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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없었다면 중국도 없었다!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신정근의 <철학사의 전환>

사상사 그리고 역사의 맥락

고대 그리스가 도시 국가를 형성하면서 제기했던 정치적 삶의 문제는, 도시 국가의 규모를 넘어선 제국의 판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워진다. 로마 제국은 자신과는 다른 정치와 문화, 그리고 인종적 차이를 포괄하면서 내부적 안정과 통합의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가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반격과 이탈이 벌어질지 앝 수가 없다. 법과 제도로 질서의 준칙을 유지하지 못하면 제국은 붕괴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변경 지역에서 유입되기 시작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로마라는 제국의 변방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주체가 되지 못하면 거대한 변방의 통치는 언제나 위기에 직면하고 제국은 조만간 지쳐버리게 되어 있다. 로마의 이른바 '관용'이라는 덕목도 로마인들의 유별난 너그러움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작은 도시 국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고 제국으로 팽창해나가는 과정에서 습득된 정치 윤리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법, 제도, 행정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과 문화적 포용성이 하나의 유기체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서 움직이지 못하면 제국은 창업(創業)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수성(守成)은 불가능해지기 마련이다. 로마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근대 서양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마키아벨리에게 <로마사 논고>라는 방식으로 성찰의 자료가 되고 통합적 국가 건설의 사상적, 정치 공학적 논리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사정은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중국이라고 부르는 중원의 질서는 주변의 비한인(非漢人) 종족이나 국가 또는 공동체와의 끊임없는 쟁투 또는 융합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보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질서와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 절박성의 압박 아래 철학 또는 사상의 변화를 전개, 축적해왔다. 그 어떤 사상도 역사적 현실과 마주해서 제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철학이나 사상의 내용과 구조의 파악, 또는 이해와 분석에 치중해버릴 때 일어난다. 어느 특정한 사상의 발생 근거가 되는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지금의 개념으로 그걸 이해해버린다거나, 아니면 오늘날의 현실적 사안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과거의 어떤 생각들이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정확한 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그 내부의 이질적 요소의 동거와 합류

▲ <철학사의 전환>(신정근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신정근의 <철학사의 전환>(글항아리 펴냄)은 그러한 의미에서 중국의 사상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한국 학자의 독자적 성취라는 점도 주목되거니와, 중국의 사상과 동아시아 전체의 요구를 결합시켜 이를 우리에게 미래적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업의 가치를 갖는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특정 사상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동시에 중국의 사상사를 단지 중국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체계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는 중국의 사상이란 중원의 질서로서는 타자로 인식된 이질적 요소와의 치열한 쟁투의 과정을 통한 보다 거대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산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 사상사라고 하면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는 풍유란의 <중국 철학사>와는 다른 시선을 제공해준다. 신정근은 중국의 철학, 사상은 한족에 대해 타자적 존재인 세력과의 갈등, 대립, 공존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결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중국인들의 자문화에 대한 독자적 고유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들이 이(裏)라고 부른 세력을 즉각 변방화시키는 것과는 다른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근은 중국의 역사적 틀을 이렇게 본다.

"중국인은 창문 없는 방에 산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늘 뒤섞여 있던 곳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문화 정체성을 시대마다 달리 구축하는 작업을 되풀이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사를 들여다보면 중국 고대의 모형인 하·은·주 시대를 지나 춘추 전국의 용광로에서 진(秦)·한(漢) 시대가 열리고, 이후 거란, 여진, 몽골, 만주로 이어지는 유목 민족과의 대립, 또는 피정복 상태가 수-당-송-원-명-청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관찰은 옳다.

그래서 그는 한족의 자기 정체성이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되어왔다고 정리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좁게는 수당 이래, 넓게는 은주 이래로 중국인들은 삶과 역사의 무대를 황하 유역에서 장강 유역으로, 고원 지대에서 평야 지대로, 그리고 사막과 초원까지 넓혀가면서 한족과 비한족의 혼혈을 되풀이하면서 (…) 한족은 고토(故土)와 원하지 않는 결별을 강요당했다. 고향을 상실한 이후에 이민족의 땅으로 간 한족은 어떻게 해야만 한족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의 갈망

이는 마치 고대 유태인들이 바빌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 여호와 유일 신앙과 성서를 탄생시킨 역사적 맥락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신정근은 "위진과 남북 시대 그리고 수·당과 송·원·명·청의 시대에 걸쳐서 근원적인 사태 또는 지배적인 정초를 이민족의 정복과 한족의 디아스포라로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러한 상황은 근대 이후 서구의 충격과 지배를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까지 포함해서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중국 사상의 복원을 통해 동아시아의 사유 방식을 규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의 경험과 성취를 쏙 빼버리고 전통과 현대를 접속시키면서 전통의 부활을 외친다면 그것은 현대 철학이 아니라 굳은 지층을 탐구하는 고고학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동아시아의 현대 철학을 세우는 데는 동서고금 철학의 융합은 운명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중국 사상사의 맥을 캐 들어가는 신정근의 지적 규모는 소장학자로서 보기 드믄 방대함과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또한 부분에 빠지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을 어떻게든 계속해서 세우려는 노력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정근이 한나라 동중서를 해설할 때, 동중서가 단지 유교를 국교화하려 했던 인물이 아니라 "인종, 신화, 전설, 종교, 문화. 집단 기억 등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을 동일한 한족의 신민으로 만들어야 했고 (…) 개별 국가 간의 힘의 균형이나 동맹 체제의 구축으로 환원될 수없는 제국의 우주론적 질서를 탐구했다"고 정리한다. 동중서가 살았던 시대가 요구했던 과제의 해결이 그의 사상에서 어떻게 본질적인 구조를 획득했는지를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바란다면…

이렇듯 그는 중국의 사상사 전개 과정에서 한족이 자신의 문명사적 정체성을 어떻게 획득하려 노력했으며 그것이 각 시대별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투영되어 있는지 밝히려 했다. 그와 같은 접근은 중국 사상에 대한 이해가 박물화되지 않고 현실과 생생하게 쟁론을 벌이는 가운데 태어난 실체감 있는 사상임을 증명하는데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상사의 근원이 놓인 맥락을 파악하면 자연히 오늘날 동아시아 전체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지난 시기에 형성된 사상의 내면과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각성이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 격변과 역사적 충격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변형되어 재등장하는 무수한 중국의 사상들이 근대 서구 자본주의가 이제는 깊숙이 뿌리내린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모색해보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사상사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삶이 얼마나 깊고 넓게 그 영향권 내에 있어왔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이미 서구 문명의 논리와 개념, 단어로 사고하고 발언하는 상황에서도 이는 여전히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사상은 단지 중국인의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건 그리스·로마의 문명과 사상, 제도. 역사가 유럽의 공동 자산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좀 더 바란다면, 중국의 역사를 한족과 비한족의 쟁투, 그 대립과 갈등의 과정을 통해 이해했다면 중국이 자신을 화(華)라고 하고 타자를 이(夷)라고 했던 이들 이(夷)의 문명사적 역할과 그 사상이 중국의 역사에서 어떻게 구축되어왔는지를 보다 섬세하게 밝히는 일이다. 신정근은 이들 이(夷)와 한족 간의 대치가 중국 사상사를 전개하는데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보았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유의 내용을 구성하는데 어떤 역할과 기여를 했는지도 아울러 파고들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정리되면, 중국 중심의 중화 체제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역사적 공간과 무대로 변화하는 사상사적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위의 선비족이나 요의 거란, 금의 여진, 원의 몽골, 청의 만주가 실재했던 역사이고, 김한규의 <천하국가>가 강조하듯이 고대 중국과 고구려가 요동 공동체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아시사 사상사의 해명에 이러한 관점이 반영되는 사상사의 등장을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중국이 어찌 저 혼자 지금의 성취를 이뤘겠나? 북방 유목 기마 민족으로부터 배운 바도 있고,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으로부터의 문화, 이슬람의 문명까지도 중국을 만들어온 요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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