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운동가, 교육 노동자, 또는 교사 그 자체로 불리는 이수호, 그의 책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한길사 펴냄)를 줄여 읽으면 <다.학.생>이 된다. 우리 모두가 다 학생의 처지가 되어 교육의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이 나라 교육의 미래는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갈 땐 꼭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웬 오버?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쉬는 시간이면 으레 교실은 시끌벅적하게 마련이고, 밥을 까먹는다거나 이상한 만화책을 돌려가며 보는 등 금지된 장난을 몰래 하기가 일쑤였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내가 왔다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학생들에게 혹시 내가 봐서 안 될 짓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걸 멈추고 빨리 감출 건 감추라는 신호였다."
감시와 적발 그리고 처벌이 교육의 윤리와 법칙처럼 되어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인격과 자율권 그리고 청소년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자유를 지켜주려는 교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교육이 폭력이 되고, 교육이 출세욕을 부채질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교육이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지옥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세계에 인격적으로 다가서는 교육자는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이다. 이수호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온 이 시대의 교사다.
이수호의 발길이 가는 곳
▲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이수호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일 때도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도, 해직을 당해 길거리에 있을 때도,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수십만 명을 호령할 때도, 나는 언제나 교사였어요. 그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교사의 역할을 나는 맡겨진 자리에서 실천할 뿐이었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깨끗하고 솔직한 나의 선생이었어요."
이수호가 가는 곳은 언제나 이 시대의 슬픔이 고여 있고 고난의 아우성이 가슴을 때리는 자리였다. 그래서 정의로운 행동이 요구되는 현장이었다.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해직 교사들, 깨져나간 진보 정당, 곽노현 교육감 재판 법정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조금 비겁하게 살면 편안하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그는 조금만 더 용감해지면 이 시대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이다.
"학교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규정하고, 그것만이라도 지켜서 우리 학생들이 비굴하지 않게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지……."
학생 인권 조례 논란 앞에서 무너질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의 권리와 자유를 방어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탄식이 스며있다. 그러나 그 탄식은 후퇴가 아니라 결의를 이끌어 낸다. 그에게는 학생들의 눈물겨운 지원을 받은 감격이 있다.
1986년 신일고등학교 교사 시절 교육 민주화 선언 사건으로 그가 신일고등학교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일이다. 학생들의 술렁거림을 교사들이 먼저 이수호를 비롯해 교육 민주화 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학교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사건의 종결이 아니었다. 스승의 날, 전교 행사에 마지막 순서는 학급 대항 이어달리기였다. 학생대표 네명에 마지막은 담임이 달리는 사제동행 경기였다. 그는 3학년 담임이었다. 다소 길지만 인용의 가치가 높다.
학생들의 헹가래 그리고 침묵시위
"나는 달리기도 썩 잘하지 못하는데다, 교육 민주화 선언 이후 후유증으로 심신이 피로한 상태여서 걱정하고 있는데, 우리 반 대표가 오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들이 열심히 뛸 테니 마지막 조금만 뛰어달라고 나를 위로했다. 릴레이는 시작됐고 웬일인지 우리 반 학생들이 정말 잘 뛰었다. 마지막에 내가 뛰며 다른 반의 추격을 받았음에도 당당히 1등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신호인양, 스탠드에서 응원하던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뛰어나와 나를 에워싸더니 헹가래를 치는 게 아닌가. 나는 하늘 높이 올라가며, 아찔한 기분과 함께 참 행복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축하 이벤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스탠드로 올라가지 않고 줄을 맞춰 운동장에 앉더니, 언제 준비했는지 모두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끼고는 자연스럽게 침묵시위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자 3학년 다른 반 학생들도 뛰어내려와 말없이 줄을 맞춰 앉는 것이었다.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선생님들이 말리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다. 아마 미리 치밀한 준비를 한 것 같았다."
학생들의 요구는 교장이 이수호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교장은 그 약속을 지킨다. 교육 운동하는 교사의 반은 그 다음 어찌 되었을까?
"내가 담임했던 3학년 6반은 그 뒤 성적이 너무 향상되어 엄청난 입시 성적을 거두었다. 자주와 자율 그리고 협동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학생들의 침묵시위 사건을 보면서, 그의 1등도 학생들이 미리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가 담임한 학생들은 다른 반 아이들도 모두 이에 동의해서 이수호에게 헹가래의 기쁨을 안겨다주게 한 것에 놀라고 감동했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진상은 알지 못하나, 아이들이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힘을 체험한 것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생의 지표가 될 만하다.
페이스북의 토론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는 그런데 매우 의미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육이 일방 통행적 지시가 아니라 쌍방 소통과 생각 모으기, 생각 깊게 하기라는 점에서 그의 책은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눈 교육 이야기가 후반부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첨단 소통의 마당이 우리 사회와 교육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무대가 되고 있음을 그의 페이스북 대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들의 활발한 토론과 이수호의 대화는 모두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어야 하는지 깨우치게 한다.
비만 문제가 나오면, 결식 학생과 빈곤 문제가 다루어진다. 선행 학습을 위한 사교육 시장의 확대 논란이 나오면, 학생들의 인권 박탈과 교육권이 논쟁된다. 존재론적 고민과 철학이 없는 기능 위주의 교육이 비판되고 아르바이트 청소년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률적, 제도적 보장과 이들에 대한 노동 인권 교육이 진지하게 토론된다. 생활기록부에 학교 폭력 기록 문제가 나오자 생활기록부가 살상부가 되는 현실이 개탄되고, 지쳐있는 교사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는 마음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밥상머리 교육이 어려운 현실을 바꾸자는 제안이 나오고, 개방형 혁신 학교의 강점이 주목된다. 한마디로 제도 언론이 전혀 주목하지도 않고 거론조차 않는 이야기들이 이수호의 페이스북 공간에서 주고받아진다. 그래서 그의 책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는 "다시 우리 자신을 생각한다"의 의미가 된다.
"신의 손"이 되는 우리
이와 함께 그의 페이스북 글은 소소한 일상에서 깊은 반성과 지혜를 건져 올리는 따뜻한 글들이 풍성하다. 이수호의 인품과 인간, 사물에 대한 그의 푸근하고 겸손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다.
가령 이렇다.
"내 책상 옆 창가에 누가 가져다 준 예쁜 선인장 하나가 말라가고 있다. 물을 줘야지 하다가 또 다른 일에 묻혀 잊어버린다. 이젠 물에 담가놓아도 살아날 것 같지 않다. 돌아보니 사무실 곳곳이 시체다. 고운 꽃의 생사여탈이 내 손에 달려 있어 내가 신인데 세상을 죽이고 있다."
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신이 되는 자리가 어디 하나 둘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 세상을 죽이는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런 이수호와의 만남과 사귐은 나에게 늘 겸손하게 성찰하는 덕을 일깨워준다. 묵묵히 온몸으로 역사를 밀어가는 빛나는 용기를 배우게 한다. 자갈밭이건 가시덤불이건 또는 바위가 덮인 곳이든, 아니면 시퍼렇게 깊은 강이든 그는 필요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맨발로 헤쳐 간다. 그런 그의 육성이기에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눈물로 고이게 하고,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때로 짐짓 짓는 미소에 담긴 결의는 이 시대의 모든 비겁해지려는 이들에게 양심의 경종이 된다. 결국 내려지는 결론은, 교육은 곧 인간이다. 인간되기를 포기한 교육은 야만의 제도화일 뿐이다. 교사 이수호가 있어 우리의 교육은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린 평생을 배우며 사는 "다.학.생"이지 않는가?
그의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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