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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의 위력, 문명의 동력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거장의 귀환

아, 존 윌리엄스!

영화 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링컨 센터 애버리 피셔 홀 무대에 오르자 객석은 순간 조용해지다 곧장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1932년생이니 이제 80이 다 되었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그가 지휘봉을 잡자 스크린에는 미국 영화사가 추억의 파로나마처럼 펼쳐진다. 오드리 헵번, 험프리 보가드,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오슨 웰스, 로버트 레드포드, 그레이스 켈리, 진 시몬스가 친근한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영화 <조스>, <슈퍼맨>, <스타워즈>, ,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등에서 보인 그의 실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60년 음악 생활이다. 이윽고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그가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것은 역시 <인디애나 존스>. <스타워즈>에서는 풋내기로 나왔던 해리슨 포드가 <인디애나 존스>에서는 노장 숀 코널리와 함께 무르익은 연기를 선사한다.

어느 사이에 평원이 드넓게 펼쳐지는가 하면, 돌연 우주의 빛이 태초의 순간처럼 비치고 격투와 사랑이 어우러진다. 존 윌리엄스를 보면, 서양 고전 음악의 정상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알게 된다. 그의 전공이 본래 영화 음악이 아니라 고전 음악이고, 음악과 이미지가 하나가 되는 절묘한 작곡과 지휘가 영화 음악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거장의 힘은 그렇게 시대를 바꾼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말년 작

책에도 거장의 귀환이 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 체제> 제4권이 드디어 나았다. "중도파 자유주의의 승리 1789-1914(Centrist Liberalism Triumphant 1789-1914)"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그의 말년 작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 사이에 벌어진 세계 체제 변동을 주목하고 있다.


▲ <근대 세계 체제 1>(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나종일 외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자본주의가 봉건적 구체제(Ancien Regime)를 허물고 부르주아 체제를 건설하는데 일정하게 성공했지만, 자유의 확대와 평등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 앞에서 서구 근대사는 격동한다. 이러면서 서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 운동의 대결이 첨예해지면서 자유주의 국가의 통제 체제가 다져진다. 자유주의는 근대 체제의 특징이지만 그와 함께 자본주의 이행 과정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부르주아에게 자유를, 노동자들에게 족쇄를"이라는 정치구호가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가 <근대 세계 체제> 제1권을 냈던 해가 1974년이었고, 이 시기 미국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달러 체제 위기와 베트남 전쟁 패배로 인한 동요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30년 이상이 더 지난 2011년에 그는 자유주의 체제의 세계적 고리가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으로 마쳐지는 이 4권은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부르주아의 승리로 기록된 프랑스 혁명,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성립으로 기억되는 러시아 혁명은 모두 자유주의의 건설과 대치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전 세계적 부르주와 체제의 동요와 전 세계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의 등장을 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읽게 되는 그의 책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게 될지 한국 지식인 사회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자본>

프레드릭 제임슨의 <자본 제1권 읽기(Representing Capital: A Reading of Volume One)> 역시 흥미롭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의미는 각 시대마다 계속 내용이 달라지고 풍부해지고 있다면서, 오늘의 시점에서 이 책은 "실업" 문제로 읽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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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마르크스주의>(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제임슨은 자본론에 대한 이해가 <경제학-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가 발견되면서 마르크스의 인간학이 논의가 되었다면, 이후 마르크스의 <자본> 이전의 기본 원고인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전3권, 김호균 옮김, 그린비 펴냄)이 주목되면서 정치경제학의 토대 구성이 논란의 중심이 된 역사를 복기한다. 이와 함께 그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더는 인간에게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시스템이 되었다고 밝힌다. 이 결과가 실업률의 증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본의 권력 집중과 노동에 대한 진압을 전략으로 구사하지만, 결국 이것은 실업률의 무한대 증가로 전개되어 자기 파괴적 상태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드러남으로써 자본주의의 지난 시기 오래 끌어오던 생명력은 이로써 정리된다는 그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자기 변형의 능력과 생존력에 대해 일격을 가한다.

에릭 홉스봄의 역사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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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의 시대>(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김동택 해제, 한길사 펴냄). ⓒ한길사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지난 50년 동안 그가 써온 글 가운데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묶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How to Change the World: Reflections on Marx and Marxism)>를 펴냈다. 표지에 러시아 혁명과 체 게바라의 초상이 실려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지나간 혁명의 시대를 성찰하고 새로운 혁명을 꿈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홉스봄은 마르크스가 지난 시기의 혁명에서 외쳐진 내용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마르크스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가 그가 그토록 절박하게 주장하고 분석했던 시대상을 복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마르크스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여기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마르크스 이해가 성숙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고, 근대사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과 그 사상적 가치를 새롭게 점검하는 일이 더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작 일리치 루빈의 경제 사상사

이런 점에서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새로운 장정으로 나온 아이작 일리치 루빈의 <경제 사상사(A History of Economic Thought)>는 필히 다시 번역되어 많이 읽혀야 할 책이다.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경제 사상사의 흐름을 명료하게 정리해낸 그는 러시아 혁명의 참가자였고, 이후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지식인이다.

루빈은 마르크스 이해에 있어서 유물론적 이해라는 공식이 인간관계를 파악하려는 마르크스의 본래 의도를 왜곡시켰다면서, 물질적 관계에 은폐되어 있는 인간의 권력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 마르크스 분석의 최대 공적이라고 주목했다. 그의 <경제 사상사>는 중상주의가 자본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데이비드 리카도 이후 이른바 고전 경제학의 쇠락이 어떻게 이루어져갔는지를 설명해나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논쟁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논쟁에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 경제사상사의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융 그리고 지중해의 역사

이 밖에도 두 가지 정도를 더 소개하자면,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를 사비나 스필레인이라는 여성의 관계를 둘러싸고 써나간 논픽션과 픽션을 융합한 존 커의 <위험한 방법론(A Dangerous Method)>과 지중해 역사의 대가 데이비드 아불라피아(David Abulafia)의 <거대한 바다(The Great Sea)>가 있다.

존 커의 책은 프로이트와 융의 우정과 결별, 그리고 한 여인을 둘러싼 로맨스와 질투, 그리고 이 와중에서 서로에게 미친 정신 분석학 방법론의 변화를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임상 심리의 훈련을 쌓아온 심리학자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기록이 뛰어나다.

데이비드 아불라피아의 저작은 기원전 2만 년 전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지중해를 둘러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중해사가라는 위상에 걸맞게 그의 책은 문명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는 이들이라면 800쪽에 달하는 두께가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긴장과 대결, 그리고 사회적 전투를 치루는 시기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더더군다나 거장의 역작들은 지나칠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다진 이 지적 성취를 즐겁게 섭취해나가는 "책 읽는 사회"가 되어갈 때 우리의 미래는 보다 풍부한 가치를 지닌 내용을 누리게 될 것이다.

거장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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