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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사서 선생님'이 사라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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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 학기, '사서 선생님'이 사라지는 이유는?

[親Book] 고정욱의 <사랑의 도서관>

"고3 때 이사를 했는데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서가를 돌면서 이거 볼까, 저거 볼까 책을 집을라치면 손가락이 저릿저릿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 위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 사서가 되고 싶다.' 꿈이었습니다."

내 자기소개서 첫 줄은 도서관을 처음 만난 날을 가리킨다. 당시 나는 툭 하면 학교를 결석하고 집에서 빈둥거렸다. 아니면 엄마를 따라가 청소 일을 도와주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한숨을 푹 쉬며 햄버거를 사주었다. 나는 하릴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도서관을 발견했다. 언덕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숨죽이며 서가를 돌았다. 마음속에 환희가 솟아났다. 한참을 서성거린 끝에 책 한 권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노을이 비쳐들었다. 그날은 지금도 눈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장면이 되었다.

몇 달 후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실의에 빠졌다. 나란 사람은 전철 매점에 틀어박혀 혼자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다시 도서관에 들락거렸는데 어느 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몹시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 앉아 있을까. 그들은 사서였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업도 있구나. 나는 사서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문헌정보학을 전공해야 했다. 1년 반 독학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토록 일해보고 싶던 곳, 마음 허한 청소년 시절을 보상코자 학교 도서관에 취업했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도서관 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나에게 실린 책들을 제자리에 꽂는 선생님의 손길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김영미 선생님은 책을 무척 사랑하고 도서관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사랑의 도서관>(고정욱 지음, 김명길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한림출판사
<사랑의 도서관>(고정욱 지음, 김명길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은 학교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책이다. 아픈 할머니와 살며 책을 읽지 못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소년이 학교 도서관에 새로 온 사서 선생님을 만나 변화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특히 이 책은 도서관이 주인공인 만큼 한 해 운영 계획이 잘 나타나 있는데 사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학교 안에서 도서관은 어떤 의미로 피어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고정욱 작가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고 지낸다. 그는 <안내견 탄실이>(김동성 그림, 대교출판 펴냄)나 <아주 특별한 우리 형>(송진헌 그림, 대교출판 펴냄), <가방 들어주는 아이>(백남원 그림, 사계절 펴냄) 등 우리 사회의 약자나 장애인에 대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학교나 도서관에 강연도 자주 다니는데 일 년에 100번 가까이라고 한다.

하루는 강연 직후 사서가 다가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도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창작 과정에서도 사서의 조언을 바탕으로 했을 것 같은 이 책은 계약직이라는 신분과 책을 사거나 행사를 하는데 당하는 제지 등 학교 도서관 사서가 겪는 어려움을 현실과 유사하게 포착했다. 그럼에도 어두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고 책과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

"저 아이들이 다 도서관에 와서 함께 책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많이 책을 읽고, 도서관에 자주 오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움이 많았다. 아이들을 잘 대할 수 있을까, 거친 학생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겁이 났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거듭 물었다. 취업도 쉽진 않았다.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다른 일을 부과하는 학교도 많았다. 겨우 둥지를 틀었다. 사람들이 도서관과 친해지게 하려고 궁리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거는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래도 해볼 만한 일은 다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노력해도 반응이 없으리라.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니, 김 선생님. 애들이 학교에서 잠을 자다니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연구부장 선생님이 도서관으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안 되지요?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데요."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무슨 사고요?"
"벌레에 물리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요즘 학부모들이 얼마나 극성인데……."
"그런 거야 모기향을 피우거나 방충망을 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안전사고라도 나면 김 선생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여름이 다가올 즈음, 나도 김영미 선생님처럼 밤샘 책 읽기를 준비했다. 보통 여름방학 독서 프로그램으로 많이 하는 행사다. 그런데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당일 학부모한테 전화가 왔다. 그분은 남녀공학에서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엔 차분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당찬 김영미 선생님처럼 야무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황당해서 씩씩거리다 눈물이 났다.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어설픈 게임을 해도 무척 좋아했다. 질서도 잘 지켜주었다. 내가 아는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이 나게 놀았다.

작가와의 만남도 학교 도서관마다 빼놓지 않는 행사다. 나는 안도현 시인을 초청하게 되었다. 교사 시낭송 경연에 나가 상을 받은 덕이었다. 학교는 정말 안도현 시인이 오느냐고 웅성댔다. 조금 뿌듯했다. 그러나 부담도 컸다. 강사료 책정에 관해서 협의가 안 이루어질 땐 곤혹스러웠다. 나는 어김없이 말이 둔한가 보다. 인천 터미널에서 학교 오는 길도 설명을 못 해서 하얗게 질린 채 교무실로 뛰어갔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 시인은 "이찬미 선생님, 어떻게 나보다 몰라. 내가 인천 지리 알려줄까요?"라며 웃었다. 그제야 맘이 놓였다. 한두 시간뿐인 약속을 지키러 먼 길을 와주신 게 감사할 뿐이었다.

아마 사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꼽으라면 '하는 게 뭐냐'는 소리일 것이다. 아직도 사서는 편해 보이는 직업이다. 사실 누구라도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비참하다. 다른 학교 도서관 선생님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나를 극도로 예민하게 했다. 하루는 도서관 이용 수업을 하던 선생님과 싸우고 말았다.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말을 듣고 말았을 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쪽방에 들어가 펑펑 울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단 말인가. 나는 아무 쓸모도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나. 사서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다들 직장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애써 위무했지만, 그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김영미 선생님은 도서관 사서로서 정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름이 같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친구를 사귀고 책과 친해지면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미 선생님과 달리 나는 보람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도서부 아이들이 말 안 듣는다고 괴로워했다. 앞날만 생각하면 불안했다. 세상을 원망하고 신세를 한탄했다. 7년간 꿈을 품고 시작한 직업도 실패구나. 나는 완전히 낙담해버렸다. 그 무렵, 같은 동네에 사는 박채란 작가를 만나 이야길 나누었다. 그분은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분명히 보람찬 순간도 있었을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며 언제 행복했는지 가만히 떠올렸다. 그러자 방과 후 서가를 돌면서 책을 만지는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무척 많다는 걸 알았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랬어. 하지만 그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이겨 내는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가 이혼해도 얼마든지 꿋꿋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단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어.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지."

나는 왜 사서가 되고 싶었나. 단지 책만 좋아했기 때문인가. 학교 도서관 주위를 기웃거렸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나 같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늘 따라다녔다. 청소년 시절을 잘 살지 못했다는 회한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6년간 멍하니 있거나 책상에 엎드렸던 하루, 무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다 포기해버렸던 날들, 앞날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아득하던 그때, 나는 책을 읽었다. 책에 나오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며 왠지 모를 이해와 위안을 얻었다.

여전히 나는 말이 적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마음이 너그럽지도 못하다. 비록 아이들과 잘 어울리진 못해도 반갑게 맞아주는 친절한 사서가 되고 싶었다. 지속해서 책 읽는 모임도 만들고 싶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글도 쓰고……. 나에게 김영미 선생님과 아름이 같은 애틋한 관계는 없었다. 뭘 어떻게 해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저 지켜보는 따뜻한 눈빛,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동안 내 모습을 생각하건대 이 모든 감상은 자기기만일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압니다. 독서 캠프 같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정말 고맙고 소중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얼마 전, 인천 학교 도서관 선생님들과 '참교육실천대회'에 갔다. 전국에서 많은 선생님이 모여들었다.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이며 노력한 내용을 발표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일관했던 나는 부끄러웠다. 학교 도서관이라는 불모지를 개간하고 십 년 넘게 한결같은 걸음을 내딛는 선배들이 있었다. 경험과 나이가 많아도 그만한 열정을 지속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래로 보이는 어느 계약직 사서 선생님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로에 대한 갈등은 매듭짓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이 보여준 섬김과 헌신은 내 삶의 태도로 각인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제 곧 겨울 방학입니다. 새 학기가 되면 김영미 선생님은 이 학교를 떠나야 될지도 모릅니다. 일 년 동안만 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도 곧 학교를 떠난다. 다음 사람을 위해 도서관을 정리하고 있다. 수명 다한 전구를 갈고, 흐릿한 프린터 토너를 바꿔 넣었다. 정기 간행물도 미리 재 구독 신청했다. 한 잡지사에서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학교 사서 선생님은 매번 바뀌어요?" 학교 도서관 인력의 90퍼센트 이상은 계약직 사서다. 지난 2년간 정규 사서 교사 채용은 전국 1명이다. 임금과 대우도 천차만별이다. 앞으로 학교 도서관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 도서관을 경험한 다음 세대들이 반드시 기억해주리라.

책은 김영미 선생님이 방학 동안 공부를 해서 정식 사서 교사가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그만두었던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한다. 드문드문 나오는 정규직 공고에는 미끄러지기 일쑤다. 속상해 또 눈물이 난다. 나도 기약 없는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을 정리하니 인생에 대해 밉고 서운한 감정이 조금 풀린다. 꼭 사서가 되어 돌아오고 싶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신이 나게 일하는 행복한 사서가 되고 싶다.

"선생님은 또 밤늦게까지 남아서 새로운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 선생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몇 시간이고 계속 새로운 계획을 짜느라 딴 데는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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