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한국 현대사는 다수의 대중이 부패한 권력자들,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 정치 군부 집단, 부정한 기업인, 기생적 지주 등 권력과 부를 독점해온 '특권 지배 집단'의 전횡과 착취에 맞서 싸워 온 역사였다. 그러나 1960년 4월 혁명에서부터 1979년 부마 항쟁과 1980년 광주 항쟁, 1987년 6월 민주 항쟁과 2008년 촛불 저항에 이르기까지 '절반의 성공'과 타협, 그리고 뒤이은 반동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역사이기도 했다. 항쟁의 기억이 가물거리고 정의의 샘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정의를 갈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2년 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한국의 출판계를 폭풍처럼 휩쓸던 적이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사회 현상이라는 분석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주로 교착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논쟁적으로 풀어가는 샌델의 정의론이 한국 사회의 부정의와 불평등의 거대하고 촘촘한 네트워크를 혁파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못했다. 그동안 다양한 지면을 통해 "특권 집단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사회 정의의 기준으로 조직"(☞관련 기사 : 反 신자유주의=복지? 그럼 '삼성 공화국'은?)하는 정치 세력화를 주장해 온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고원이 자신의 생각을 철학, 역사, 경제, 정치를 아우르는 종합적 체계로 정리해 <대한민국 정의론>(한울 펴냄)으로 펼쳐냈다. <대한민국 정의론>은 바로 그 '혁파의 정치'에 관한 정치경제적 비전을 그리고 있다.
▲ <대한민국 정의론>(고원 지음, 한울 펴냄). ⓒ한울 |
그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설명해 온 진보의 지배 담론인 '신자유주의론'이 갖는 경제 결정론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국가론을 복원하고자 한다. 특권 과두 지배라는 정치경제 체제가 자신의 메커니즘을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공적 기능이 온전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권 집단들의 발호와 착취를 규제하고 사회 전반의 제도와 규칙을 공동체의 존립에 맞게 확립해나갈 수 있는 것"이 국가의 공적 기능인데, 국가의 공적 기능 상실은 사회 공동체를 파편화시키며,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때문이다.
노동의 비정규화, 사회의 양극화 등 파편화 현상의 원흉으로 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도 그 자체를 독립 변수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경제주의의 해석이며, 정치적으로 조직화된 지지를 바탕으로 시장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부과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함께 보아야만 한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며, 시민 다수의 일반 의지와 보편 이익을 응집하는 '공적인 국가'가 신자유주의에 내재한 다양한 모순들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시장에 대한 적절한 조절과 규제를 부과하고 적극적인 공공정책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원의 한국 사회 체제 규정과 해법의 열쇠는 미국 보스턴 대학교 사회학자 찰스 더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더버는 역시 미국의 과두 독점 지배 체제에 주목한다. 국내에서도 번역된 더버의 책, <히든 파워(Hidden Power)>(김형주 옮김, 두리미디어 펴냄)에서는 미국의 실제 주인은 미국인이 아니라, 거대 기업과 부정한 권력의 결탁에 의해 작동되는 법인체들, 즉 경제 영역뿐 아니라, 교육, 사회 보장 제도와 세계 평화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이라고 주장하고, 이들 권력과 법인체들의 광범한 네트워크에 의한 과두 지배 체제를 '법인체 지배 체제(corpocracy)'라고 불렀다. 더버 역시 법인체 권력을 미국의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고, '법인체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브온(MoveOn)과 같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전개하는 시민 운동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더버가 '체제 변동'을 주로 시민과 진보적 정치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동에 주목한 반면, 고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 변화의 '총체적 큰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자본 축적의 방식과 사회 갈등의 조정, 국가-시민 사회의 관계와 지배세력의 연합, 사회 제 세력의 관계 등 각각의 층위와 수준들을 가치와 비전, 전략의 관점에서 하나의 국가론 또는 체제 담론으로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는 대안적 사회 발전 모델로서 강력한 시민 사회가 지탱해주는 '강한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삼자가 서로 정립하는 '사회 시장 경제'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 시장 경제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는 '민주적 시장 경제'에 사회 공동체 전체의 목적을 위한 다수의 합의를 우선하고, 민주주의적 국가의 통제가 가능한 시장 경제를 의미한다. 즉, 민주적 시장 경제의 바탕 위에 사회 국가(sozialstaat)의 요소를 폭넓게 가미한 모델이다. 그는 세계사적 경험에 대한 진지한 분석으로부터 도출한 개념을 발전 모델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이론의 일반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회 시장 경제란 외국의 어떤 발전 모델을 모방하여 수입한 것이 아니라 '한국형' 발전 모델이다. 그는 한국형 발전 모델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의 현실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통찰을 통해 한국적 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그 바탕 위에서 사회 발전 모델과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보기 드문 독창적 시도라 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 진보의 양대 의제인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각기 다른 맥락에서 발전해 온 관계로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가 이 양자를 통일적인 개념과 프레임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형 발전 모델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하고 봐야 할 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치 전략적 접근이다. 공동체의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요 정책 이슈들이 결국 정치적 과정으로 치환되고 권력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고원은 이러한 정치적 해결을 도모함에 있어 명확한 전략적 구체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특권 과두 체제라는 개념을 통해서 사회 개혁의 목표가 시민적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을 바로잡는 헌정 체제의 정상화라고 명확한 초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 재벌, 일자리, 중소기업, 금융, 조세 등 정책 각론에 대한 논의에서도 주적을 명확히 하는 한편, 특권 세력을 압도하는 전선을 만들어 내려는 일관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점철되었고, 현실성 없는 이념적 편향이나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고 대립하면서 수구적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전선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지난 시기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담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이는 고원이 '복지 국가 담론'이나 '공평 국가 담론'을 검토하면서 "추상적 주적 개념의 한계로 인해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주적이 재벌인지 노동인지 도통 알 수 없다"고 비판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그는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만드는 데서 새로운 정치 세력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현실 참여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실험하고 검증했던 학자답게 대중적 정치 전략을 제시한다. 미국이 19세기 말 석유, 금융, 자동차 등 거대 독점 자본의 지배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때문에 상처받은 평범한 시민 대중이 자각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고, 대중의 상처와 요구를 이해하고 국가를 공적 기능에 복무하도록 되돌려 놓은 정치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 역시 시민의 참여에 주목한다. 특히 2008년 촛불 집회에서부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안철수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유권자 집단의 출현에 주목한다.
방대한 영역에 걸쳐 상당히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독자의 양팔을 잡아당기는 이론의 딜레마 게임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분배와 성장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민주주의인가, 시장인가", "박정희는 자라나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인가, 조국 근대화를 이룬 영웅인가" 등의 대립적 프레임에 구속받지 않고 그것들의 역사적 위치와 소명에 따라 설명하기에 오히려 명쾌했다. 고원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바꾸는 아주 속 시원한 토론과 논쟁의 길잡이로 느껴졌다. 이 책을 매개로 올해 대선 과정에서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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