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MB가 '물대포'를 든 진짜 이유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MB가 '물대포'를 든 진짜 이유는?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한나 아렌트의 <공화국의 위기>

저항의 정당성

1960년대 말, 미국은 인권 운동과 반전 운동의 기류가 대학을 요동치게 한다.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기존 질서에 대한 학생들의 대대적인 반격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폭로되고, 인종주의의 모순 위에 선 정치는 더는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미국의 젊은이들은 시민 불복종이라는 방식으로 저항을 펼쳐나가면서 20세기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이로써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권력이 불법으로 몰았던 일들이 합법이 되고, 정부의 공식 발표는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대의제의 한계는 고스란히 폭로되었고 미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의 결과라는 신화는 깨져나갔다. 기만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고, 저항이 일상화되면서 공화국의 위기는 공화국의 회복으로 이어져나간 것이다.

이러한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은 지금 다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헌법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 시위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신조는 다름 아닌 "쉽게 지배당하지 않는 시민들(Unruly people)의 저항"으로 생겨난 것이며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 선택을 기초로 하는 공화국의 위력을 주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의 면모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 내부의 역사적 전통에는 이러한 정치철학적 기초가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다.

쇠퇴하는 권력은 폭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지배 계급은 바로 이 공화국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공격의 목표가 되고 있으며, 이들 지배 계급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고 있으나 그럴수록 그것은 정당성을 잃은 권력이 폭력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시민들의 견해(opinion)에 바탕을 둔 권력이 시민적 지지를 잃어갈 때 발동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경찰력에 의존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이 정당성을 상실하고 그 권위가 쇠퇴해가는 징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정부의 거짓말로 인한 공화국의 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전개, 그리고 경찰력을 동원해서 이 운동을 막으려는 권력의 궁여지책을 목격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무수한 거짓 홍보와 기만, 그리고 날치기 처리에 이르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분노는 기존의 실정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나 아렌트의 <공화국의 위기>(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를 읽는 것은 권력의 기만과 폭력에 맞서서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하려는 절박성에 적지 않은 자신감과 정치철학적 전망을 공급해준다. 이 책은 1969년에서 1972년의 시기에 걸쳐 쓴 것으로, 베트남 전쟁의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가 폭로된 현실과,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으로 구체화된 시민 불복종 운동의 의미, 비폭력 저항의 중요성 등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정치는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을 모른다

▲ <공화국의 위기>(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 거짓, 또는 기만이 대체로 당연한 도구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거짓말이 반복되면서 그 거짓을 생산해낸 자들조차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리게 되는 사태가 생겨나면서 그 자신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 있어서도 "남부 베트남에서의 저항은 호치민 정권의 지원이 기초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발생한 것인데도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이에 대해 무지해져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정책 결정자의 거짓말 반복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를 베트남 전쟁의 수렁이라는 말로 표현하게 해버렸으며, "실제로는 베트남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지리에 대해 깡그리 무시하고 만 결과라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남을 속이려다가 자기가 속고 말았다(internal self-deception)는 이야기인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갔다는 결론이다.

한나 아렌트는 경고하기를 정치에서의 기만과 거짓은 따라서 시민들과의 소통의 역량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을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권력은 정보가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늘 자신이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쉬운데(arrogance of power), 그게 결국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이 되고 그로써 저지르는 실수는 막대하다(colossal)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이러한 권력은 공화국의 위기를 불러오기 마련인데, 이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에 나서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위기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권력이 위협하려 하지만 그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가 야금야금 갉아 먹히기 보다는 차라리 저항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조직화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민 불복종에 대해 넘어가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 문제가 데이비드 소로처럼 개인의 양심에 따른 사안으로 보지 않고 공통의 견해(common opinion)를 가진 이들의 자발적 조직화(voluntary association)라는 각도로 파악해 들어간다. 기존의 법질서에 대한 시민들의 대대적인 불복종과 저항은 기존 정치의 해체를 예고하는 것으로서, 여기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바는 "다수의 참여"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에게 있어서 "다수의 참여"가 중요해지는 까닭은 이들의 견해가 기존의 법질서 자체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고, 기존의 법질서로 볼 때 불법이었던 일들이 합법이 되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집단행동과 협상 그리고 파업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한 노동법도 그 법이 만들어지기 전 수십 년에 걸친 불복종 운동의 결과"라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시민 불복종 운동은 민주 공화국의 기초인 다수의 자발적 조직화로서, 새로운 정당성을 획득하는 법의 창출이 가능해지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기존의 질서가 위기에 처하고 비상한 상황(emergency)에서 벌어지는 일로서, 헌법까지 바꾸어 내는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견해는 사회적 변혁의 시기에 일어나는 저항 운동에 대한 정치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이 되는 동시에 공화국의 발전에 필요한 변화가 갖는 의미를 조명하게 한다.

이밖에도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이념에 기초한 권력과 정부이든 그것의 내면적 진실이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를 구조화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폭력 체제이며 이런 모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은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당사자들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각성한 학생, 지식인 등일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계급적 토대가 분명한 세력이 언제나 정치적 변혁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꿰뚫어보고 나서는 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력 부대가 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미국 대학이 바로 이러한 현실 변화의 동력을 뿜어낸 까닭도 바로 그렇기 때문이며 이들의 운동이 자신의 기반인 대학을 공격 목표로 삼게 될 경우에는 그 운동의 기반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울러 경고하기도 했다. 운동의 비폭력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새로운 미래의 기초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한나 아렌트를 읽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와 공화국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기존의 법질서와 사회적 틀 안에서 사고하는 한, 정치의 변화와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법질서는 시민 불복종의 자발적 조직화에 기초해서 생겨나게 되었다는 그녀의 일깨움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해나가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수탈 기구의 하나인 한미 FTA에 헌납하는 권력과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지난 역사의 전개 과정으로 봐도 결코 불법이 아니며, 정당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이 운동이 성공해서 새로운 법질서를 만들고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려면 "다수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개인의 양심 문제로 그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은 윤리적으로 타당하나, 정치적으로 무력하다. 지금 광장은 바로 이 시민 불복종 운동의 자발적 조직화를 기다리고 있다. 권력의 거짓은 폭로될 것이며, 권력이 동원하는 폭력은 권력의 쇠퇴 징조임이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오로지 권력을 압도하는 다수의 자발적 조직화의 불복종 운동에서 태어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