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아들로 자라난 소년은 훗날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을 들어간다. 만화를 열심히 보면 혼나던 시절이었고 서울대는 꿈도 꿀 수 없는 때였다. 그 어머니는 온 동네에 자랑스럽게 외친다. "만화방 아들도 서울대 들어간다!" 만화가 천시 받던 시대의 자화상 한편이다.
그 소년의 손에는 산호의 <라이파이>가 들려 있었고, 박기정, 김종래, 김경언, 길창덕 등 당대의 뛰어난 만화가들의 작품은 모조리 섭렵하는 독파력을 보인다. 만화방 아들이 가게에 오는 아이들이 돈 낸 것보다 더 많이 보나 어쩌나 감시를 해야 하는데 자기가 만화 보기 바빠 그럴 사이가 없다.
돈 없는 아이들은 자기가 빌린 것 이상은 옆 친구들 보는 걸 슬며시 들여다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던 건 지금이야 우스운 이야기 거리지만, 그건 그 가난한 시절의 가슴 아련해지는 풍경이다. 학교에서 만화책 보다 걸리면 된통 야단맞고, 만화책은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혹 학급에 만화가를 아버지로 둔 아이가 있다면 그런 현실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훗날 시사 만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박재동은 그런 만화 천시의 시대에 만화 독서에 열을 올리며 자신의 꿈을 키운 아이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박재동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림을 그린다면서 방바닥 장판을 송곳으로 모조리 뚫어 놓았는데 아버지는 야단을 치신 것이 아니라 "잘 그렸다" 하셨단다.
박재동은 이 아버지의 말씀을 "짧은 심사평"이라고 기억한다.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여차저차 한 사정으로 만화방을 차리셨고 거기에서 그는 그야말로 마음껏 신간 서적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된다.
박재동의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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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박재동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
이 그림일기를 쓰게 된 동기를 박재동은 이렇게 밝힌다.
"10년 전쯤인가? 그냥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치 손가락 사이로 새 나가는 모래처럼 흘러가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만화가가 꿈이었던 어느 나이 든 분이 긴 세월에 걸쳐 그리고 써온 그림일기가 출판된 것을 보고, '아! 나도 그림일기를 써야겠구나'하고선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일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시절, 숙제로 내주는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세대에게는 박재동의 그림일기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안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얼굴, 길가에서 본 풍경, 지하철의 사람들, 가족들이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의 얼굴도 함께 담겨져 있다. 그런 까닭에 그림에는 박재동의 따뜻한 시선과 정겨운 유머 감각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이 전시되었던 것을 2년 전인가 본 적이 있다. 옥인동 쪽이든가 있는, 뭐라고 발음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ZEIN XENO"라는 이름의 갤러리에서였다, 그림들이 하도 좋아서 저걸 어떻게 손에 넣을 순 없을까 했는데, 그 그림들과 함께 이후에 그려진 그림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와 즐거웠다.
전시회의 그림과 차이가 있다면, 물론 원본과 복사본이라는 차이가 우선일 수 있으나 전시회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박재동 자신의 그림에 대한 기록이 촘촘하게 실려 있다는 점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겪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남들은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줄 안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남모르는 콤플렉스가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노련한 작가들도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면 좋겠다. 나는 화가로서 늘 그걸 의식하고 그걸 들킬까 두려워한다. (…)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려면 별 다른 방법이 없고 그 부분을 공부해서 채워 넣는 길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 노력하고 있으니 마음이 좀 낫다. 이 그림도 사실 조금 어색한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익살꾼
그래서 그림과 글을 함께 읽고 보면, 저절로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아들이 군대에 가서 근육을 키우니 이 철없는(?) 아버지도 아들에게 질 새라 장래 생길 근육 자랑을 하는 모습을 그려 보낸다.
이른바 '찌라시'도 주워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는 왈(曰), "어떤 종이에나 그리는 화가, 하하"하면서 씩 웃는 자기 얼굴을 보여준다. 말하지 않고 있으면 꽤나 근엄하고 무게 있는 그의 얼굴이 갑자기 익살꾼의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미인촌 광고 찌라시까지 그의 손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새로운 그림이 된다.
얼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의 친구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만든 배용균 감독이다. 배용균은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친구 박재동을 주인공 역으로 꼽아놓았다고 하는데, 정작 박재동은 이러다가 영화판에 몸 담겠다싶어 줄행랑, 잠수를 탔다고 한다. 이래서 우리는 한국 영화계의 대 배우를 잃는 대신, 대 화백을 얻었다는 전설.
영화와 관련해서 이 책에는 흥미로운 대목 하나가 나온다. 그림은 어느 주점에 막걸리 한 주전자와 초라한 안주를 놓고 술 한 잔을 마시려는 한 마른 사나이의 모습이다.
"밤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마부>를 보게 되었다. 그 시절의 서울거리는 물론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되었는데 그때 대폿집 장면의 뒤쪽 엑스트라가 눈에 띄었다. 가난하고 힘없으면서 약간의 불량기도 갖춘 전형적인 모습으로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그 시대를 맞닥뜨린."
그리고는 그 옆 페이지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이창동 감독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다. 이창동 감독은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림 중에 어느 것이 더 리얼할 것 같아요?' 하고 묻더니, 그림이 더 리얼하다는 것이다. 얼른 보면 실사 영화는 사람이 직접 나오니까 더 리얼할 것 같지만, 자기가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모두 뚱뚱하고 인상도 관상도 영양도 문화도 모든 것이 바뀌어 이미 현대 우리나라 사람은 5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애니메이션은, 그림은 그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야 옛날 영화를 보니 그 얼굴들이 정말 많이 달랐다. 나는 그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도 그리는 그는 이 책에 들꽃이 피어있는 지하철 풍경도 그려놓았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아니, 우리가 꿈꾸는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연을 추방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박재동은 달, 꽃, 갈대숲, 나무, 심지어 바퀴벌레까지 열심히 그린다. 이 대목에 이르면 괴상한 작가 소리 딱 듣기 좋다.
그러나 그가 손대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늘 풍부하다. 웃는 모습을 그릴 때는 더욱 그렇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웃고 있고, "오십이 되도 장가를 못 갔고, 육십이 되었어도 장가를 못가 이젠 틀린 것 같다"며 농인지 진담인지 구분 못하게 하는 명진 스님도 사람 좋게 웃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의 그림에 나오는 젊은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쁘다. 외모 지상주의는 아닐 것 같은데, 하여간 그렇다.
마감 시간의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그날의 정치와 사회를 단번에 움켜잡고 핵심을 보여주는 시사 만화가의 고강도 노동을 통과해온 박재동의 그림은 긴장보다는 유머가 넘친다. 붓 펜으로 그리는 그림에는 단순한 선인 듯하지만 내공이 돋보이고, 색이 들어간 그림은 한없이 정겹고 따스하다.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손바닥 그림 운동"도 펼친다. 자그마한 종이에 언제나 쉽게 그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어디서나 그릴 수 있는 습관, 자신감을 유포하는 것이다. 그 덕에 나도 요즈음 틈만 나면 이것저것 스케치를 한다. 손바닥만한 일이 점점 꽤나 기쁜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박재동은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서 멀리 아프리카까지도 가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돕는다. 손바닥만한 작은 일에서부터 점점 그 뜻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의 그런 마음은 이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만화책을 읽고 마음이 저도 모르게 착해지는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박재동의 그림을 보면서, 오래 전 종로 5가에 몰려 있던 만화 도매상이 생각났다. 청계천에 있던 만화 책방도 이젠 다 사라졌다. 아버지와 함께 종로 5가와 청계천으로 퍽도 많이 다녔다. 만화책 본다고 혼내시기는커녕 같이 열심히 만화책 보았다. 김종래의 사극 만화와 산호의 <라이파이>는 물론이고, 김경언의 <의사까불이>도 나 역시 모두 탐독한 책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재동 화백이, "아, 선진적인 가정이었군요" 한다. 역시 송곳으로 방을 뚫어놓고도 아버지에게 잘 그렸다는 짧은 심사평을 받은 이다운 답변이었다. 그런 이야기에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있겠는가? 서로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를 읽고 보고 있노라면, 만화가 얼마나 다정할 수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왕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프레시안>의 손문상도 얼마나 그림 잘 그리나? 그는 박재동이 아끼는 후배다.
실로, 만화책, 인류가 도달한 문명의 가장 흥미진진한 상상력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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