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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의 한판 승부! 좀 더 '리얼'하게 붙어보자!

[장석준의 '적록 서재'] 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절정기였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설 방안을 주제로 잡아 국제적 연구 작업을 진행한 학자라면 분명 괴짜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 학자가 미국 대학 교수라면 더 더욱 그런 말을 들을 법하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사회학자이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 메디슨 캠퍼스 교수다. 이제 한국 대학에서는 강의 제목으로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진 '계급론'이 그의 전공 분야다.

전 세계적으로 '계급론'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회학 전공자가 에릭 올린 라이트의 이름부터 떠올릴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대가다. 한국 사회 계급 구조에 대한 결정적인 연구인 <한국 사회의 계급론적 이해>(신광영·조돈문·조은 지음, 한울 펴냄)도 그의 이론 및 국제 연구 프로젝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 학계에 라이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계급론 외에도 '분석 마르크스주의'라는 유파를 통해서다.

흔히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면 욘 엘스터, 존 로머, 제럴드 코언, 애덤 셰보르스키, 로버트 브레너, 필립 반 파레이스 등을 꼽는데,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바로 라이트다. 이들은 분석 철학, 방법론적 개인주의 등 영미권 주류 학문 방법론을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로 유명하다.

사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를 반기는 이들보다는 마뜩치 않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입장에 가깝다. 가령 엘스터가 주장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도무지 사회주의나 역사 유물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틀이다. 주류 경제학의 신화화된 '경제적 개인' 관념과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시도는 한가한 지적 유희나 이론적 불장난처럼 보이곤 한다. 라이트가 이들의 일원이라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좀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러나 라이트가 좌장이 돼서 20여 년 가까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이런 서먹함은 존경의 염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 프로젝트의 제목은 '리얼 유토피아'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영국의 좌파 출판사 버소(Verso)에서 총서로 발간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에 이런 시리즈가 꾸준히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리즈는 더 없는 지적 자극이자 위안이었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지들의 생존에 대한 확인이었다.

라이트의 제자 권화현이 우리말로 번역한 최근작 <리얼 유토피아(Envisioning Real Utopia)>(들녘 펴냄)는 이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중간 결산이다.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각 연구 성과를 총정리하고 있지만, 단순한 정리에 머물지 않고 이를 그 자신의 틀에 맞춰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리얼 유토피아>의 세 가지 매력

▲ <리얼 유토피아>(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권화현 옮김, 들녘 펴냄). ⓒ들녘
<리얼 유토피아>는 분량이 500쪽이나 된다. 500쪽짜리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쉽게 시작하거나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리얼 유토피아>는 예외라고 할 만하다. 영미권 학자의 저작답게 어조가 시원시원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정책 제안들로 가득 차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이 지닌 세 가지 매력 때문에, 긴 분량이나 주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 번째 매력은 이 책이 방대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성취들을 한 눈에 일별할 수 있게 모아놓았다는 점이다.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 시의 참여 예산제, 인도 케랄라 주의 비슷한 자치 분권 실험 등을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결합 형태로 정식화한 '권력이 강화된 참여적 통치'(empowered participatory governance, '권한 부여형 참여 협치'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다), 국내에는 '기본 소득'으로 더 많이 알려진 '무조건적 기초 소득', 스페인 몬드라곤 그룹 사례로 대표되는 협동조합 경제, 루돌프 마이드네르의 '임노동자 기금' 구상을 계승한 로빈 블랙번의 '주식 과세 (연금) 기금' 제안, 캐나다 퀘벡 주의 사회적 경제 그리고 심지어는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사례까지 이 한 권에 총망라되어 있다.

어찌 보면 최근 등장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실험과 제안들의 편람 같다. 물론 중요한 구상들 중에서 빠진 것도 있다. 가령 라이트는 포괄적인 체제 대안 모델로 존 로머의 '쿠폰형 시장 사회주의'와 마이클 앨버트의 '참여 계획 경제'를 소개하며 서로 비교한다. 그런데 우리가 검토해야 할 중요한 포괄적 체제 대안 모델이 이 둘만은 아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높이 평가한 바 있는 팻 드바인의 '참여 계획 경제' 모델도 있고, 시장 사회주의 모델 중에서 베이비드 슈바이카르트의 제안도 중요하다.

하지만 애초 집필 의도가 '21세기 사회주의 백과사전'은 아니었으니 이런 누락이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라이트가 이런 여러 제안을 단순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 다양한 구상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체제 전반의 변화를 지향하는 총체적인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여러 제안들을 라이트 나름의 개념의 실로 한데 엮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 기초 소득은 사회적 경제에 참여할 시간을 늘린다. 주식 과세 임금 소득자 기금과 연대 기금은 기업과 투자를 통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과 여타 결사체들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협동조합들 사이의 협동을 더 용이하게 하는 새로운 정보 기술에 의해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이 재활성화되고, 파괴적 시장 압력으로부터 생산자 협동조합을 보호하는 새로운 협동적 시장 인프라가 발전한다.

경제에 대한 직접적 국가 개입은 국영 기업들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결사체적 참여와 결합된다. 참여형 예산이 광범위한 도시들에 걸쳐 확산되고, 정부 지출의 새로운 영역들로 확대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견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제도들이 창안되어 사회 권력 강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진시킨다." (505쪽)

여기에서 열쇳말은 '사회 권력 강화'다. 라이트가 기존의 대안 논의들을 서로 엮는 데 실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사회 권력 강화'의 이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리얼 유토피아>의 또 다른 매력이다.

라이트는 '사회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재음미한다. '사회주의'의 '사회'는 분명 '자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등치돼온 것처럼 곧 '국가'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독자적인 실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이 실체가 자본, 국가를 제압할 힘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라이트는 흔히 간과되는 이 사실을 환기시킨다.

나는 '적록서재' 지면에서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의 <영국 노동운동사>(김철수·김천우 옮김, 광민사 펴냄, 1980년)를 소개하며 비슷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추종하는 빨갱이? 좌파 살길은 '녹색'뿐! )

이 글에서 나는 생산자 길드나 소비자 길드 같은 자치 결사체들이 사회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는 G. D. H. 콜의 길드 사회주의에 주목하면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국가주의'라고 해야 할 기존 국가 사회주의 전통을 비판했다. 결국 <리얼 유토피아>에 전개된 라이트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자본, 국가에 비해 사회는 훨씬 더 다원적이다. 자본은 기업으로 뭉뚱그릴 수 있고 국가는 곧 관료 조직이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회가 권력을 쥔다'는 것은 자본이나 국가의 권력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권력이 여러 다원적 결사체들로 분산된다는 것을 함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다원주의다. 국가(사회)주의가 아닌 본래의 사회주의는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라이트는 <리얼 유토피아>에서 탈자본주의 대안이 '하이브리드'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단일한 일괴암적 모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 사회주의는 오히려 지금 자본주의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조직 형태, 조절 양식, 생활 방식들의 역동적인 혼종이어야 한다. 나는 다른 지면에서 이러한 지향을 '다원적 복합적 사회주의'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라이트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 재성찰을 바탕으로 최근 탈자본주의 대안 논의의 여러 성과들을 검토하고 그 연결 지점을 모색한다. 모든 대안은 자본, 국가를 제압할 사회 권력을 강화시킨다는 한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배치된다. 저자는 '사회 권력 강화'를 '사회주의의 나침반'이라고까지 부른다.

이렇게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하지만 그 실현 방법은 다양하다. <리얼 유토피아>는 사회와 자본, 국가 사이의 관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열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국가 권력의 민주화를 전제로 기존 국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의 방식을 일정하게 재활용할 수도 있고(달리 표현하면, 참여 사회주의), 결사체 민주주의나 사회적 자본주의, 사회적 경제 등 새로운 방식들을 실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존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연 어떻게 이러한 대안들을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인가? 라이트는 책 말미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리얼 유토피아>는 대안 모델에 대해 장광설을 잔뜩 늘어놓고 나서 현실에 대한 푸념으로 끝맺는 그런 책이 아니다. 이행 전략은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이 책의 매력이다.

라이트는 일부러 '개혁/혁명'이라는 고전적인 도식을 피한다. 그 대신 이를 '단절적 변혁', '틈새적 변혁', '공생적 변혁'으로 재정식화한다. 그리고 셰보르스키의 모형(<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최형익 옮김, 백산서당 펴냄, 1995년)을 활용해서 이들 전략을 비교, 검토한다.

라이트의 입장을 굳이 정리한다면, 기존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공생적 변혁을 추구하면서 미래 사회 권력의 주체들을 육성하는 틈새적 변혁을 병행하고 특정한 계기에는 단절적 변혁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정도가 되겠다. 나도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데, 졸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에서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 노선이라고 지칭한 것이 대체로 이런 입장과 유사하다.

하지만 라이트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여러 이행 전략들에 대한 그의 분석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닌다. 전통적인 개혁주의나 혁명주의, 아나키즘의 가능성과 한계가 더 없이 명쾌하게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이런 주제에 으레 따라붙는 베른슈타인, 레닌, 그람시의 번잡한 인용 없이 셰보르스키의 그래프만으로 논의를 힘 있게 밀고 간다.

아쉬움 : 21세기에 좀 더 '리얼'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좀 더 '리얼'한 대안이기 위해 필요한 고민 사항들 중 이 책이 제대로 짚지 못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생태 사회로의 전환 문제를 들 수 있다.

물론 라이트도 '환경' 요소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책 서두에 제시된, 자본주의에 대한 열한 가지 비판에서도 생태 문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생태 문제를 단순히 여러 고려 요인 중 하나로 다루는 정도를 넘어서 생태적 전환 과제를 포괄적 대안 속에 배치, 융합시키는 차원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생태적 전환은 이행 과정의 '가장 중요한' 계기나 고리가 될 수도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권력 강화된 참여적 통치' 모델이 각 지역 사회로 확산될 수 있다. 또 새로운 에너지 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기업이나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을 넘어선 참여 계획적 행위 양식이 사회에 뿌리내릴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라이트의 단절/틈새/공생의 이행 전략들을 대입해보면 이제까지는 생각지 못한 새로운 변혁 전망을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리얼 유토피아' 구상에는 녹색 사회주의의 색채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또 이행 전략에 대한 라이트의 논의에도 빈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공생적 전략을 다루는 대목에서 자본가계급이 너무 단순화된 상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노동계급을 다룰 때는 그렇지 않다. 노동계급 중 상대적으로 안정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 이행 과정에서 이해 간극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마치 단일한 한 집단인 것처럼 다뤄진다. 이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자본가계급 내에는 화폐적 세력과 생산 관리에 직접 참가하는 세력 사이에 중요한 이해의 균열이 존재한다.

라이트의 공생적 전략 모델에 등장하는 자본가는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전자에 해당하는 자본가 집단은 분석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공생적 전략의 작동 기반인 계급 타협에 대한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고민 없이 공생적 전략을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난 30여 년간의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본가계급 내의 생산 관리 담당자들에 대해 화폐적 세력이 압도적 우위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전후의 계급 타협 체제가 하나 둘 해체되어갔고 전통적인 개혁주의(사회민주주의) 진영이 무력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이트의 이행론은 꽤 구체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러한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개혁 전략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리얼 유토피아>가 기나긴 집단적 탐구의 '중간' 결산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신자유주의가 돌연 '좋은 시절'을 끝내고 혼돈의 시대를 열어놓아 갑자기 다들 황망히 대안을 묻는 이 시대에 이 정도의 내용이 지구 위 어디에선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희망이다. 더구나 이 책은 이러저런 정통 교조들에 귀의하지 않고도 충분히 '현실주의적인' '탈자본주의' 논의와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고한 징표이기도 하다.

최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이 국내에 소개돼 재평가 받은 바 있다(<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구상은 이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과 함께 신자유주의 '이후'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생의 화두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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