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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픈 고백 "'희망 버스'는 반쪽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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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픈 고백 "'희망 버스'는 반쪽짜리다!"

[이렇게 읽었다] 송경동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시인 송경동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펴냄).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후다닥 읽어 재낄 수 없는 책이다. 자본과 권력에게 괄시 받아 서럽고 고통스런, 하지만 "희망의 근거"를 다지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며 읽을 수밖에 없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송경동의 인간관, 문학·예술관, 세계관, 실천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왜 송경동을 가리켜 새로운 미적 전망으로서의 사회 미학과 예술의 21세기적 변모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그리고 전환기 예술가와 대중의 새로운 실천 방식을 현실화시킨 미학적 행동주의자라고 지칭하였는지 알게 된다. 즉,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시인 송경동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읽어보면 알겠지만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송경동만의 책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김진숙과 '85호 크레인''),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자본과 권력의 지배를 넘어서야만 행복할 수 있는, 그래서 무섭고 서럽고 한스럽다 해도 용기를 내고 힘을 모아 싸워야만 하는 우리네 운명에서 피해갈 수 없는 토픽들이 있다. 인간, 문학과 예술, 세계,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그리고 그것에 관한 각자의 생각에 대한 서로의 공감이 있어야만 우리는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인간, 문학과 예술, 세계, 실천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우리가 이 시대의 '부조리'-실존의 위기 혹은 절망적 실존의 상황-에 맞서 벌여야 할 논의와 실천에 관한 시인 송경동의 '기조 발제'인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에 관한 이야기

▲ <꿈꾸는 자 잡혀간다>(송경동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실천문학사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청춘 시절과 가족 그리고 벗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지난 시절과 사람에 대한 소회에 머물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에는 '시인 송경동'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송경동의 시'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인간에 대한 그윽한 시선'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송경동은 인간을 "연약하면 반성해도 사회로부터 용서받지 못하는, 그래서 상처로 가득 차 측은한" 존재로 바라본다. '측은지심'이 출발점인 셈이다. 군대를 두 번씩이나 갔다 왔어야 했고, 삼일장도 과분해 이틀장으로 생을 마무리 한 깡패 큰 아버지가 그렇고('깡패 큰 아버지 잘 가시라'), 퇴락한 장사치라 여겨져 아들에게 행님으로 불리기까지 했던 아버지가 그렇다('아버지의 자리'). 또 좌익으로 낙인이 찍혀 평생을 낯선 땅에서 살다 '봉분 없는 무덤'에 묻힌 장인어른이 그렇다.

하지만 이러 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송경동은 그들을 미안함, 사랑, 존경의 마음을 갖고 바라본다. 아무리 누추하고 볼품없다 해도 인간은 그런 마음을 받아야 하는 '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시선은 타인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도 가 닿는다. 그 결과 인간은 삶이 뭔가 하는 슬픔에 직면하기도 하고 무섭고 싫다고 느껴지기도 하는('한 무명 시인의 죽음') 연약하고 측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가고('5월 어느 푸르던 날'), 또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어여쁜 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사랑에 부디 '사랑만이' 있기를" 바라는 존재이기도 하다('어느 비정규직의 사랑 이야기').

더 나아가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나아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삶으로, 몸으로, 아픔으로 깨닫는" 존재이기도 하다('동생의 행운목').

그러면서도 에고와 집착에 갇혀 패배 의식을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 그래서 인간인 "나는 오히려 (…) 더 많은 시간을 진짜 나의 적인 '나'와 싸운다."('이 땅에선 꿈꾸는 자 잡혀간다').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

송경동은 자신의 "모든 시는 산재시"라고 선언한다('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그렇다고 그가 문학을 노동자의 권리 투쟁을 위한 당장의 '도구' 정도로 보고 있다 생각하면 오해다.

그가 말하는 산업재해는 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개별 노동자의 죽음과 신체적 장애를 가져온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몸값과 같은 돈을 주고 산 기계는 무척이나 아끼지만 인간은 마모될 때까지 쓰고 싶어"함으로써 노동자의 죽음과 신체장애를 끊임없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즉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지독히 고약한 파괴적 속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의 시도 뭇 시들처럼 외로움과 그리움에 관해 노래하지만, "외로움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모든 형태의 산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세계에 대한 항의"이며, "자연을 그리워할 때 그것은 모든 조화로움으로부터 쫓겨난 근본적인 산재에 대한 항변"이 된다.

세계를, 그것의 본질을 문제삼는 만큼 그에게 예술은 "백 년 후, 천 년 후를 경계 없이 사는" 그 무엇이다. 이 때문에 "당대의 편협한 잣대와 잇속"으로 재단하여 문학과 예술을 탄압하는 지금의 정치는 "아둔하고 치졸"할 따름이다('이 땅에선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이 목도하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세계는 그렇게 비인간적인 탐욕과 포악함으로 가득 찬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전태일이 죽은 지 40여 년이 흘렀는데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은 지 만 25년이 다 되가는데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교섭 한 번을 따내는데도 (…)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작은 코뮌, 기륭')이다. '삶의 의의를 찾을 수 없는 절망적 상황', 즉 부조리는 바로 그런 나라와 사회에서 생겨난다.

관조를 넘어 희망의 근거를 직접 찾아 나선 실천 이야기

시인 송경동과 <꿈꾸는 자 잡혀간다>의 정수는 인간, 문학과 예술,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사색, 즉 '관조'에 있지 않다. 실천! 시인 송경동과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대추리, 삼성 반도체 기흥 공장, 기륭, 용산, 부산 한진중공업을 가로질러 지금도 실천을 멈추지 않고 있기에 읽힘이 있고 느낌이 있는 시(인)이고 책이다.

그래서 그는 민주화 이후 더 교활해져 오히려 더 험악해진 자본과 권력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 만난 김남주이고 박노해다.

그런 시인 송경동과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말하지 않는 (…) 얼치기 지식인들이 쓰는 동정어린 시선도, 교조적이고 형해화된 사회과학적 인식도, 밥 한 그릇 먹여주지 않는 도덕관념도 끼어들 틈이 없다."('내일로 가는 닥트공').

하지만 시인 송경동은 '거친 싸움꾼'이 아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고 모두가 당장 싸움에 나서야한다며 윽박지르지 않는다. "닥트공 최씨"가 그러한 것처럼('내일로 가는 닥트공'), "즉자적인 분노에 휩쓸리지도 않고, 불타는 적개심에 자신을 소진시키지도 않는다."

바로 그래서인지 민중 민주 투쟁을 지난 시절 자신들만의 허튼 무용담으로 일삼는 일부 '속물 386(486)'의 으스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혁명을 꿈꾸며 가파르게 달려온 "젊은 날이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우리는 너무 가난하게만 살아간다는 것이 가끔 억울하고 서글펐다"고 해도('내일로 가는 닥트공'), 인간을, 문학과 예술을, 세계를 게으름 없이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괄시받는 자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 뿌리를 둔 자는 결코 으스대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배기는 바로 그런 자에게 바쳐지는 칭호이다. 그래서 시인 송경동과 그의 이야기는 백기완의 말처럼 '진짜배기'이다.

"너무도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우리의 노동을 착취하고 권리를 앗아가는"('내일로 가는 닥트공') 이 시대가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희망 버스 이후

진짜배기 시인 송경동과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희망 버스 이후 "가슴 아프게" 남겨놓는 이야기가 있다. 시인 송경동과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이 이야기 때문에 '기조 발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할 수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는 수천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한진이 세운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에서 일하는 2만2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들 정리 해고자가 정규직일 때, 힘 있는 노조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해왔는가라는 뼈아픈 질문 (…) 그래서 자신은 한진으로 향하는 희망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희망의 근거').

희망 버스로 만들어진 "희망의 근거" 위에 그가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세워낼 것인지, '진짜배기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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