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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과 허세로 뒤덮인 한미 FTA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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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과 허세로 뒤덮인 한미 FTA 논쟁

[박동천 칼럼] 찬성파·반대파에게 지금 필요한 건 상상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갑자기 대한민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풍요로워질까?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 10년쯤 안에 대한민국이 "멕시코 꼴"이 (멕시코 국민에게 죄송한 표현이지만 문맥상 그냥 쓴다) 될까? 둘 다 웃기는 소리다.

미국의 경우, 찬성파는 이걸로 미국에 일자리가 28만 개 생긴다고 주장했고, 비판하는 의견 가운데는 일자리 21만 개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느 쪽이 맞을까를 묻기 전에, 둘 다 틀리지 않을지 의심해 봐야 한다. 가령 5년, 10년, 15년 후에 일자리는 지금에 비해 늘어난 것도 있고 줄어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 2012년에 발효한 자유무역협정이 얼마나 인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그때 가 봐야 알 일인데다가, 그때 가 봐도 논쟁의 주제이지 일률적인 답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경제학자 로드니 루디머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백만 가지 쯤 된다. 그 모든 실타래를 다 풀어내기는 어렵다. (…) 수치를 꼬집어 밝힐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최대-최소라는 기대 범위를 말해야 하고, 그 범위도 무척 넓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자유 무역 응원단과 경고단에게 끼얹는 찬물) 이것이 정확한 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 무역에 관해서는 찬물이 아니라 얼음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상득-이명박 형제, 김종훈, 정동영, 이정희, 이해영 등은 이 일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일의 결과를 손바닥 보듯이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일의 결과를 마치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 큰소리를 늘어놓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야말로 맘속이 의심으로 꽉 차 있으면서 혹시 그걸 남들에게 들킬까봐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선한 편으로든 악한 편으로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해본 다음에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런 데서 점쟁이 흉내 못 내는 걸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걸 가지고 몸싸움을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를 지금 분명히 계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장차 하기 나름"이라는 변수가 "현시점의 선택"이라는 변수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미리 모든 구멍을 다 막아 대비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국민 경제 차원에서 사례별 대응 능력이 커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내부에서 이견들을 조율하여 통합된 의견을 생성해 낼 수 있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런 풍토의 정반대다. 물론 원인은 이명박과 김종훈의 머릿속에 이견 조율이나 의견 통합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할 만큼 했다"는 소리는 "설득하는 시늉 좀 내보다가 그조차 금세 지친다"는 얘기일 뿐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에 이 협정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남에게, 그것도 반대하는 남에게,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면 참으로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를 현재 모습 그대로 당장 비준한다고 하면 반대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지금 정동영과 민주노동당이 주도하는 저 방식의 반대가 유일한 방법일까? 바람직한지는 접어두고, 효과적이기라도 할까? "울고 싶으니 뺨 좀 빨리 때려 달라"고 하면서, "내가 울면 너한테 큰일 벌어진다"는 협박인지 어리광인지를 무기랍시고 등 뒤에 숨기는 척 자세를 취하고는, 동시에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까지 만천하에 광고하는 사람들이, 이로써 얻고자 하는 목표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정황들을 살피면, 찬반 양쪽 모두 지금 한미 FTA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잿밥을 둘러싸고 막장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10월 30일에 하려다 무산되었던 '끝장 토론'만 해도 그때부터 오늘까지 며칠간의 시간 동안 무의미한 대치로 일관하기보다는 논쟁으로 대결을 하는 편이 생산적이지 않았겠는가? "얘기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세상일에 모 아니면 도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토론이나 합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그저 "힘 센 놈이 장땡"이라는 자포자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ISD(S) 관련 토론회에서 남경필 위원장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야당 의원들이 불참으로 토론회가 무산되자 토론회장을 나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한미 FTA에 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무한히 열려 있다. 대단한 상상력도 아니고 아주 간단한 상상력만으로도 수많은 대안들을 고안해 낼 수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서,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야만에 정신을 내팽개치지만 않으면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 가장 커다란 문제로 간주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조항에 집중해서 아주 원시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2011년 11월 3일 <프레시안>에 실린 남희섭의 글(☞관련 기사 : "2006년 ISD 결사 반대한 홍준표가 옳았다!")을 보면, "투자자-국가 소송"이라는 용어가 왜 틀렸는지 알 수 있다. 이는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이라고 불러야 하며, 나아가 영문 약어로도 'ISDS'라고 써야 맞다.)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조항은 가령 한국인(미국인)이 투자한 기업이 미국(한국)에서 사업을 벌이는데, 자유무역협정을 봐서 기대했던 이익을 미국(한국)의 법제 때문에 수확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이럴 때 그 한국인(미국인) 투자자가 미국(한국)의 법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국(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요청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 한국 사회를 요동시키는 쟁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102조와 관련된 쟁점이다. 이 조문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세 가지다. a) 협정 내용 중 미국의 연방법과 충돌하는 대목은 무효고, 이 협정 때문에 미국 연방법을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b) 미국의 어떤 주법도 이 협정 때문에, 연방정부가 그렇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c) 미국 연방정부 이외에는 누구도 이 협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미국 각급 정부의 행위(또는 부작위)에 대해 쟁송할 수 없다.

상세한 논의는 생략하고 큰 그림만 그린다. 이것은 미국의 국내법이다. 즉, 한국인 투자자가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각급 정부를 미국 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102조 c에 의해서 각하될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피해를 입었다는 근거를 미국 내 다른 법이나 국제상규에 걸어서 제소한다면 사안에 따라, 그리고 판사에 따라 미국 내 법정에서도 소송이 성립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지만 그 투자자가 ISDS 규정에 따라서 국제 중재 재판소에 미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는 102조 c의 관할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102조 c는 FTA의 ISDS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협정을 근거로 해서 미국 정부와 다투려면 미국 내 법정에서 하지 말고 국제 중재로 가라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조 a와 b는 협정 때문에 미국 법을 자동적으로 고쳐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가령 일리노이 주에서 한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데 기존의 주법이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어서 고치는 게 투자 유치를 위해 낫겠다고 판단한다면 일리노이 주가 스스로 고치는 경우는 충분히 가능하다.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주법의 내용을 모른 상태에서 투자했다가 나중에 알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ISDS를 걸어서 국제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자동적으로 고칠 필요가 없다 또는 자동적으로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고 미국 국내법이 정한 배경에는 미국 법 중에 자유 거래의 원리에 특별히 어긋나는 게 별로 없을 것이고, 설사 한국인 투자자의 시각에서는 부당하게 비치는 것이 있더라도 국제 중재 재판소에서 반드시 진다고 볼 수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국제 중재로 갔을 때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면 관련 법의 제정 주체들더러 (즉, 각급 의회더러) 미리 알아서 고치라는 의미도 함축된다.

둘째, 국제 중재 재판소는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까? 대표적으로 세계은행 산하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생각해 보자. 시장 경제, 자유 거래라는 발상이 시작은 유럽에서 나왔지만 오늘날 미국이 이념을 주도한다는 점, 이 센터가 미국에 있고 영어가 주도적인 언어라는 점, 여기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미국인이 대다수라는 점 등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국에 불리한 판정이 나올 리는 없다고 봐도 안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논증하려면 장황한 논의가 필요하고, 아무리 장황하게 논의를 해도 어차피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논증은 생략한다.

내 생각으로 한국 투자자가 이 센터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될 가능성은 다른 곳에 있다. 법이 무엇인가, 공정성이 무엇인가 등에 관해서 한국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국제적인 법리나 상규가 그와 달라서 손해를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전망은 결국 한국의 사법 제도 및 법치주의가 국제 표준에 얼마나 근접해 있다고 봐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법학자 윌리엄 다지에 따르면(☞바로 보기 : ISDS between Developed Countries), 미국이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쌍무투자조약(BIT)을 맺었을 때, 미국에서 상대국으로 투자가 이뤄진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ISDS가 필요했고, 실제 중재 요청의 주체도 미국인 투자자가 훨씬 많았다. 이와 같은 경우에 국제 중재가 보기에 따라 미국에게 유리하게 내려진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캐나다 인 투자자가 미국을 상대로 중재를 요청하는 빈도도 높아졌고, 중재가 일방적으로 미국인이나 미국 정부에게 유리하게만 이뤄지지도 않은 것이다.

애당초 캐나다처럼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사법 체계를 갖추고 있는 나라에서라면 미국인 투자자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캐나다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어이없는 대접을 받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더구나 이처럼 현지 국내 법정에서 먼저 구제책을 찾았다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 또는 국제 재판을 시도할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 이렇게 보면, 발전된 국가 사이에는 ISDS 조항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다지의 결론이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FTA에서는 그래서 그것이 빠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보와 고려들에 더해 이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한국의 대응 전략을 탐색해보자. 크게 봐서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국의 이행법과 동일한 수준으로 한국의 이행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FTA에 ISDS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국인 투자자가 어차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제소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므로 "협정을 근거로 해서 한국의 각급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오직 한국 중앙 정부만이 제기할 수 있다"고 국내 이행법에 정하더라도, 미국인 투자자에게 특별히 불리할 소지는 사실상 전무하다. 우리 국회에서 국내법을 제정한다는데, 미국이 심술을 부릴 여지도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그리고 "협정 때문에 한국의 국내법이 자동적으로 효력을 상실하지는 않는다"거나 "협정 때문에 한국 국내법을 반드시 고쳐야 할 필요는 없다"는 조항 역시 국내 이행법에 넣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 현행 법규 중에, 사안에 따라, 국제 표준과 달라서 만약 국제 중재로 가게 되면 십중팔구 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법규가 있다면 국회나 지방의회가 주체적으로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여기에는 물론 매우 미세한 분별력이 필수적이지만, 국제 표준이 무슨 도깨비라도 되는 듯 미리 겁만 집어먹지 않으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국회가 비준을 미루고, 미국 측과 다시 만나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랬듯이 ISDS 조항을 협정에서 빼자고 설득하는 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 관료들로서야 개인적으로 짜증을 낼지도 모르지만, 주권 국가로서 협정 비준에 앞서 따질 만큼 따지는 것은 국제 표준으로 확립되어 있는 권리다. 김종훈 대신에 누가 재협상을 맡든지, 국회의 명으로 재협상에 나섰다고 말하면, 통상 외교관으로서 개인적 위신도 올라갈 일만 있지 깎일 일은 없다.

ISDS 조항이 빠진다는 것은 투자자가 현지 법규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느낄 때, 국제 중재로 가기 전에 현지 국내 법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요구가 상대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양국 간 투자의 흐름이 얼마나 쌍방향일지 아니면 일방적일지, 그리고 한국(미국)의 사법 체계에 대해 미국인들(한국인들)이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양국 간 투자의 추이와 장래 예상치, 그리고 양국 간 사법 체계에 관한 비교 조사가 필요하다. 국회가 주도해서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조사위원회부터 꾸려 볼 일이다. 4년 전에 그런 위원회가 있었다면 지금쯤 결과가 나오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전혀 늦지는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데 비하면, 그리고 불확실성 때문에 몇 천만 명의 인구가 느껴야 하는 불안감에 비하면, 조사에 소요될 1~2년 정도의 시간은 비용이 아니라 축복에 가깝다.

지금 한미 FTA 때문에 난장판 국회가 재연될지도 모르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 이명박의 독주를 한나라당이 전혀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부에도, 내가 보기에는, 이명박의 독주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다수다. 이들이 그럼에도 여전히 패거리 행태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찬성 아니면 반대 말고 다른 대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 FTA 자체는 국회에서 통과를 시키더라도, 통과시키는 방법과 시점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협정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비준이 이뤄져야 자신의 믿음이 실제로 증명될 확률도 크게 높아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을 비롯한 육탄저지파도 이 일을 힘에 의존해서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들에게 손해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국회의 압도적인 다수는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육탄 방어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박근혜의 존재감만을 높여줄 뿐이다.

대치가 계속되다가, 친박 의원들까지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고 앞장서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경찰력을 동원한 "날치기"가 자행되고 말 것이다. 그것을 빌미로 4월 총선에서 설사 압승을 거둔다 할지라도, 이미 비준된 FTA를 개정한다거나 파기하려면 지금 대안을 찾을 때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대미 관계는 접어두고, 설령 한나라당이 의석 80명짜리 소수당으로 전락하더라도, 여당이 추진하는 FTA 개정 또는 파기에 육탄으로 저지하겠다고 나서면 경찰력을 동원해서 "날치기"를 감행할 것인가?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제 세력은 연합 정치와 공동 정부를 모색한다는 입장을 적어도 말로는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에 집권 세력이 되기를 꿈꾼다는 말이다. 집권 세력은 야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에 있다. 야당 신세라면 다소 무책임한 반대라도 어느 정도 허용될 수가 있지만, 집권 세력에게는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해서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 반드시 수반된다.

그러므로 지금이 이처럼 책임감 있는 수권 능력을 스스로 계발하고 또 발휘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다.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불평은 단순한 어리광에 불과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명박의 독주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선봉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당장 날치기 통과"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이라는 근거 없는 이분법이 도사리고 있다.

그 두 개의 막다른 골목 말고도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대안이, 위에 적은 대로, 적어도 두 개는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달하고, 동시에 국민에게 널리 알린다면, 성숙한 한국 국회의 상을 정립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는 선례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선도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면, 내년 선거에서 주권적 위임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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