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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당한 예수, 교회는 마약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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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당한 예수, 교회는 마약 장사!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한종호의 <밀실에 갇힌 예수>

교회, 세상의 세균?

"교회가 세상의 빛이 아니라, 빛을 막는 두꺼운 암막이며, 소금이 아니라 세상을 썩게 만드는 세균이 되고 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슬프게도 그게 현실입니다."

오랫동안 <기독교사상> 편집장으로 활동해왔다가 최근 출판인(꽃자리)으로 변신한 한종호의 <밀실에 갇힌 예수>(꽃자리 펴냄)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이렇게 바라본다. 그러고는 다시 이렇게 덧붙인다.

"현실의 교회는 예수님을 밀실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제도 속에 질식시키고 있고, 교회의 탐욕을 위해 진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삶이 아니라, 이들의 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곡을 해도 울지 않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습니다."

이 문장의 뒤는 이런 글이 이어진다.

"다른 가락에 맞춰 춤추고 다른 곡조를 따라 웁니다."

다른 가락과 곡조에 춤추는 자들

<밀실에 갇힌 예수>는 한국 교회가 따라 춤추고 우는 바로 이 "다른 가락"과 "다른 곡조"를 드러낸다. 교인들을 기만하고 세상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는데 필요한 이 가락과 곡조의 정체를 밝혀내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것이 진짜 예수인지, 어느 것이 진짜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할지 계속해서 헷갈리고 말 터이니 말이다.

▲ <밀실에 갇힌 예수>(한종호 지음, 꽃자리 펴냄). ⓒ꽃자리
이 책에서는 이른바 이름 좀 있다 하는 목사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 이명박의 멘토로 알려진 김진홍 목사는 "이명박이라는 상품 자체가 좋았어요. 시간이 문제지. 국민들이 조급하면 안 됩니다"라고 격찬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던 김진홍 목사는 "여권이 제 구실을 못하고 혼란에 휩쓸린 제1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봅니다"라고 평가를 바꾼다. 견해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명박의 소통 부재 정치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을 때 김진홍 목사는 그를 최고의 지도자로 추켜세웠다.

한종호는 이런 그의 발언을 망각의 지대에 버려두지 않고 역사의 기록으로 만들어 낸다. "권력자의 영원한 친구 김장환 목사"라는 장에서 우리는 출세 지향적 처세관으로 일관해온 한 교계 지도자라는 인물의 삶의 궤적을 보게 된다. 노태우 선거 지원 강연을 다니면서 김장환 목사가 제1조건으로 든 것은 "미국 우방이 믿어주는 후보"였다. 한국 기독교의 친미 사대주의의 폐습이 그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십일조 논쟁도 빼놓지 않고 있다. 십일조는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한 공동체의 자산이라는 차원에서 시작되고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십일조의 정신적 본질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자비의 증진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의롭지 못한데 십일조는 계속 내라"고 하면서 정의를 위한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교회가 십일조를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러면서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고아와 과부와 떠돌이들을 위한 십일조라면 기꺼이 내는 믿음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피곤한 십일조 논쟁은 끝나게 되지 않을까?"

밀실에 가두어버린 예수

교회 세습 문제는 다만 그것이 혈통적 계승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기득권의 대물림이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교회가 고난을 이어받아 그것으로 세상을 희망 있게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누리려고 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만일 "고난을 세습"한다면 그걸 누가 문제 삼겠느냐는 것이다. 감리교단의 3형제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목사들의 교단에서의 위상이 만만치 않은데 이들 모두가 다 세습 논란에 빠져 있는 현실에 대해 한종호는 개탄하고 있다. "혁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득권의 계승"이라는 점을 주목한 그는 이런 현실이 모두 교회를 시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서 "진짜 예수는 밀실에 갇혀 죄수처럼 지내고 있는데, 이들이 파는 가짜 예수의 오래 된 약(구약)과 새로 만든 약(신약)이 교회라는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그걸 먹으면 어찌 될까? 바로 그게 아편이다. 세상의 고난을 모르는 척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정신이 몽롱해지는 아편 말이다. 그걸 먹이고 있는 교회는 결국 아편 장사 아닌가?"

이런 교회들을 모두 사탄의 편에 서 있다고 일갈한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불법 행위라고 여긴다.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어 몸부림을 치면 과격하다고 난리를 핀다. 부자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들은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을 범죄자처럼 대한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버릴 판이다."

이러한 교회를 새롭게 각성시키고 바로 일으켜 세울 길은 없는 것일까? 가령 그는 유영모와 함석헌에게 주목한다.

유영모와 함석헌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은 기독교 신앙을 우리 자신의 삶속에서 힘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 자양분을 동양 정신의 맥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영모가 하나님을 "우리 모신 아바디"라고 부른 것에 대한 해석을 싣고 있다. "아는 모든 시작의 감탄이 집중되어 있다. 바는 밝다의 축약이다. 그래서 만사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디는 딛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실천, 마음과 몸으로 깨우쳐 행하는 그런 존재의 근원이라는 뜻이 된다."

이런 스승 밑에서 배운 함석헌 역시 우리말과 함께 하는 생각의 깊이를 뚫어내면서 "씨알" 사상을 이루어냈고, 이런 시선으로 성서를 읽어내면서 인간과 역사를 사고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종호는 예수에 대한 해석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면서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아바디"의 사랑과 "씨알"의 미래를 주시하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진정한 의미의 광장을 회복하신 분이다. 그는 바닷가에서는 배의 앞머리에 앉으셔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광장의 문화를 새롭게 하신 것이다. 산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또 하나의 광장을 이룩하셨다. 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에게는 너희들이 언젠가는 이 모든 일을 지붕 위에서 선포할 것이라며, 광장에서의 울림을 지향점으로 제시해주셨다. 제사장과 율법학자, 바리새파들이 밀실에서 저지르고 있던 일들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세상에 폭로하셨다. 성전에서 저질러지고 있던 죄를 대낮에 드러내시고 뒤집어 엎으셨다. 밀실에서 훈련받은 자들의 음습하고 교활하고 위선적이며 뒷 계산을 하는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생명 운동과 예수 운동

그러면서 한종호는 이 예수가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 주류에게 멸시당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는 것을 주목한다. 이건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 교회는 바로 그 주류에 속하기 위해 성공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종호의 글은 한국 교회에게 뼈아픈 비수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는 그런 지주의 역할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교회가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구해줘야 할 판이다. 이런 때에 한종호의 <밀실에 갇힌 예수>는 그런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종교가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일깨우고 있다.

기독교가 제도로 정착되면서 예수 운동 본래의 활력과 역동성은 폐기되어 갔다.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탐욕과 결합하면서 시장의 논리를 성서의 본질과 바꾸어 버렸고, 권력의 아성 그 자체가 되어가면서 정의나 청빈 또는 고결한 영혼 등의 덕목과는 결별해 버렸다. 이런 현실 앞에 예수가 서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이 악한 사탄의 자식들아." 이렇게 일갈하시지 않으셨을까?

성자의 옷을 입고 사탄의 실속을 차리는 자들이 교권을 타고 앉아 있는 현실은 돌 하나에 돌 하나도 남지 말아야 한다. 꺾어진 풀 한 포기, 꺼져가는 촛불 하나도 되살려가는 생명 운동의 진실만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해나가지 않겠는가?

예수는 단지 어느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들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寶刀) 또한 아니다. 예수는 생명 운동의 실체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이자, 생명 운동은 "아바디"가 "씨알"에게 주신 축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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