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쟁에 지친 아이에게 들려주는 노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쟁에 지친 아이에게 들려주는 노래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홍순관의 <춤추는 평화>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별이 반짝이는 소리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는 들어도, 지구가 도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 모닥불을 피워놓으면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는데,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타는 소리는 들을 수 없어."

그런데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남자는 쌀 한 톨에서 인류의 무게를 느끼고, 한 방울의 눈물에서 지구의 그림자를 보며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에서 슬픔과 사랑의 전설을 기억해낸다. 이제 나이 50줄에 들어서는데 착하고 여전히 귀여운 소년이다.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자 그림도 그리는 홍순관이 자기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춤추는 평화>(탐 펴냄).

'평화 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온 세계를 다니면서 노래길을 걷고 있는 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 책은 어찌해서 평화와 노래 그리고 그림 속에서 그가 파묻혀 지낼 수 있는지 알게 해준다. 한 시대가 길러낸 뛰어난 노래꾼이자 평화의 전도사인 홍순관의 가슴 속에 어떤 꿈과 가락이 담겨져 있고 펼쳐지고 있는지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과실 하나에 담긴 뜻

▲ <춤추는 평화>(홍순관 지음, 탐 펴냄). ⓒ탐
이 책에 추천사를 올린 시인 도종환이 말했듯이 그의 내면 풍경은 "정직하게 부르는 착한 노래"가 강물이 되어 흐른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동요가 그의 노래로 우리의 영혼에 전해지는 순간, 그건 우리 자신이 곧 냇물이 되고 강으로 이어져 넓은 세상으로 가는 여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소풍을 다녀오다 길에서 발견하게 된 토끼와 거북이를 닮은 돌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홍순관은 부친의 유품이 된 그 돌에서 자연의 숨결과 동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느낀다. 그가 여전히 소년일 수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렇게 알게 된다.

아버지가 글씨를 쓰실 때 옆에서 거들어 드리는 훈련을 받으면서 그는 글씨가 되어가는 경이로움을 배운다. 그 아버지가 남긴 글귀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과실(果實) 한 개가 완숙하려면 긴 여름 햇빛에 견디고 비바람 천둥에 수없이 시달려 급기야는 가을의 찬 서리를 맞아야 그 빛과 그 맛이 제대로 되듯 글씨도 거듭되는 수련과 비나는 노력을 거친 뒤에야 원숙한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완숙의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삶이 남긴 체취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그였기에 그 오랜 평화의 노래를 위한 여정을 기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그는 "인류 전체가 낮은 곳으로 가서 평평하게 산다면 평화는 절로 이루어지겠지"라고 꿈꾸면서 우리의 삶이 너무도 무거운 것들을 지고 사느라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가벼움 그리고 무거움

"속을 비워 가뿐한 몸이 되고 마음까지 가벼우면 자연히 호흡이 좋아지잖아. 노래는 결국 호흡과 리듬인데, 가벼운 걸음걸이처럼 사뿐사뿐 노래한다면 부르는 이나 듣는 이나 거북하지 않을 거야. (…) 무거워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워서 떨어지는 낙엽은, 장황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인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줘. 그러고 보면 가벼운 것이 평화일지 몰라. 제 것 챙기느라 부와 명예와 권력의 비만이 걸린 사람들을 볼 때, 우린 슬픔을 느끼잖아."

그렇게 삶과 평화의 무게를 '가벼움'으로 생각하는 그는 쌀 한 톨에서는 인류 전체의 삶이 담긴 무거운 무게를 느낀다. 그가 앞에서 말한 가벼움은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이고, 그가 지금 말하는 무거움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 본다 /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그가 짓고 부른 '쌀 한 톨의 무게'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쌀 한 톨에 담긴 감격과 수고와 축복이다.

정신대, 역사 그리고 평화

홍순관의 눈길은 이렇게 그저 스쳐 지나면 알지 못하고 살아갈 세상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준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된 사연이나, 일본 조선 학교에 가서 체험하게 된 생각 이상의 감동 같은 것들은 모두 홍순관의 눈과 귀를 통해 그의 영혼에서 제련되어 나온 이 시대의 뜨거운 육성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도와준 건 처음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왜 우릴 도와주지 않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배웠다는 젊은이들이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정신대에 대한 최초의 증언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홍순관의 평화를 향한 노래 길은 그래서 그저 평화의 감격만을 부르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이걸 "사람 앞에 서서 역사의 상처를 노래하는" 일로 표현한다. 그러자면 그 상처가 자신의 상처로 변모해야 한다. 그러니 그는 이 노래 길을 따라 지금까지 오면서 무수한 상처를 그 안에 담아내고 보듬으면서 스스로와 우리를 치유해 온 이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고 있을까? 경쟁으로 야위어가고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으로 사고의 능력은 소멸되고 생명과 평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디론가 줄달음치고 있다. 그게 또한 어디 마음과 몸 가볍게 달리는 일인가? 온 몸에 온갖 세상의 탐욕을 짊어지고 뛰는 훈련을 매일 같이 받아가면서 그 영혼과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런 세대에게 이 착한 남자의 육성을 들려주고 싶다. 이 아이들에게 세상의 미미한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게 하고, 그걸 영혼의 가락으로 풀어내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 비장한 목소리로 역사를 말하는 대신, 조용하지만 울림이 큰 그의 노랫말로 우리의 숨겨진 지난 세월과 그 안에서 슬픔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평화의 씨 한 톨을 그 영혼의 밭에 심는다면 어떻겠는가? 그 씨알 하나의 무게는 그 영혼의 무게가 될 것이며, 그 인생의 과실로 완숙되어 갈 것이며 이 우주에 가득 차는 생명과 평화의 꿈이 되지 않겠나?

그 아이는, 그리하여 어느새 다름 아닌 "춤추는 평화"가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