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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계적 그물망,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페르낭 브로델의 강연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세 권은 각기 600쪽이 넘는 대작인데, 그걸 제대로 읽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이 책의 개요를 강연 형태로 짧게 압축한 내용이 바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에 담겨 있다. 옮긴이의 해제를 빼면, 번역본 자체로는 140쪽이 채 되지 않는 두께이니 읽는 일이 쉽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브로델 입문서에 해당할 만한데 더군다나 그것이 저자 자신의 입을 통한 것이니 더욱 신뢰가 갈 만할 것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1권의 서문을 보면, 1952년 루시앙 페브르가 <세계의 운명(Destins du Monde)>이라는 책에 싣고자 브로델에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해 쓰기를 요청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책에도 그 회상이 실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선 나오지 않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그것은 페브르가 <15세기-18세기 서양의 사상과 신념>의 짝으로 브로델의 책이 기획되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페브르는 서양 근대 문명의 정신적 측면에 집중하려 했다면, 브로델은 물질생활의 일상적 현실과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개가 하나의 짝을 이루면 도식적이긴 하지만 서구 근대 문명의 태동과 전개의 과정에서 보이는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구체적인 면모를 파고들 수 있다.

20년이 넘게 지중해의 역사에 몰두했던 브로델이 그때부터 20년 넘게 유럽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와 그 일상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내놓은 결과가 바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부작이다. 이 책으로 브로델은 서구 근대 문명의 뿌리를 명확하게 체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 대하여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우선 브로델의 역사 인식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장기적 관점(longue duree)'과 '일상에 대한 집중'이다.

'장기적 관점'은 당연히 긴 시간을 통해 바라보는 역사적 변화에 대한 논의다. 하나의 물질문명이 태어나서 어떤 일정한 꼴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오랜 시간이 요구되고, 그 시간을 통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그 문명의 작동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그 작동 역시 물질문명의 여러 요소들이 갖추어졌을 때 이걸 활용하면서 자기를 관철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밤의 손님"이라고 부른다.

"부르주아지는 수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특권 계급에 붙어 기생하게 됩니다. 그들 가까이에 서식하면서 반항하기도 하고, 그들의 실수와 사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이용함으로써 이 특권 계급의 자산을-종종 고리대금을 이용하여-빼앗아 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스스로 특권 계급이 됩니다. 부르주아지의 부상은 아주 느리고 끈질기게 진행됩니다. 그렇게 그들의 야망은 후손 대대로 이어지며 차곡차곡 진행됩니다. 긴 역사의 관점으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입니다. 모든 것이다 갖추어졌을 때 자본주의가 당도한 것이지요."

일상의 세계를 해부하다

'일상에 대한 집중'은 아날학파의 특징이다. 일상을 접고 구조를 따지게 되면 그러한 현실 인식은 관념화되거나 개념으로만 존재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브로델의 일상에 대한 묘사와 자료는 풍부하다. 그는 물질문명이 우리의 일상 깊이 파고들어 존재한다면서, "인류가 이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자신의 삶 아주 깊숙한 곳에 결합해온 것이다. 마치 우리 몸속의 내장처럼 깊숙한 곳에 흡수되어 있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 내지 필수적인 된 이 일상에 대한 정보, 이해, 분석이 아니고서는 현실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포착하지 못하게 된다고 못 박는다.

"1450년부터 유럽의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한 세기 전에 흑사병이 창궐해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인구를 다시 충원해야 했고, 또 인구가 늘어날 만한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구는 다음 번 하락 추세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늘어납니다.

즉, 18세기까지는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흑사병이 유럽을 떠나지 않았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발진티푸스는 러시아 깊숙이 진격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가로막았습니다. 장티푸스와 천연두도 끊이지 않는 질병이었고, 촌락 지역에 나타났던 결핵은 19세기 들어 수많은 연인을 사별하게 하는 애달픈 질병으로 도시를 휩씁니다.

이 모든 악조건을 열악한 위생과 불결한 식수가 더욱 부추겼습니다. 16세기 이래 사체를 부검한 수백 개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끔찍합니다. 신체 기형이나 소모성 질환, 피부병, 폐와 장기에 놀랄 정도로 퍼진 기생충의 흔적을 묘사하는 기록을 현대의 의사가 본다면 질겁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현실을 묘사하면서 커피, 설탕, 차 등의 교환 시장이 어떻게 서구의 물질문명을 바꾸어내고 자본주의의 기초를 만들어내는지 그는 섬세하게 밝혀나간다.

시장 경제의 세계적 패권 이동 경로 분석

이와 함께 브로델은 이러한 시장 경제의 세계적 확산이 어떤 중심부의 이동과 연결되어 가는지도 주목한다.

"1500년경에는 베네치아에서 안트베르펜으로 급격하고 대대적인 중심 이동이 일어납니다. 그다음 1550~1560년경에 다시 지중해로 중심이 이동하는데, 이때는 제노바가 중심의 혜택을 누립니다. 그리고 1590~1610년 경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중심이 이동하여, 이곳에 근 두 세기 동안 유럽의 경제적 중심이 탄탄히 자리 잡습니다. 그러다가 1780~1815년에 런던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1929년에는 이 중심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뉴욕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러한 패권 체제의 변화와 그 중심의 이동, 주변부의 형성이 브로델의 연구에서 중심이 되는 내용으로서 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 체제>에 잘 드러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월러스틴이 말한 대로 "자본주의는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 경제 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며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을 짚어낸다.

브로델과 월러스틴

이렇게 보자면, 브로델은 일상의 현실에서 물질문명의 세세한 모습을 주목했으며, 이것이 어떤 장기적 시기를 거쳐 하나의 세계적 구조를 지닌 경제 체제로 변모하는가를 추적해나갔으며 그러는 와중에 이를 변화시키는 동력의 중심은 어떤 경로를 통해 달라져 가는지를 관찰했다. 그리고 이렇게 확대, 팽창되어간 시장 경제가 자본주의라는 구조로 정착되면서 세계가 어떤 불평등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지도 아울러 증명해 나갔다.

브로델은, 말년에 이슬람권과 동아시아의 경제권에 기생해 갔던 서구 근대 체제의 현실과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경제 체제를 결합시켜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설명한 안드레 군더 프랑크와 유사한 입장을 보인다는 점에서 월러스틴과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구 근대체제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월러스틴과 같은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해설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의 장점은 브로델과 월러스틴이 구축해 놓은 복잡하고 거대한 세계 체제의 역사적 풍경으로 들어설 수 있는 현관을 열어준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사실만을 가지고 그 상호 관계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쉽게 일반화하려는 우리 인문·사회과학의 경박한 습성을 교정할 수 있는 대학자의 경륜과 논점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이 여기저기서 토론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원천 또는 그 장구한 원류를 거꾸로 되짚어가는 이 지난한 노력은 우리의 진보적 담론에 깊이를 더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브로델이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15세기에서 18세기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형성사의 그 큰 그림은 오늘의 우리 상황을 보다 거시적이고 일상적으로 해부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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