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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의 비밀, 헌책방에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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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의 비밀, 헌책방에서 찾다!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김준엽의 <중국 최근세사>

고서가 아닌 고전

김준엽의 <중국 최근세사>(일조각 펴냄)를 읽었던 것이 대학 시절이었으니 30년도 더 되는 옛날이 되었다. 그땐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읽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덥석 사들고 들어왔다. 197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판을 거듭하기는 했으나 이젠 품절이라 새 책방에서 구할 수 없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읽기에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우선 세로쓰기로 되어 있고 한자가 그득하다. 세로쓰기 일본책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쓰여 있는 용어에서도 일본 투 한자가 간간이 눈에 띄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는 고서(古書) 수준이다. 그러나 책 내용은 놀랍고, 그 품질은 고전(古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어찌해서 이런 책이 계속 출간되어서 자라나는 세대의 손에 들려지지 않는가 안타까운 마음이 깊다.

중국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고(故) 김준엽의 <중국 최근세사>는 낡은 책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중국의 근대사를 직접 살아냈고, 동아시아 전체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살았던 김준엽의 그 열정적인 호흡과 방대한 지적 체계, 그리고 역사를 씨줄 날줄로 엮어내는 솜씨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역사적 체험이 살아있는 중국 근대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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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근세사>(김준엽 지음, 일조각 펴냄). ⓒ일조각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중국 관련 서적과는 달리, 선생은 그 시대를 직접 체험했고 중국의 비극과 우리 민족의 비극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민족사의 전망을 세운 안목으로 중국의 근대를 정리해냈다. 그렇기에 책에는 학문적 엄밀성만이 아니라 중국이 겪었던 고통과 격변 그리고 좌절과 희망의 길 찾기를 상세하고 심도 있게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에 능통했던 저자가 전해주는 1차 자료의 생생한 역사성과 목소리는 이 책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여기에 더하여, 단지 중국의 근세사만이 아니라 서구 역사의 근대가 어떤 경로를 밟아 중국과 만나 갈등과 대치, 침략과 지배, 저항과 혁명의 사건들을 만들어내는가를 명료하게 밝혀낸다.

김준엽의 역사 기술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현대적이다. 달리 말해, 그는 동아시아 역사를 세계사의 유기적 관점에서 파고 들어가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세계 체제론 이후 발전하고 있는 '세계사(World History)' 틀과 그대로 들어맞는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사'란 여러 나라의 역사를 총집합시킨 서술이 아니라, 각 지역의 역사가 서로 어떤 연관 구조를 만들어가면서 전체 지구사를 형성하는가의 개념에서 말하는 '세계사'이다.

가령 그는 지금의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치달으면서 동아시아로 가는 해상로를 만들어 세계 체제를 이루는 경로를 이렇게 묘사한다. (표기는 현대적으로 바꿨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것은 1453년인데 이 시기 유럽 서쪽 끝에서도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로마 교황은 자기에게 충실한 지지자인 두 나라가 경쟁으로 불화를 일으킬까 염려해 남미의 브라질을 통과하는 자오선으로부터 서쪽을 스페인의 세력권으로, 그 동쪽을 포르투갈로 획정했다. 이것이 1506년의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조약이다. 이로 인해 인도양 항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스페인은 서진을 계속해서 태평양으로 진출하게 되고 포르투갈은 인도양을 경과하여 중국 인근으로 진출한다. 이 신항로의 이용으로 종래의 동아시아-서아시아-유럽의 육상 교통로는 완전히 압도당하여…"

세계사적 안목

이런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확장과 함께 기존의 중화 체제가 서로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아편 전쟁의 자세한 전말과, 이 충격 이후 전개되는 중국 내부의 양무 운동을 비롯하여 태평천국의 난, 서태후 체제의 몰락과 신해 혁명에 이르는 장강과도 같은 역사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아편 전쟁의 경과를 분석해 들어갈 때에도 김준엽은 영국의 모직 산업, 인도의 면, 중국의 차, 은의 국제적 수요, 영국 내부의 산업 체제의 요구와도 같은 다양한 움직임을 한 손에 잡히든 엮어서 풀어간다. 영국의 모직 산업 수출이 따뜻한 지역에서 먹히지 않아 인도의 면을 대신 팔고 이 면을 영국에 가져오다가 영국 내부의 모직 산업 주도 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고, 그래서 면을 중국에 팔지만 중국의 차를 대량 수입하면서 은의 유출이 심해지는 복잡한 상황에서 결국 아편 판매로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영국의 모습을 김준엽은 드라마처럼 엮어나간다.

이러한 역사 분석과 서술은 방대한 지식과 전체 역사에 대한 유기적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중국이 치른 엄청난 희생에 대한 일체감 없이는 속속들이 그 사정을 파고들어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런 까닭에 그의 책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버거울 정도다. 300쪽이 조금 넘는 정도인데 그로써 얻게 되는 역사 지식과 1차 자료에 접하는 지적 즐거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건의 유기적 이해와 분석이 돋보여

또 하나 흥미롭고 크게 배우는 것은 역사에서 그 앞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뒤의 사태를 만들어내는가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아편 전쟁이 중국에 준 충격을 청조가 어떻게 소화하는가, 그 소화의 과정에서 직면했던 현실과 한계는 무엇인가, 그러면서 그 단계에서 해결한 것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 숙제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연관된 고리를 정확히 짚어 설명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책을 읽노라면 우리는 이홍장의 등장과 몰락, 강유위와 양계초의 역할과 그 역할의 소멸, 홍수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태평천국의 난이 이뤄낸 중국 역사의 내면 의식, 서태후의 반동 정치가 의화단 사건이나 신해 혁명과 어떤 관련을 갖게 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날 중국의 역사 속에 알게 모르게 담겨 있고 스며있는 역사의식과 행동 방식 그리고 저력을 새삼 달리 평가하게 된다.

역사에 대한 종합적 평가의 눈

한 사건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김준엽은 단편적이지 않다.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서도 그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저지른 잘못과 오도된 역사의식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태평천국의 난이 중국 민중들에게 평등 사회에 대한 염원을 불러 일으켰고, 민족 혁명의 선봉이 되었으며 중국형 공산주의의 시원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저자가 이 책의 역사적 서술 시점의 마무리를 신해혁명과 이어지는 국민당, 공산당의 등장으로 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 책 출간 당시 중국의 현대사에 이어지는 대목에 대해 학문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은 엄중히 제동이 걸려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김준엽의 <중국 최근세사>의 내용은 놀라운 용기와 학문적 치밀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헌책방이 주는 지적 충격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에 헌책방의 역할에 대해 한 마디 남기고 싶다.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가 에너지를 쏟아 주력하는 주제나 그걸 풀어낼 수 있는 특정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 시대가 지나면, 그런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다음 시대는 앞 시대보다 정보도 많고 환경도 낫다 해도 그걸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시기에 나온 책들 가운데 뛰어난 저작들은 어떻게든 재출간 되거나 아니면 헌책방을 통해 새로 유통되어 우리의 지적 체계를 견고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준엽의 <중국 최근세사>를 바로 그런 헌책방에서 만나 요즈음 나오는 중국 관련 서적들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과 내용으로 지적 충전을 얻었으니 기쁘기 짝이 없다.

덧붙여, 21세기 동아시아의 격변을 이해하고 그 역사적 전망을 세우며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지게 되는 동아시아적 맥락의 의미까지 캐들어 가고자 한다면, 이 책의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김준엽의 생전 그 역사적 체험의 풍부함과 꼿꼿한 정신적 체취와 함께, 동아시아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지적 흥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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