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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국 옆에 있는 나라 아닌가요?"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

윈난성 완띵 마을과 중일 전쟁의 비사(秘史)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8년의 전투를 견뎌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중국인들의 항일 투쟁에 진력한 정신과 자세 못지않게, 후방의 물자 지원 없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후방의 물자 지원'은 영국과 미국의 대량 물자 지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요 루트를 일본군이 하나하나 장악해가고 있었던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중국의 윈난성 접경 지역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버마)였고 바로 이 미얀마와 윈난성을 잇는 중국 쪽 마을이 완띵(碗叮) 마을이었다. 이 마을의 작은 다리가 바로 이 대량 물자 보급로의 역할을 했고, 여기서부터 연결되는 위난성의 쿤밍(昆明)은 장제스 국민당 정부군의 병참기지였다. 일본군이 광쩌우를 점령하여 홍콩 루트가 막히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 북부로 진격하는 바람에 중국을 향한 국제적 지원의 통로는 바로 이 작은 마을이었다.

중일 전쟁 종결 11주년이 되던 1956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미얀마 수상이 함께 완띵 중심부를 걸으며 우의를 다졌던 역사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중국은 미얀마의 항구 도시에서 윈난성에 이르는 가스와 석유 파이프를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의 끈질긴 인연은 이렇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잔류 일본군과 국공내전의 드라마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전한다. 그리고 중국 전선에 나갔던 일본 병사들은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1954년에서야 귀국하게 된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이때 잔류했던 일본군 병사 일부는 내전의 과정에서 양측에 서로 가담하여 새로운 전쟁의 구성원이 된다. 국공내전과 일본군의 운명이 하나로 엉켜들어간 역사의 드라마였다. 이런 경험을 거쳐 돌아온 일본군 병사는 '중공'에서 돌아온 인물이라는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배제되고 망각되는 냉전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되고 만다.

오늘날 한국과 미국에 적지 않은 수로 살아가고 있는 중국 동북삼성 출신의 조선족은 어떻게 해서 조선족이 되었나?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워 괴뢰 정부 만주국을 건설한 일본 관동군은 대대적인 이주 정책을 펼친다. 이 이주 정책의 대상에는 농토를 빼앗기고 유랑의 신세가 될 처지에 놓여 있던 조선인들도 포함된다.

물론 간도 이주라고 해서 만주 지역의 농토에 미래를 기대하고 건너간 조선인들은 17세기부터였지만, 정책적 이주로 인한 대규모 이주 집단의 형성은 일본의 만주국 정책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조선족 마을은 항일 투쟁의 근거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에서 만주에 대한 기억과 역사의 복원은 부재중이다.

아편 전쟁의 주역 린쩌쒸와 메이지 유신

1840년 중국은 영국의 아편 밀매에 제동을 걸다가, 적반하장의 반격을 입게 된다. 아편 전쟁이다. 아편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졌던 중국의 관리는 저 유명한 륀쩌쉬(林則徐)다. 그런데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놀랍게도 그는 필사적으로 유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세계 지리책과 역사책을 모으고 번역했으며 이후 그의 친한 친구인 웨인위안(魏源)에게 이 작업을 넘긴다. 이를 근거로 웨이위안은 <해국도지(海國圖志)>라는 책을 썼으며 1852년에는 100권이나 되는 책으로 불어났다. 이 <해국도지>에는 각국의 정세 말고도 서양의 배나 대포 등에 대한 도해해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기이하게도, 바로 이 륀쩌쉬의 유산은 일본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끼친다.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 <해국도지>의 열렬한 독자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아편 전쟁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고 국제적 대응에 대한 노력에 실력을 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아사히신문> 취재반 지음, 백영서·김항 옮김, 창비 펴냄). ⓒ창비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이런 역사를 기록하고 알린 책이 바로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백영서·김항 옮김, 창비 펴냄)이다. 이 책은 2008년에 나왔으니 4년이 지났는데, 미처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책방에서 접하게 되어 손에 잡힌 순간부터 탐독에 몰두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문제를 지속적으로 사고하고 고민해온 창비의 출간물이라는 점에서 우선 신뢰가 갔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들이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들이라는 점이 강력하게 주목을 끌었다. 이 글들은 2007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월 1회 연재한 특집기사가 바탕이다.

기자들이 쓴 역사서

이 책의 저자들은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도리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의 문제에 더 현실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과 역사를 서로 만나게 하는 작업에 솜씨를 발휘할 줄 안다. 또 그 다루는 대상이 한국과 일본, 중국과 타이완을 포괄하고 있어 동아시아 역사 인식의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술 방식도 뛰어나다. 이들은 현장을 찾아가고, 현장의 전문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각 나라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기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교 연구를 하고 있다. 문장도 간결하면서 뚜렷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시점(視點)이 최대한 균형 잡힌 방향을 취하려고 애쓴 모습이 분명하다.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이 관심을 보인 역사는 ①아편 전쟁과 메이지 유신 ②청일 전쟁과 대만 할양 ③러일 전쟁과 조선의 식민지화 ④신해혁명과 민중 운동 ⑤만주 사변과 만주국 ⑥중일 전쟁 ⑦아시아-태평양 전쟁과 국공내전 ⑧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⑨국교 정상화 ⑩개혁, 개방과 민주화 등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로 세우고 화해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다보고자 한다.

이 나라 역사 지식의 품질 수준

사실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을 가지고 대학교 학부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들 학생들에게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교육과 사회적 인식의 수준에 문제가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이 벌어지면 흥분하고 규탄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나 무관심, 또는 무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하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지역의 각 나라에 대한 이해나 지식은 "형편없다"고 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한국과 일본의 뜻있는 이들이 노력해서 만든 <미래를 여는 역사>같은 경우는 그런 한계를 돌파하려고 한 의지의 열매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이 나라의 역사 교육은 자국사의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있고, 동아시아 전체의 세계사적 맥락과 접합되지 못하고 있으며 아주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와 해석도 국민적 교육의 상식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자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세계적 맥락의 이해 절실

자국사에 대한 자랑이나 미화가 아니라 도리어 자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줄 알고, 국제적 맥락에서 다른 역사의 움직임을 이해할 줄 알며, 서로 어떤 연관관계 속에서 동시대의 역사가 이어져 전개되었는지를 아는 일은 세계적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능력이자 자격이 되어야 한다.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아사히신문>의 이러한 노력은 우리에게 하나의 귀감이다.

우리는 세계 전체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하나를 놓고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고 사유하는 훈련이 미진한 처지다. 동아시아 근대사에 대한 일반적 이해의 질은 참담할 정도다. 1910년에서 1945년은 일본의 식민지 강점기 외에는 다른 역사는 머릿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면 이 참담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더욱 절감된다.

동아시아 근대사에 대한 교육과 사회적 의식의 변화는 이 나라의 장래와도 직결된다. 동아시아를 만든 10가지 사건과 우리를 만들어온 근대사의 10가지를 뽑아 서로 맞춰보고 비교해보고, 연관시켜 보고 논의해보는 작업도 이 김에 상상해볼 만하다.

역사는 늘 당대의 해석과 선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그런 이야기 쓰기의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미묘한 동아시아 전환의 기로에 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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