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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에 맞서는 중국,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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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국주의에 맞서는 중국, 가능할까?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충격>

<역사가에게 길을 묻다>와 <중국의 충격>

<프레시안> 대표 박인규가 김효순의 <역사가에게 묻다>(서해문집 펴냄)를 권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동아시아 역사의 근본 구조에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일본의 역사가에 대한 구술 연구라는 점에서 흥미가 일었다. 김기협이 <프레시안>에 서평을 쓴 적이 있었지만, 미처 읽지 못했던 그 책의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해준 박인규의 말에 얼른 책을 구했다.

김효순의 책에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 솔직해지려는 이들, 그 역사의 책임을 묻는 이들이 등장한다. 마침 나는 일본의 중국학 역사학자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충격>(서광덕·양태은·차태근·김수연·김소영 옮김, 소명출판 펴냄)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다케우치 요시미 이래 중국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지적 수준을 대표하는 미조구치 유조는 3년 전 타계했는데, 그는 중국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일본의 역사의식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에게 묻다>와 <중국의 충격>, 이 두 책에서 공히 느껴지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의 근대적 전개 과정에서 바로 잡아야 할 역사의 줄기에 대한 일본 지식인의 치열한 지적 투쟁이다. 하나는 '조선'에 대한 역사의식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대한 역사의식을 논하고 있는데 이걸 하나로 묶어내면 역시 한-중-일 세 나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는 중국 자체에 대한 이해로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문제와 언제나 연결된다. 역사는 그 연구 대상만이 아니라 연구 주체의 실체도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러한 상호 이해의 내용은 서로 깊숙이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각도에서 미조구치 유조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과 일본 그 사이에 뿌려진 공동의 씨앗


▲ <중국의 충격>(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 외 옮김, 소명출판 펴냄). ⓒ소명출판
"특히 일-중 관계로 말하자면, 일찍이 '서양의 충격'으로 일본의 대두가 두드러지고, 중화 문명권을 무대 뒤로 퇴장시켰다고 간주되던 역사가 '중국의 충격'-권투 글러브를 끼고 가격하듯이 둔해서 지각하기도 도식화하기도 어렵지만 느리면서도 강렬한 충격-에 의해 반전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충격'은 우리를 우열의 역사관으로부터 벗어나 다운적인 역사관으로 인도하고, 차후 관계가 더 깊어져서 그 때문에 오히려 더 격화될지도 모를 양국 간의 모순과 충돌의 한 가운데에 '공동'의 씨앗을 심도록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러면서 미조구치 유조는 다음과 같은 다케우치 요시미의 말을 인용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찍이 '자신 속에 문제를 지니지 않는 자는 중국에 가더라도 아무런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어떠한 '민주' 투쟁이 있는가를 찾아내는 자는 스스로 '민주'의 과제를 짊어진 사람이다. 즉, '민주'는 '거기'의 문제가 아닌, 본래 늘 자신이 속한 장소인 '여기'의 과제이다."

그래서 그는 근대의 과정에 일본이 중국을 추월했으며 이후 중국은 일본에 비해 열등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은, 모든 나라가 각기의 근대가 있고 그 다양한 근대의 유형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와 동시에, 중국이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외부의 충격으로 근대의 시동을 걸었다고 보는 것은 명-청 교체기 이후 중국 내부에서 진행되어온 여러 가지 역사적 변화의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에 다름이 없다고 짚어낸다.

중국 내부에 진행되어온 역사의 변화

"왕조 체제의 붕괴는 한 차례의 서양 바람에 의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썩은 나무가 마침내 쓰러졌다는 식의 사전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16~17세기 이래의 중국 역사에서 이른바 중국 역사 내부의 동력에 의해 실현된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이다. (…) 그때까지의 혁명이 왕조의 교체만을 초래했던 것이었던 데 반해, (태평천국 운동과 신해 혁명에 이르는 시기의 격변은) 왕조 체제의 붕괴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역사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와 결합할 수 있었던 심층의 조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통치 이념만이 아니라, 청대에 민간에 퍼져 있었던 종족제와 종교 결사 등의 상호 부조, 상호 보험의 네트워크와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배양되었던 민간의 일상적인 생활 윤리와 생활 가치관, 또 그 위에 성립된 '인(仁)'과 '균(均)'을 이상으로 하는 유가 관료-사대부의 경세 이념의 전통, 거기에서 생겨난 대동 사상, 무정부적인 경향의 전통적인 '천하' 생민의 통렴 등이 모두 사회주의적인 사상과 쉽게 융합할 수 있었고 그것들 역시 두터운 기반이 되었다."

그의 글을 이렇게 길게 인용하는 까닭은 미조구치 유조가 바라보는 역사 서술이 장기간의 변화가 축적된 과정을 놓치지 않고 그와 함께 외부의 충격이 서로 어떻게 결합해서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단절과 시작을 만들어내는가를 매우 잘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중국 혁명의 특질을 "300년간의 지각 변동의 흐름과 아편 전쟁 이후 중국에 침입했던 근대와의 교착"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시선은 중국 내부의 오랜 역사적 역량에 대해 보다 깊게 보도록 하고 있으며, 그 어떤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편견이나 우열의 문제로 사고하도록 하지 않게 해준다. 그런 까닭에 그는 "심층의 문맥과 동력은 완만하여 작용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미치는 범위는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중국의 근대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아편 전쟁을 분기점으로 하는 시좌는 기본적으로 단기적이고 표층적인 시좌이고 그것은 20세기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에 국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못 박는다.

미조구치 유조의 이러한 견해는 그에게 <중국의 공과 사>, <중국 사상 명강의> 그리고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같은 책을 쓰게 했다. 이 모든 작업의 특징은 중국사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의 오늘을 설명하면서 1840년 이후 청조의 멸망과 공화제, 내전 그리고 이후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 덩샤오핑의 혁신 정책으로 선을 이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그는 이 역사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보다 심층적인 지층을 발견하고 이걸 뿌리로 삼아가는 중국의 현실을 분석하고 성찰하게 한다.

미조구치 유조, 다케우치 요시미 그리고 펑유란

그런 점에서 미조구치 유조와 함께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와 <현대 중국 철학사>를 함께 읽어나간다면 우리는 중국의 역사적 두뇌 내면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펑유란의 자서전이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 정신의 이해는 보다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주 오래 전 다케우치 요시미는 쑨원의 삼민주의를 다시 읽으며 이런 대목을 인용해 놓았다.

"중국은 세계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바야흐로 세계 열강은 다른 나라를 멸하는 길을 걷고 있다. 만일 중국이 힘을 키웠을 때 역시 다른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열강의 제국주의를 배워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들의 실패한 자취를 뒤쫓을 뿐이다. 고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약자를 돕는다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로써 비로소 우리 민족은 천직을 얻는다. 약소민족은 돕고 세계열강에는 저항한다. (…) 우리는 오늘, 아직 발전을 이루기 전에 약자를 돕겠다는 뜻을 세워두고, 장래에 힘을 키우면 지금 자신이 받는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떠올려, 그때 약소민족이 같은 고통 속에 놓였음을 보게 된다면 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이리하여 비로소 치국평천하다."

그리고 이렇게 짧은 소회를 밝힌다.

"남의 평판에 구애받지 않고 정의를 주장하여 안으로부터 자신감과 기력을 길러내는 자세인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흔들림 없는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자연히 생겨났다."

이 글을 다케우치 요시미가 발표한 것이 1952년이었다. 그리고 반세기 이상이 흐른 오늘날, 중국이 과연 이런 모습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대상이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현실을 움켜쥐고 있는 그 사상과 철학의 역사성이다. 미조구치 유조는 바로 그러한 "중국의 역사적 깊이"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중국도, 일본 자신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일깨우려 한 것이다. 그 고개를 넘을 때 비로소 "중국의 충격"이 아니라 "중국과의 우애"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얕게 역사를 배우고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의 역사가 아닌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깊게 밀고 나가려 들지 않는다.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임을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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