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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록 공개' 비난한 북한, 진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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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록 공개' 비난한 북한, 진짜 속내는…

[정욱식 칼럼] 박근혜, 노무현을 '이렇게' 이용하라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가 본격화됐다. 이미 수석대표의 '격' 논란으로 남북대화가 무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금이 간 상태이다. 청와대는 "양비론은 북한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정부의 태도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새집을 짓기 전에는 헌 집을 허물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의 새집을 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새집을 짓기 전에 있던 집을 허물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남북한 최고 정상이 4시간 가량 나눈 대화록 전체를 공개하고 말았다.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둘러싸고 남북한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도 아니다. 정부·여당이 국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공개했다. 신뢰는 서로 지키기로 한 비밀을 지키는 데에서 출발한다.

북한의 비난 속에 담긴 메시지는?

불신이 깊어지면 대개 두 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비난을 퍼부으면서 아예 상대방을 피하려고 하거나, 그래도 상대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이용하려고 한다. 북한은 어떨까? 27일 새벽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내놓은 긴급성명에는 저울질의 흔적이 엿보인다.

북한이 명분과 자존심을 앞세우면 박근혜 정부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맹비난하면서도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거나 '최고 존엄을 모독한 국정원과 새누리당, 보수언론을 정밀타격하겠다', '박근혜-김정일 대화록을 공개하겠다'는 식의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는 아직 남북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이다.

북한은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남북관계가 파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두 가지 모두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식했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 체제가 경제발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최대 과제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남북관계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은 대화록 공개 파문을 이용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려고 할 것이다.

조평통의 긴급성명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이번에 공개된 담화록을 통해 괴뢰보수패당이 걸고들던 문제들이 사실과 맞지 않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남으로써 결국은 남잡이가 제잡이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고 대화 상대방인 북한이 확인해준 셈이다.

실망한(?) 새누리당, 그런데

이를 두고 새누리당은 '북한이 민주당 구하기에 나섰다'며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기대한 북한의 반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게 맞다'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만약에 북한이 이런 입장을 내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새누리당은 '살았다'고 환호를 지르겠지만 이런 결과도 생각해봐야 한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상상해보자.

▲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 ⓒ연합뉴스

김정은 :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장군님(김정일)을 만나 NLL을 포기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논의해봅시다.

박근혜 : 우리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NLL은 사실상의 영토선으로 절대로 양보할 수 없어요.

김정은 : 아니 귀측이 '노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측 정권이 바뀌었다고 수뇌(정상)간의 합의를 뒤집는 겁니까? 박 대통령께서는 북남간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다면?

NLL은 언젠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NLL을 풀지 못하면 남북관계 발전은 물론이고 평화체제도 거의 불가능하다. 평화협정의 핵심적인 의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미확정 해상분계선의 확정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화체제가 없으면 북핵 문제도 풀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누리당은 스스로 그토록 강조하는 'NLL 사수'를 위해서라도 적반하장 격의 태도를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대화록을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지는 NLL을 살리면서도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안한 것'이라고 양심선언 하는 것이 NLL과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만약 새누리당이 하루속히 개과천선한다면 박근혜-김정은의 가상 NLL 대화는 아래와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조평통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은 것도 우리로서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박근혜 : 대화록이 공개된 것은 유감이지만, 김정일 위원장께서 NLL을 당분간 유지하면서도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통해 긴장완화와 번영을 함께 이루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 취지에 동감하신 것을 알고 계시죠?

김정은 : 장군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NLL은 불법적인 유령선에 불과합니다.

박근혜 : 김정일 위원장께서 분명히 노 전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는 '서해평화협력지대 해야 한다', '난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걸 유훈으로 받아들여 우리 두 사람이 서해 문제를 풀어 봅시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인해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정부, 조속히 종지부 찍어야

박근혜 정부는 이번 파문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진실을 규명하고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든 국정원을 개혁하고 범법자에게 책임을 묻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 국가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고위직에 있었던 김장수 안보실장, 김관진 국방장관, 윤병세 외교장관 등 NLL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가 '정권' 안보를 위해 진실과 책임을 외면할수록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는 깊어지고 이미 금이 간 대한민국은 두 동강이 날 수도 있다. 이는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두 개의 코리아'도 서러운데 대한민국마저 두 개로 갈라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용단을 내리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임기 시작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정권도 성공하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그 길의 출발점은 죽은 노무현에게 있다. 더 이상 부관참시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고이 잠들 수 있게 놔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갈라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뭉치게 하고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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