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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는 '시간 여행' 불가능! 미래로는 택시만 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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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는 '시간 여행' 불가능! 미래로는 택시만 타도…

[물리학자의 '과학 수다'] 빛보다 빠른 물질, 그게 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이후 100여 년 동안 절대 진리로 여겨졌던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전제가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가 3년간의 실험 결과 '뉴트리노(중성미자)'가 빛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2011년 9월 24일자)

이번 세른의 발표가 맞는다면 현대 물리학은 전면 다시 써야 한다. (…) 또한 세른의 발표가 맞는다면 시간 여행이 가능한 '타임머신'의 제작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어서 과학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이번 발표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타임머신의 제작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 2011년 9월 24일자)

지난 9월 24일 전 세계 주요 언론은 한목소리로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등의 소식을 전했다.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에서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까지 뉴트리노(중성미자)를 쏘아 속도를 측정한 결과, 빛보다 약 1억분의6(60나노)초 빠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발표한 오페라(OPERA·The Oscillation Project with Emulsion-tRacking Apparatus)는 전 세계 11개국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뉴트리노의 특징을 규명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2008년부터 3년간 세른에서 뉴트리노를 쏴서 그란사소에 있는 오페라 검출기에서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 오페라 발표의 진위 여부를 놓고 과학계는 약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갑론을박 중이다. 한 달 만에 이번 발표와 관련해 약 110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번 발표의 폭발력이 얼마나 큰지 또 과학자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대다수 시민은 이번 발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언론이 한차례 센세이셔널하게 보도하기는 했지만,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짚기는커녕 사실관계도 부정확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실험 결과를 발표한 주체를 오페라가 아닌 세른으로 보도한 것부터가 사실관계가 틀렸다.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부각한 것 역시 과학계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프레시안 books'는 이번 호부터 책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최근 쟁점을 살펴보는 '과학 수다'를 시작한다. '과학 수다'는 최근에 논란이 된 과학기술계의 중요한 이슈를 과학자들이 직접 설명하고, 더 나아가서 해당 이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는 자리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과학 수다' 첫 번째 주제는 앞에서 소개한 빛보다 빠른 입자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다. 빛보다 빠른 입자가 정말로 확인된 것일까? 이번 실험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는 무엇인가? 빛보다 빠른 입자가 확인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틀렸나? 빛보다 빠른 입자는 진짜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줄까?

이런 의문을 정리해줄 과학자는 물리학자 이강영, 이종필 박사(건국대학교)다. '프레시안 books' 상임기획위원인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와 과학 소설(SF) 평론가 박상준 SF아카이브 대표가 독자를 대신해 두 물리학자와 대화를 나누는 역할을 맡았다. 다음은 지난 10월 26일 진행된 두 시간에 걸친 수다의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빛보다 빠른 입자? 뉴트리노?

이명현 : 이 자리는 지금 과학자들이 무엇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서 마련이 되었습니다. 뉴트리노(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 이런 발표가 나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과학계, 특히 물리학계의 분위기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직접 관계가 있는 입자 물리학자들은 말 그대로 밤잠을 설치지 않았나요?

이종필 : 난리가 아니에요. 한 달 새 논문만 약 110편이 나왔습니다. 너무 많은 논문이 쏟아지고 있어서 직접 관련이 있는 입자 물리학자들도 논의를 다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다만 지금은 초기의 흥분 상태는 가라앉았습니다. 이제는 차분히 검증을 하자, 이런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이명현 : 우선 도대체 세른(CERN)과 이탈리아 그란사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한 번 살펴보죠. 우선 이번에 자주 오르내리는 뉴트리노가 뭔지, 그것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이강영 : 이 대화를 읽는 이들이라면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 정도는 알 거예요. 그런데 바로 이 양성자, 중성자를 구성하는 또 다른 입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었어요. 그것이 쿼크와 글루온입니다. 그리고 전자와 관계가 있는 뮤온이나 뉴트리노 같은 입자들도 있지요.

과학자들은 이것을 소립자(素粒子) 혹은 '기본 입자(elementary particle)'라고 부릅니다. 뉴트리노도 바로 그 기본 입자 중 하나에요.

뉴트리노의 아버지는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입니다. 파울리가 1930년에 이론적으로 이것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위대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1933년에 이름을 붙였고요. 그리고 1956년에 그 존재가 실제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뉴트리노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한 지는 반세기 이상이 지난 것이지요.

이명현 : 반세기나 지났으면 뉴트리노의 정체는 어느 정도 규명이 되었겠군요.

이강영 : 아니요. 이것이 독특해요. 기본 입자 중에는 전기를 띠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마치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전자가 각각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를 띠지만 중성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뉴트리노(neutrino)'라는 명칭도 중성자(neutron)의 'neutr-'에 '가볍다'는 뜻에서 이탈리아식 어미 '-ino'를 붙인 것입니다.

전기를 띠지 않으니 일단 잡아둘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웬만한 것은 다 진로에 방해를 받지 않고 투과해요. 지구 여섯 개를 놓고 뉴트리노를 쏴도 통과한다고 하니, 말 다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다를 떨고 있는 우리들 몸을 수많은 뉴트리노가 통과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확인이 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 정체를 잘 몰라요.

박상준 : 그럼, 뉴트리노의 존재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이강영 : 뉴트리노는 전기를 띠지 않기 때문에 직접 검출할 수는 없어요. 대신에 뉴트리노가 물질 속에 있는 전자나 원자핵 등과 충돌을 하면 전기를 띠고 있는 전자나 원자핵이 움직이기 때문에 전자기파가 나옵니다. 이 전자기파를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이런 뉴트리노의 충돌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서 그것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명현 : 그래서 이번에 뉴트리노의 속도 측정 실험도 3년이나 한 건가요?

이강영 : 여기서 잠깐! 이번 실험은 애초에 뉴트리노의 속도를 측정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요. 뉴트리노에는 전자 뉴트리노, 뮤온 뉴트리노, 타우 뉴트리노 이렇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세 종류는 서로 변환해요. 세른에서 쏠 때는 탁구공이었는데,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에서는 골프공이 관찰되는 거예요.

이걸 뉴트리노 '진동(oscillation)'이라고 하는데, 뉴트리노가 질량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 종류의 뉴트리노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특징이 바로 서로 다른 질량이거든요. 이번 실험은 세른의 가속기에서 나온 뮤온 뉴트리노(탁구공)가 그란사소 검출기에서 타우 뉴트리노(골프공)로 바뀌는 현상을 관찰하는 실험이었어요.

사실 세른에서는 20년 가까이 이 실험을 해왔는데 뾰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뉴트리노가 변환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자 3년 전부터 세른에서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그란 사소로 뮤온 뉴트리노를 쏘아서 타우 뉴트리노가 검출되는지 확인하는 오페라 실험이 유럽 각국의 공동 연구로 진행된 것입니다.

뉴트리노는 검출이 어려우니까 오랫동안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수천억 개의 뉴트리노를 쏴서 보내도 그 중에서 1~2개가 검출이 될까 말까 합니다. 3년 동안 그란사소의 오페라 검출기에서 총 1만6000개가 확인이 되었다고 하니, 실제로 세른에서는 수조 개의 뉴트리노를 쐈을 거예요.

그러다 뉴트리노의 속도를 측정해 보니, 빛보다 60나노초, 그러니까 1억분의 6초 빨리 도착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충격 그 이후


▲ <하면 된다>(고시바 마사토시 지음, 안형준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생각의나무

이명현 :
이전에는 뉴트리노의 속도를 측정한 실험이 없었나요?

이강영 : 뉴트리노는 가장 가벼운 기본 입자인 전자보다도 100만분의 1 이하로 가벼워요. 그러니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알았어요. 이전에도 뉴트리노가 빛보다 10에 -19승, 그러니까 1000경분의 1 정도 속도가 느리다고 이론적으로 계산해 놓았지요.

박상준 : 그러니까 애초에 빛의 속도와 거의 비슷할 거라고 계산을 해놓았었는데, 실제로 측정을 해보니 빛의 속도보다 빨라서 이렇게 논란이 된 거군요. 과학계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강영 : 크게 두 종류의 반응이 있는 것 같아요. 첫째 "그럴 리가!" 하는 반응입니다. 이들은 혹시 세른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오차를 낳는 요인이 없는지 집요하게 따져 묻고 있어요. 너무 세부적인 부분까지 파고들고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그 실험에 참여했던 과학자가 아닐까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실험에 참여한 몇몇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했데요. (웃음) 이 실험에는 한 17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그 중에 10명 정도는 아예 이름이 빠졌어요. 이름이 실린 과학자 중에도 상당수는 발표가 '경솔했다' 이런 입장이라고 알고 있고요.

그리고 지금 이 실험 결과가 실린 논문은 정식으로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잡지에 발표가 되지 않고, 웹사이트에만 올려놓은 '예비 논문'이거든요. 이 논문을 정식으로 발표하려면 실험에 참여한 이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한 절반 정도가 반대를 한다고 합니다. 실험 당사자조차도 실험 결과를 미심쩍어하는 거예요.

이종필 : 사실 오페라에서 실험 결과를 공식 발표할 때도 이런 식이었어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데이터를 검토했는데도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른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이제는 과학자 공동체가 이 결과를 검증해 달라' 이것이 메시지였으니까요.

박상준 : 어떤가요? 실제로 허점이 많나요?

이종필 : 글쎄요. 사실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속도를 계산할 수 있잖아요? 이 실험도 딱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

GPS(위성 항법 장치)로 세른과 그란사소의 거리 약 730킬로미터를 정확히 측정했어요. 오차가 약 20센티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 측정도 온갖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거의 10억분의 1 수준의 오차로 정확하게 측정했어요. 그렇게 측정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눠서 빛보다 60나노 초 빠른 결과가 나온 거예요.

이명현 : 그런데 일단은 그 전에 확인된 우주 관측 결과와 차이가 나요. 예를 들어서, 지난 2011년 9월에 초신성 폭발이 있었잖아요. (물론 실제 폭발은 약 2000만 년 전에 있었겠지요!) 만약에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면, 그 초신성으로부터 날아 온 뉴트리노가 최소한 4~5년 전에 검출이 되어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이강영 : 네, 맞아요. 일단은 이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정식 발표하기 전에 오페라 자체적으로 혹독한 검증 작업이 있을 예정이에요. 일단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없었는지 전체적으로 점검을 하겠지요. 그리고 뉴트리노 검출 실험을 1년 정도 더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이명현 : 그런데 이전에도 이렇게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는 식으로 나온 실험 결과가 있었다면서요?

이강영 : 네. 미국의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Fermilab)에서 뮤온 뉴트리노를 쏴서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미네소타 주의 검출기에서 타우 뉴트리노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2007년에 그 실험을 하면서 뉴트리노가 빛보다 속도가 빠른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오차가 너무나 커서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요.

이명현 : 이번 오페라의 실험 결과를 보면서 미국에서도 난리가 났겠군요.

이종필 : 네, 그곳에서도 당시의 데이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또 뉴트리노의 속도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고요.

아인슈타인이 정말로 틀렸나?


▲ <과학의 척도>(도쓰카 요지 지음, 송태욱 옮김, 꾸리에 펴냄). ⓒ꾸리에

박상준 :
그런데 이렇게 빛보다 빠른 입자가 나온 게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강영 : 지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잘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기대고 있어요. 이제는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시간과 공간이 뉴턴이 얘기했던 것처럼 별개가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된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바로 자연에 존재하는 빛의 속도(c)에요.

빛의 속도는 어떤 상황에서나 '상수'로 고정돼 있어요. 그러니 시간과 공간은 항상 빛의 속도가 같은 값이 되도록 동시에 움직입니다. 아까 속도를 측정할 때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다고 했었지요? 상대성 이론의 세계에서는 빛의 속도를 일정한 값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시간 지연, 거리 단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중요한 절대 상수인 빛보다 빠른 물질이 발견이 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이종필 : 아까 과학계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라고 얘기했었죠? 하나는 방금 얘기했던 실험 결과를 의심하는 반응이고요. 이 실험 결과가 왜 틀렸는지를 반박하는 거죠.

다른 하나가 바로 빛보다 빠른 물질이 확인이 된다면 상대성 이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런 걸 이론적으로 따져보는 거예요. 물론 대다수는 '실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이런 뉘앙스를 깔고 있고요. (웃음) 빛보다 빠른 뉴트리노의 존재를 상대성 이론의 틀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니면 혹 상대성 이론을 폐기해야 하는지 등이 논란거리입니다.

아, 이런 것도 있네요. 엔드루 코언과 셸던 글래쇼, (둘 다 저명한 물리학자입니다. 글래쇼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요.) 이들이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면 에너지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73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갈 리 없다'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이런 관점에서는 3년간 1만6000개가 검출기에서 확인이 된 것도 너무 많은 숫자죠.

이명현 : 그런데 어떤가요? 빛보다 빠른 물질이 확인이 된다면 상대성 이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강영 : 역시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빛보다 빠른 뉴트리노의 존재를 인정하면 상대성 이론의 틀을 깰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앞의 코언과 글래쇼의 주장처럼 상대성 이론이 깨진다면 뉴트리노가 에너지를 잃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성 이론이 어떻게 깨지는가 하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죠.

반면에 상대성 이론을 약간 보완함으로써, 그러니까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수식에 몇 가지 항을 덧붙임으로써 빛 보다 빠른 뉴트리노의 존재를 그 이론의 틀 속에 넣으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아무래도 소수예요. 그만큼 상대성 이론의 틀 속에서는 빛보다 빠른 뉴트리노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이종필 : 간단히 답할 문제는 아니에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역설적이지만 이번 실험의 뉴트리노 속도 측정조차도 상대성 이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이번에 시간을 측정할 때도 GPS를 활용했어요. 그런데 인공위성에서 보면 뉴트리노를 쏘는 세른(가속기)과 뉴트리노를 검출하는 그란사소(검출기)가 다 움직이고 있잖아요.

즉, 인공위성의 관점에서는 세른에서 뉴트리노를 쏘자마자 그란사소의 검출기는 다가오고 있지요. 그럼, 인공위성에서 보면, 뉴트리노가 날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런 상대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고 오차를 계산해 봤더니 딱 64나노 초가 나오는 거예요. 마침 뉴트리노가 빛보다 60나노 초 빠르다고 나왔잖아요?

과연 오페라가 이런 효과까지 염두에 뒀겠느냐, 이런 지적인데요. 그래서 이런 지적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오페라의 답변은 없습니다. 만약 오페라가 이런 효과를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다면, 이번 해프닝은 상대성 이론을 깨기는커녕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이론인지를 한 번 더 확인해주는 일이 될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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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바 마사토시의 <하면 된다>(안형준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고시바 마사토시는 세계 최고의 뉴트리노 검출기 중 하나인 일본의 가미오칸데 실험을 시작한 과학자다. 이 책은 이 검출기로 초신성에서 나온 뉴트리노를 검출해서 200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고시바 마사토시의 자서전이다. 고시바 자신의 실험을 비롯한 최근의 뉴트리노 실험을 둘러싼 얘기가 잔뜩 들어있다.

도쓰카 요지의 <과학의 척도>(송태욱 옮김. 꾸리에 펴냄)

가미오칸데를 계승한 슈퍼 가미오칸데 실험을 이끈 도쓰카 요지는 고시바 마사토시의 수제자다. 슈퍼 가미오칸데가 뉴트리노가 질량이 있음을 확증했으므로, 도쓰카도 노벨상 수상이 확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08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이 책은 도쓰카가 죽기 직전까지 운영하던 블로그에 쓴 글인데 사후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역시 뉴트리노에 대한 알기 쉬운 기초 설명과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들어있다.

시간 여행은 가능하다!


▲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박상준 :
빛보다 빠른 입자 얘기가 나오니까 곧바로 나온 얘기가 시간 여행 얘기에요. 어떤가요? 빛보다 빠른 입자가 확인이 되면, 정말로 시간 여행이 가능해질까요? 이건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이래로 과학 소설(SF)의 고전적인 테마인데요. 사람들도 제일 궁금해 할 대목일 거예요.

이강영 : 사실 상대성 이론을 염두에 두면, 지금도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가능합니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다시 말하면 나의 시간을 늦추는 거예요. 세상이 50년이 지날 때, 나의 시간은 25년만 지난다면 나는 25년 미래에 가 있는 셈이니까요. 상대성 이론에서는 빛의 속도에 다가갈수록 즉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면 시간 지연 현상이 발생해요.

또 중력이 세면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그러니까 빠른 속도로 여행을 가거나 (빛의 속도라면 그 효과가 더 확실하겠지요!) 중력이 아주 센 곳을 다녀오면 나의 시간이 느려져서 결과적으로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도 확인을 할 수 있어요.

이명현 : 맞아요. 비행기를 타면 어떨까요? 한편으로는 속도가 빠르니까 시간이 느려질 거예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보다 중력이 약하니까 시간이 빨라질 겁니다. 1970년대에 비행기 안에서 시계를 놓고 지상의 시계와 비교를 해봤더니, 이 두 가지 효과가 상쇄가 되어도 시계가 조금 느려지는 현상을 확인했어요.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우주 정거장 미르에서도 마찬가지 효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미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도니까 시간이 느려질 거예요. 반면에 중력이 약하니까 시간이 빨라집니다. 이 두 가지 효과가 상쇄가 되어서 시간이 조금 느려져요. 그래서 가장 우주 비행을 많이 한 미르의 어느 우주인의 경우 지상보다 약 5분의 1초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을 한 것으로 계산되었습니다. 5분의 1초면 대단한 것 아닌가요? (웃음)

이종필 : 중력의 효과는 2010년에 정말로 단순한 실험으로 확인이 되었어요. 30센티미터 정도의 사다리를 놓고서, 사다리 밑과 사다리 위에 초정밀 시계를 놓아뒀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고작 30센티미터의 중력 차이 때문에 사다리 위에 있는 시계가 사다리 밑에 있는 시계보다 빨라진 거예요. 무려 79년간 900억 분의 1초 정도요. (웃음)

박상준 : 상대성 이론 입증 실험의 가장 단순명쾌한 종결자네요. (웃음) 그럼,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려면 KTX나 총알택시를 많이 타고 다녀야겠군요. 지상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면 시간 지연 현상의 효과를 볼 테니까요. (웃음)

이강영 :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주 공간의 인공위성에서는 시간이 지상과는 다릅니다. 그럼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아서 기능하는 지상의 GPS, 휴대전화의 시간은 왜 정확할까요? 바로 상대성 이론의 효과를 보정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일상생활 깊숙이 상대성 이론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종필 : 그러니까, 상대성 이론이 틀렸다면 새로운 이론에 따라서 GPS의 시간을 다 바꿔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 바뀐 GPS의 시간을 염두에 두고 새롭게 실험을 해야죠.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상대성 이론의 틀을 깨는 실험 결과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어요.

이강영 : 뉴트리노만 상대성 이론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건데….

이종필 : 그러니까 많은 과학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론과 실험 양쪽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업적을 내는 세른의 존 엘리스 같은 물리학자도 '다른 입자들은 다 상대성 이론을 따르는데 왜 뉴트리노만 그렇지 않느냐' 하면서 이번 실험 결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요.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 <높은 성의 사내>(필립 딕 지음, 남명성 옮김, 폴라북스 펴냄). ⓒ폴라북스
박상준 :
다시 시간 여행으로 돌아가죠. (웃음)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가 확인이 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가능할까요? 애초의 상대성 이론, 그러니까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틀에서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했잖아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강영 : 글쎄요. 저는 설사 빛보다 빠른 물질이 확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에요. 예를 들어 볼게요.

한계 속도가 유한하면 시간과 공간이 얽히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학교 수업이 9시에 시작을 해요. 그리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학교까지 가는 데는 1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8시 20분에 일어났어요. 그럼 나는 지각을 한 걸까요, 안 한 걸까요? '아직 수업이 시작하려면 40분이나 남았으니까 지각이 아니야' 하고 외칠 수도 있겠지요. (웃음)

하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이 걸리니까, 나는 이미 지각을 한 겁니다. 즉, 집에서 8시라는 시공간은 학교에서 9시라는 시공간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죠. 여기, 철수와 영희가 있어요. 그런데 철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집에서 학교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어요. 반면에 영희는 1시간이 걸리죠.

그러면 철수는 영희보다 30분 먼저 도착해서 영희의 책상을 파란색으로 칠한다든가 혹은 사물함의 교과서를 숨겨 놓는다든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요. 뒤늦게 9시에 학교에 도착한 영희의 반응은 어떨까요? 마치 철수가 영희의 과거로 와서 과거를 바꿔놓았다고 느끼게 될 겁니다.

즉, 이런 식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내가 나의 과거 시간으로 가는 건, 초광속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요.

이종필 : 맞아요. 설사 뉴트리노가 빛의 속도보다 빨리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유한한 속도를 가지니까요. 여기 1시간에 100킬로미터를 가는 KTX가 있어요. 그 KTX로는 1시간 안에 대전까지밖에 못 갑니다. 1시간 안에는 절대로 대구, 부산을 갈 수 없어요. 그런데 1시간에 200킬로미터를 가는 KTX가 등장했어요.

그러면 1시간에 100킬로미터만 가는 KTX만 있는 세상에 혼란이 생길 거예요. 1시간에 최대한 멀리갈 수 있는 곳이 대전이었는데, 200킬로미터를 가는 KTX를 탄 A가 "나는 이미 대구에 다녀왔다"고 말하면 어떻겠어요? 미래(대구)가 과거가 되어버린 셈이니, 인과 관계에 혼란이 생기겠지요.

빛의 속도보다 빠른 뉴트리노가 확인이 된다면,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모든 시공간의 틀을 짜놓은 세상에서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다시 뉴트리노의 속도를 기준으로 시공간의 틀을 짜놓으면 다시 새로운 과거-현재-미래의 인과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어차피 빛이나 뉴트리노나 속도가 유한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합니다. (웃음)

이명현 : 이런 설명을 염두에 두면, SF 작가들이 시간 여행을 다루는 게 쉽지가 않겠군요. (웃음)

박상준 : 그래서인지 SF 작가들도 저렇게 공간을 그대로 두고 시간을 과거로 미래로 이동하는 식의 설정은 피하는 것 같아요. 대신에 아예 시공간 자체를 이동하는 설정을 즐겨 사용합니다. 현대 물리학의 '평행 우주' 이론이 있잖아요. 그걸 염두에 둔 것이지요. 즉, 다른 세계로 옮겨갔는데 거기가 바로 나의 과거 혹은 미래였다, 이런 식으로요.

이강영 : 그런 식의 설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실제로 평행 우주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려는 최근의 이론인 '초끈 이론' 등에서는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는 평행한 또 다른 우주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거든요. 그리고 그 다른 우주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 우주와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종필 : 만약에 그것을 넘나드는 통로를 찾는다면, 일종의 시간 여행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겠지요. 단,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시간 여행이 아니라 또 다른 우주로의 여행이지만요. 당연히 두 우주 사이의 인과 관계가 상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어떤 소설이 있나요?

박상준 : 평행 우주, 혹은 대체 역사라고도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에 복거일이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펴냄)라는 소설을 내서 주류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어요. 한반도가 1945년에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계속 식민지로 남아 있다는 가상의 역사를 쓴 작품인데, 영화 <2009 : 로스트 메모리즈>의 원작이기도 하지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이기고 미국이 졌다는 가정을 배경으로 쓴 소설인 <높은 성의 사내>(남명성 옮김, 폴라북스 펴냄)도 있습니다. <블레이드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으로 유명한 SF 작가 필립 딕의 장편이지요. 평행 우주, 대체 역사는 SF라기보다는 역사와 사회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일종의 사회 소설 기법으로 꽤 인기가 있습니다.

결국은 아인슈타인이 옳다?

이명현 : 자, 결론을 내릴까요?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 이렇게 확인이 될까요?

이강영 : 수다를 떠는 중에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것 같아요. 섣부르게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에요. 다만 이번에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이 일을 계기로 과학자 공동체로서는 여러 가지 자극을 받을 거예요. 뉴트리노 검출 실험도 훨씬 더 엄밀해질 테고, 이참에 이론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까요.

이종필 : 결과적으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실험 결과에 대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반응은 그 자체로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연구 소재가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네요. (웃음)

박상준 :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물리학의 법칙대로라면 초광속 우주선이나 타임머신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입니다. SF 작가에겐 기운 빠지는 일이죠. 계속 허구로만 남을 얘기니까요. 그래서 이번 초광속 뉴트리노 소식이 무척 반가웠을 겁니다. 물론 엄밀한 검증을 거치는 과정을 지켜보겠지만, 속으로는 '제발 사실로 판명되어라'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인류의 새 역사가 열릴지도 모르는 순간을 직접 겪는 것 아니겠습니까?

함께 읽기 2

리처드 코트의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 여행>(박명구 옮김, 한승 펴냄)


▲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 여행>(리처드 코트 지음, 박명구 옮김, 한승 펴냄). ⓒ한승

이 책의 매력은 천체물리학자 리처드 고트가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시간 여행이 가능한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실증적으로 설명하는데 있다. 먼저 시간 여행을 꿈꿔온 여러 SF 속에 나타난 다양한 시간 여행 패러다임이 갖는 상상력에 대해서 살펴보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 먼저 상대적으로 개념이 명확한 미래로의 시간 여행에 대해서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훨씬 더 논란의 여지가 있고 혼란스러운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대해서는 명쾌함과 어려움을 동시에 지적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후 시간 여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제시되고 더 논쟁적인 주제들이 소개되면서 이 책은 마감된다.

물론 현대 물리학의 개념을 바탕으로 시간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 여행에 대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대중 과학 책을 한 권 선택한다면 이 책이 최선의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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