. 박근혜의 당선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피선거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선택을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인 정치의식이다.

4. 대통령 선거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사실상 러닝메이트와 같다. 두 사람이 합한 팀과 박근혜가 대결하는 국면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가 떨어져야 5000만 국민에게 복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가능성에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출마자, 주변의 참모들, 그 주변의 협력자들, 그 주변의 지지자들이 모두 승리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나아가 각자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복이 될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복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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