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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를 통한 돈놀이, 이젠 그만!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사미르 아민의 <Global History>

세계 체제론의 4인방

세계 체제론의 "4인방"이라고 하면, 안드레 군더 프랑크, 조반니 아리기, 이매뉴얼 월러스틴 그리고 사미르 아민을 들 수 있다. 이들 네 명은 모두 1970년대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문제의식으로 삼고 장기적 관점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 형성을 분석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다.

이와 같은 동질성과 함께, 차이도 있다. 아리기와 월러스틴은 서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확산을 이해하는 반면에 프랑크와 아민은 종속론의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특징이 있다. 아리기는 후반기에 들어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보다 깊게 가지면서 프랑크의 입장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인류 문명사의 장기적 관점이라는 차원에서는 프랑크와 아민이 유사성을 드러낸다.

세계적 수탈 체제에 대한 연구

프랑크와 아민의 경우에는 각기 지역 연구의 배경이 다르기도 한데, 프랑크는 라틴 아메리카, 아민은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중앙 아시아와 이슬람권이 관심사다. 그런 까닭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확산 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에서 아리기와 월러스틴은 헤게모니의 변화를 중심에 놓는데 반해, 프랑크와 아민은 세계적 수탈 체제의 역사를 주제로 삼는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프랑크와 아민이 자본주의 체제를 평가할 때 이것이 질적으로 다른 세계 체제의 출현이라는 점을 중시하면서도,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세계 체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해서, 이 두 사람은 기원전 3000년부터 이어지는 이집트, 수메르를 비롯해서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중근동의 이슬람, 중국 등으로 형성이 되어온 각 역사적 시기의 거대한 세계 체제의 다양한 공존이나 존재를 주시한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세계 체제론과 세계사 연구가 하나로 이어지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이전에 만들어진 세계 체제의 지구적 연결이 결국 자본주의 탄생에 토대가 되었다는 점도 아울러 명확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런 점에서 프랑크는 그의 책 <리오리엔트>(이희재 옮김, 이산 펴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무역 체제가 지중해 체제와 어떤 관련을 맺어왔는지를 분석했고, 아민은 이슬람과 중앙 아시아가 기여한 세계사적 역할을 주목한다.

세계 체제론과 세계사의 결합

바로 이러한 시각을 통해, 아민은 자본주의의 세계적 구조라는 것은 문명사의 전개 과정에서 보자면 10세기가 넘는 교역 시스템이 구축해 놓은 연결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민은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본주의의 본질과 역사적 전개 과정에 대해 일정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비서구 지역의 경험과 역사가 반영되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마르크스의 입장을 출발점으로 놓긴 하되, 보다 포괄적인 역사를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민의 관점은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분석과, 유럽 중심사의 탈피로 그 중심축이 이루어진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나는 오늘날 이른바 세계사 또는 지구사라고 불리는 세계사 전체의 관점을 적극 고수해왔으며 이와 함께 유럽 중심사관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바로 이러한 입장을 통해, 1970년대 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적 구조의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을 깊숙이 분석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조공 시스템의 문명사

아민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 분석에서 돋보이는 것은 중앙 아시아를 통해 만들어진 세계적 교역망의 장기적 역할에 대한 이해와, 자본주의 이전 단계의 세계적 지배 시스템을 봉건주의가 아닌 조공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아민은 이와 같은 조공 시스템의 가장 분명한 경우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청조에 이르는 동아시아 세계 체제라는 점을 주시하는 한편, 조공 시스템은 중앙 아시아, 고대 중근동 등이 포함된 보다 확대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공 시스템은 거대한 영토에 대한 지배력이 물리적 강제력에만 의해 통합될 수 없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이걸 통해서 상호 이익이 되는 방식의 교역이 전쟁을 통하지 않고 가능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공 시스템은 그것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역에서 내부적 조건이 되고, 다채로운 조공 시스템이 서로 맞물려 세계적 교역 체제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가령, 중국은 동아시아의 조공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이 곧바로 중앙 아시아와 이슬람권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와 이슬람권의 조공 시스템과 만나 세계적 교역의 길을 뚫어냈다는 것이다. 16세기는 이러한 자본주의 이전 단계의 세계적 무역 구조와 서구가 접선하면서 주변부적 위치에서 자본주의의 출발을 도모했다는 점을 아민은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 체제에서 조공 시스템은 자산의 축적이 상대로부터 약탈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호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음에 반해,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 방식은 상대를 수탈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민은 이를 "수탈 또는 박탈을 통한 자본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고 부른다. 조공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러나 자본주의가 박탈을 통한 자본 축적을 세계적으로 확산한 결과 오늘날 인류는 지속적인 비극과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중앙 아시아의 역할

(사미르 아민 지음, Pambazuka Press 펴냄). ⓒgoodreads.com
이러한 아민의 관찰에 근거해보자면, 과거의 세계 체제는 다양한 문명권이 서로 교류하고 교역하면서 문명사의 발전을 촉진시켰던 것에 반해 자본주의 체제는 기존의 문명권과 세계 체제에 기생해서 발전해왔으면서 대단히 파괴적인 구조를 확산시켰다고 할 수 있다. 아민은 바로 이 자본주의의 파괴적이고 수탈적인 작동 방식을 거부하는 운동과, 문화의 동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이러한 힘의 복구는 우선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축적될 때, 오늘날 주변부적 위치가 되긴 했으나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비서구 지역의 세계 체제가 움직여 왔던 방식의 힘을 복원하고 서로 다양한 문명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중앙 아시아와 이슬람이 서로 결합해서 이뤄놓은 세계적 교류망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며 이걸 통해, 교역과 종교, 문화 등이 상호적 방향으로 오간 것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민의 책은 국내 번역이 아직 없으나, 그의 <주변부에서 본 세계사(Global History : A View from the South)>(Pambazuka Press 펴냄)는 속히 번역되어 논의가 될 만한 책이다. 그의 책과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를 함께 읽어나가게 된다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주변부화되고 있는 한반도가 어떤 역할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의 수탈 구조를 돌파하면서 문명사적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볼 기회가 생길 것이다.

우리에게는 문명사의 긴 관점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약하거나 얕다. 세계 체제론의 4인방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아민을 다시 읽어볼 수 있다면 그의 명저 <세계적 차원의 자본 축적(Accumulation on a World Scale)>(Monthly Review Press 펴냄)이 담고 있는 세계관과 이후 그의 역사 연구가 우리에게 꽤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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