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1월 첫날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각하의 영문판 자서전에 따르면 각하는 퇴임 후에도 계속 일을 벌이시려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녹색을 지속적이고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계신 모양이다. (☞관련 기사 : MB "퇴임 후 녹색 미래 위해 세계를 돌아다닐 것")
2009년 어린이날 청와대를 찾은 어린이들에게 "대통령을 그만두면 환경 운동, 특히 녹색 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이래로, 대통령은 여러 차례 녹색 성장과 환경 보호를 강조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제는 퇴임 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시다니. 우리는 '가카'에게서 개인의 꿈을 위한 '순결한' 집념을 배워야 할 듯싶다.
대통령이 주창했던 녹색 성장의 가장 큰 축인 4대강 사업은 한 개그 프로의 자학 멘트(특이한 구강 구조를 지난 한 개그맨이 말했다 "우리의 개그는 4대강 사업이야. 국민의 80퍼센트가 호응을 안 하거든~")를 위한 은유로도 사용될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한 사업이다.
100억 원 달하는 홍보비를 뿌려대며 완공을 자축했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강물이 이 겨울을 지나 내년까지 과연 버텨낼 수 있을 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완공을 앞두고 정부는 4대강 공사 덕분에 올 한 해 홍수 피해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광고해 댔지만, 이것이 국토해양부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2조 원을 들여 손을 댄 4대강의 본류에서는 지난 4년 강 홍수 피해가 없었다. 도대체 비교 대상이 뭐였던 것인가? 이 주장이 조악한 것을 스스로 알아서일까 정부의 4대강 광고는 홍수 피해 저감에서 자전거길 홍보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핵발전소 수출이 그러하듯, 정부는 4대강 사업의 관리 기술 자체를 수출할 기세로 주요 국제회의 때마다 4대강 사업 관련 홍보 부스를 차려놓았다. 우리는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 수출이 결정되면서 역사에도 없던 '원자력의 날'(UAE 원전 수주를 기념하는 날. 12월 27일이다)을 갖게 되었다. 만약 이와 유사하게 '4대강의 날'이 생긴다면 그건 타이하고 관련이 되지 않을까? 완공이 되었다는 4대강 사업 지구를 처음으로 시찰하고 간 외국인이 바로 얼마 전 엄청난 홍수 피해를 입은 타이의 외무장관 일행이기 때문이다.
타이는 지난 10월 말 수도 방콕에 소개령이 내릴 만큼 엄청난 홍수 피해를 입었다. 타이의 북부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광활한 충적토 위에 펼쳐진 '아시아의 밥그릇(rice bowl)'인 거대한 논농사 지대를 거쳐 타이 만으로 빠져나가는 타이의 거대한 젖줄 짜오 프라야 강이 범람하여 반세기 만에 가장 심각한 홍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거대한 짜오 프라야 강의 유역 면적은 타이 국토의 30퍼센트에 달하고, 인구의 40퍼센트에 달하는 2300만 명이 짜오 프라야 강에 직간접적으로 생계를 의탁하고 있다. 이 강의 영향지역 대부분이 이번에 홍수 피해를 입었는데, 그 면적은 거의 덴마크 영토에 맞먹을 정도이다.
▲ CNN의 타이 홍수 피해 뉴스. 타이 만의 해수위가 만조에 달해 수도 방콕의 홍수 위기가 최고조가 되었던 10월 28일 뉴스다. 파란 부분이 (피해 수준은 상이하다) 홍수 피해 지역이다. ⓒCNN |
홍수가 가져온 경제적 피해도 만만치 않다. 이번 홍수로 타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2퍼센트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 타이의 홍수 사태로 국제 쌀 가격이 이미 상향세를 보이고 있으며, 방콕 북부의 주요 산업 단지의 침수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컴퓨터나 자동차 부품에 생산 차질이 생긴 것도 경제적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타이 역시 이미 세계화 질서 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까닭에, 타이의 쌀과 제조업 부문의 피해는 전 세계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속출한다.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은데, <타이 포스트>의 기사에서는 440여 명, BBC의 기사에서는 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타이의 홍수 사태는 통상적인 자연 재해와는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의 자연 재해는 대단히 급작스럽게 발생하기 때문에 인적, 물적 피해가 심각하다. 이에 비해 이번 타이 대홍수의 조짐은 이미 지난 7월 말부터 타이의 북부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적인 재난 사태로 선포되기까지 3개월이나 걸린 것이다.
또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타이 만 물난리가 났었고, 오히려 열대 폭풍이나 태풍의 물 공급원이 되는 바다를 끼고 있는 베트남이나 미얀마 등 인접 국가에서는 타이만큼의 심각한 홍수 사태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이번 홍수의 배경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열대 몬순 기후대에 속하는 타이는 통상 5월부터 10월까지가 우기(rainy season)이다. 타이 기상청의 자료를 살펴보니, 6월 말에서 9월 사이 타이 북부 지방에 3차례의 열대 폭풍과 한 차례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또 8월 열대 몬순의 영향으로 오랜 동안 저기압이 자리했던 것 역시 비를 더했다고 한다.
이렇게 내린 비는 상류의 댐에 집적되었다가 9월 중순 이후 어쩔 수 없이 방류를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한 달 만에 방콕에 당도하면서 엄청난 물난리로 국제적 뉴스가 된 것이다. (물론 방콕이 물에 잠기는 초유의 사태로 국제적 뉴스가 되기 전 이미 8월부터 북부 지방의 홍수 피해는 심각했었다.)
짜오 프라야 강은 높은 산악 지대를 벗어난 중류 이후로는 해발 고도가 매우 낮은 평평한 저지대를 사행(蛇行)하기 때문에 쉽게 범람한다. 이로써 만들어진 광활한 충적토는 논농사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거의 연중 행사처럼 홍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타이 정부는 일찍부터 우기에 물을 가두었다가 건기에 방류하기 위해 크고 작은 댐과 집약적 관개 시설 및 운하 시설을 건설해 왔는데, 보와 댐을 합치면 그 수가 전국적으로 총 3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1990년대 이래로 상류 지역의 산림 벌채와 용지 전용, 중하류 지역에서 농업의 집약화(대부분의 논에서 3모작을 한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물 사용량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무리한 지하수 개발, 그리고 그로 인한 지반 침하와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더해지면서 수자원의 관리는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되어갔다.
하지만 타이 내부의 전문가든 외부의 분석가든 50년 만에 최악의 홍수를 만든 금번 사건을 단순한 자연 재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번 방콕 홍수의 원인은 첫째 평년보다 많은 강우량, 둘째 만조로 인해 짜오 프라야 강의 방류가 방해 받음, 셋째 수자원 관리 구조 및 제도의 한계. 여기서 세 번째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래의 댐 용량 지도이다.
ⓒchiangraitimes.com |
이는 짜오 프라야 강 유역의 주요 댐들의 수위를 보여주는 자료인데, 9월 중순 즈음 모든 댐이 가용량에 육박하거나 넘어서는 물을 가둬두고 있었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지역에서 우기 시 댐에 저장된 물은 건기 시 각종 용수의 수급에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본격적인 우기가 닥치기 전 물을 빼 댐의 용량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급작스런 큰 비에 댐은 쉽게 만수위가 되고 그렇게 되면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급작스런 방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하류 지역은 오히려 더 큰 홍수 피해를 입게 된다. 이번 타이의 홍수 사태도 적절한 시기에 짜오 프랴야 강의 수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개의 대형 댐(핑 강의 부미볼 댐과 난 강의 시리킷 댐, 이 두 댐으로 짜오 프라야 강 총수량의 22퍼센트를 통제할 수 있다)의 수위를 미리 조절해 두지 못한 행정력의 판단 착오가 불러온 참사라 할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기후 현상(extreme events)은 물론 강우량의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타이 기상청의 자료에 따르면, 타이의 날씨는 1990년대 이래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매우 종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1990~93년 사이의 강수량은 평균 이하였고, 그 결과 1993년 타이는 대대적인 가뭄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1994년과 1995년에는 다시 평균 이상의 강수로 심각한 홍수를 경험하였다. 가깝게는 2005년과 2008년에도 타이는 심각한 가뭄을 경험하였다. 작년 여름에도 타이의 강수량은 평균 이하였기 때문에, 올해 댐을 관리하는 기관들이 댐의 용량 확보를 소홀히 했다는 현지 기사도 발견된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에 필요한 홍수 관리 경험과 전문 지식은 더 많은 댐(hardware)에 관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정교하게 강수량을 예측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말랑한 기술(software)일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타이의 외무장관에게 이포 보와 주변의 수변 공간을 보여주고 낯설기 짝이 없는 어도와 수변 카페와 자전거 도로를 자랑하는 것은 홍수 관리의 경험과 전문 지식이 아니라 아직은 토건과 인공 조경에 관한 경험과 지식일 뿐이다. 때문에, 이로써 홍수 기술 이전과 협력을 말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말이다.
한국 정부는 아주 신속한 속도로 적십자를 통해 타이에 이미 2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일요일 저녁 TV를 보다보니, 화면의 한쪽 끝에는 타이의 홍수 난민을 돕기 위한 ARS 자막도 뜬다. 그런데 그걸 보는 나는 심정은 그런 행동의 저의를 의심하면서 웬일인지 착잡함이 밀려든다. 이런 행동들이 피해 난민을 위하는 아름다운 국제 연대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 공사 수주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떡값'처럼 보이는 것은 과연 한 사람의 과민한 녹색주의자의 삐딱함인 것일까?
4대강 사업이 진정으로 홍수 방지에 도움이 되는, 그래서 22조원이란 돈이 아깝지 않은 기술인지 여부는 내년 여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대통령이든 수자원 공사든 나라 밖으로 자꾸 눈 돌리지 말고 산적한 국내 사안에만 '오롯이' 몰두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망한다. 4대강 기술 수출의 부푼 꿈을 이번 타이의 홍수 사태를 기회 삼아 펼쳐보려는 검은 짐승의 준동이 진짜로 없기를. 덧붙여, 이번 홍수로 어이없게 목숨을 잃고 다친 타이인들에게 애도의 마음만 오롯이 전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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