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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태평양 '찍고' 제국으로 일어선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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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태평양 '찍고' 제국으로 일어선 비밀은?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브루스 커밍스의 <미국 패권의 역사>

<한국 전쟁의 기원>을 넘어서

브루스 커밍스는 우리에게 주로, <한국 전쟁의 기원>의 저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세계 체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읽어온 역사학자라는 점과 함께, 끊임없이 미국 주류 역사학계의 인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온 학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미국 패권의 역사>(김동노·박진빈·임종명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대단히 진지하고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변화를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태도에 중대한 교정 작업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특히, 대서양을 건너 동부로 온 초기 미국 이주자의 활동과 움직임이 미국사 이해의 중심에 있어 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브루스 커밍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은 서부와 태평양 그리고 동아시아가 이어지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역사의 전개가 미국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 질러 세계적 패권의 위상을 지닐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그는 주목했다. 말하자면 이른바 대서양주의의 관점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모색이다.

대서양주의, 유럽주의의 한계

▲ <미국 패권의 역사>(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동노·박진빈·임종명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그는 서문에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가지고 있는 대서양주의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미국인 대부분은 대서양 주의 혹은 유럽 우선주의 관점에서 해외 정세나 외교 정책에 관한 글을 쓴다. 그들은 대서양 국가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며, 또 항상 그래왔다고 단순히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은 독립 혁명 이후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150년간 유럽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영국을 경멸했고 대서양에 등을 돌린 채 '서부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의 동아시아 관계에 관해 글을 쓴 전문가도 있었지만 깊은 지식을 가지고 사려 깊게 쓴 이는 거의 없다."

이런 기존의 미국사에 대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브루스 커밍스는 대서양과 미국 동부가 만난 역사를 넘어 결국 태평양으로 치달아 나간 미국의 역사를 주목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태평양을 하나의 거대한 바다로 인식했을 뿐, 그것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나가면서 막강한 제국을 탄생시키는 요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1860년대 미국이 남북 내전을 통과하면서 철도로 동과 서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독점 자본이 미국의 경제를 지휘한 이후 1892년, 구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인 카리브 해의 쿠바와 아시아의 필리핀을 점령한 사건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확고히 만들어가는 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으로서의 미국 역사

오늘날 미국은 제국의 개념을 자신의 역사에 투영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그것은 국가의 최고 단계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것이 곧 국가의 목표가 되는 상황이었다. 뉴욕 주의 별명이 "제국의 주(Empire State)"이고, 뉴욕의 가장 높았던 건물의 이름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다는 점만 상기해도 이를 알 수 있다. 커밍스는 당시 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인은 근대사와 관련된 여러 이유로 인해 제국의 개념을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19세기 미국 지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의 기원이 분명히 반제국주의라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혹은 필요에 따라 제국을 재규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퍼슨은 자유의 제국, 포코는 운명의 제국, 루스벨트는 식민지의 제국, 윌슨은 가치의 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제국'의 의미는 오늘날과 달랐다. 19세기에 제국은 커져가는 미국의 영토를 뜻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정체성을 놓고 세계 체제 전체를 사고해보면, 우리는 미국이 인도, 중국과 유럽을 잇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계열의 제국이 차지했던 지위, 또는 지중해의 동과 서를 장악하면서 제국이 된 로마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런 의미를 세계 체제 내부에 가지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동과 서, 즉 대서양과 태평양을 장악하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던 것이다.

태평양 제국이 되기까지

커밍스의 책 원제가 "바다에서 바다를 걸쳐 장악한 국가 : 태평양에서의 부상과 미국의 힘(Dominion from Sea to Sea: Pacific Ascendancy and American Power)"인 것을 주목한다면 이 책의 중요 관심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미국은 이렇게 19세기 말을 거쳐 태평양 제국으로서의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정비했고, 이러한 까닭에 제2차 세계 대전을 일본이 "대동아 전쟁"으로 부른 것을 종전 이후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고쳐 부르게 했던 것이다.

이 두 이름의 차이는 아시아로 이어지는 태평양 체제가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지를 확실히 하는 명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기반으로 해서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까지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 지역과 태평양의 패권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세계 체제의 관계망이 향후의 국제질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까지 규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흥미진진했던 것은 서부 확장의 과정에서 생겨난 시카고라든가 서부의 주요 도시의 형성사다. 동부의 주요 도시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과정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중서부 도시의 발전사는 미국 역사에서도 어떤 주변부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커밍스는 이들 중서부 도시의 생성과 발전이야 말로 미국의 기술력과 경제력의 발판이 되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 패권의 역사>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보통 미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행태를 문제 삼는 것과는 달리 도시 형성사, 서부로의 확장, 원주민과의 관계, 아시아계 이주자들의 존재, 중국 무역과 포경 산업을 비롯해서 미국 산업 발전과 구성원의 변화를 풍부하고 정밀하게 담아내서 미국의 내부에 그간 꿈틀대면서 엄청난 동력을 뿜어왔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독서

커밍스의 책을 통해 또 하나 알게 되는 것은 미국이 "군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군사적 토대가 오늘날 미국의 세계적 지배력을 만들어낸 지점이라는 분석은 여러 가지를 우리에게 떠오르게 한다. 오키나와에 이어 제주도까지 연결되는 동북아시아의 섬들이 해양 제국으로서의 미국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이다.

1000쪽에 가까운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원서 자체도 미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면 대목 대목에서 이해가 쉽지 않은 터에 김동노, 박진빈, 임종명 세 번역자의 수고는 뛰어나고 또한 그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아시아로 가는 지중해의 기능이 제약당하면서 1492년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뚫린 이래 미국은 본래부터 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길목 정도가 아니라 그 길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 미국을 역사에서 등장하게 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태평양 제국 미국과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미래, 한반도의 평화는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 체제의 내부에서 어떤 돌파 지점이 있는지, 우리의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커밍스의 책은 성찰의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옆으로 제켜놓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게 된 우리로서 그의 책은 미국의 내면과, 우리의 위치를 보다 절실하게 깨우쳐 줄 것이다. 일독을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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