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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이 떨어져야 한나라당이 산다" 이유는?

[박동천 칼럼] 한나라당의 몰골에서 보는 진보의 미래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도 나라 전체가 토건업자들의 막장 투기판이 되지 않을 길은 많이 있었다. 더도 말고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만 제정신을 차리고 대통령의 무모한 독주에 제동을 걸었더라면, 나라 전체는 접어두고 당장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얘기는 이미 2년 4개월 전에 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관련 기사 : "'중증 벽창호' 대통령 앞날, 한나라 쇄신파에 달렸다")

시야를 좁혀서 주민 투표 건만 보자. 한나라당에게는 적어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애당초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이 추진한 "전면 무상 급식"과 전 서울 시장 오세훈이 원했다는 "선별적 무상 급식"의 차이는 서울시 예산에서 659억 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연간 20조 원이 넘는 예산 총액으로 나누면 0.3퍼센트의 비중이다. 이 정도의 문제 때문에 오세훈은 주민 투표를 감행했다.

오세훈 입장에서는 빠르면 2012년, 늦어도 2017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계산이 있었을지 모른다. 주민 투표로 민주 진보 연합의 기를 꺾는다면 최선이고, 설사 뜻을 이루지 못해도 강성 보수의 아이콘으로서 카리스마를 쌓는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런 개인적인 모험주의에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대통령의 일방 통행 때문에 당이 비난의 표적이 되는데, 서울 시장이 타협해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당의 이미지도 덩달아 개선되었을 것이다. 당내에서 이런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모두 묵살해버리고, 한나라당은 오세훈의 무지막지한 리더십을 마냥 따라가고 말았다.

혹자는 내 얘기가 홍준표 같은 사람에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시장 직을 걸지는 말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지 않은가? 하지만 오세훈은 시장 직을 결국 걸었고, 그렇게 이판사판 전쟁판으로 몰고 가자 홍준표 이하 한나라당은 모두 돌격대로 변신해서 충성을 바쳤다. 순전히 파당적인 사행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노선의 선봉에 선 것이다.

간단히 가정해 보자. 오세훈이 시장 직을 걸었다손 치더라도 한나라당이 열심히 나서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즉, 투표 거부든 독려든 별로 열을 띠지 않는 가운데 8월 24일의 투표율이 15퍼센트 정도로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오세훈이야 해석하기에 따라서 지금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이 그 때문에 재앙을 겪어야 할 까닭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오세훈의 개인적인 모험이었다고 정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기회는 주민 투표 결과를 해석할 때에 찾아 왔었다. 만약 일시적인 자기위안에 그치는 의미였다면 "사실상 승리"라는 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주민 투표가 무산되자마자, 곽노현에게 검찰이 칼날을 겨누고 여론 조작까지 시도하는데, 한나라당은 제지는커녕 도리어 잘됐다는 식으로 다시 여론전의 선봉에 섰다. 게다가 서울 시청에서 659억 원의 급식 예산 집행을 거부하는데도, 시의회의 정당성을 묵살하고 오세훈을 대리한 시청의 관료 집단을 일방적으로 편들었다.

집권당으로서 조금이라도 공적인 책임감이 있었다면, 아니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청할 때의 면목만이라도 고려했더라면, 주민 투표의 결과는 시교육청의 승리로 해석했어야 했다. 시청 관료들이 시의회를 무시할 때, 국회의원이라면 의회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정도는 천명했어야 마땅했다.

검찰이 무리한 혐의를 걸어 민선 교육감을 기소할 때, 그리고 이미 언론으로서 기초적인 양식마저 포기한 선동 기관들이 곽노현의 인격에 대고 집단 따돌림을 시도할 때, 공당이라면 피고의 변론권을 기계적으로 옹호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더라면 서울 시장 보궐 선거의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의 운명이 좌우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 시장 후보. ⓒ프레시안
세 번째 기회는 나경원의 선거 전략과 관련된다. 박원순이라는 존재는 나경원에게 자체로 버거운 상대였다. 배경에는 오세훈의 무모한 모험주의, 즉 695억 원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거비용만 500억 원 가까이 허비하는 어불성설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으로서도 패배를 어느 정도 각오했던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거란 뚜껑을 열어볼 때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표를 얻고자 노력한다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박원순의 병역이나 학력에 대고 시비를 건다는 게, "최선의 노력"인가? 홍준표는 스스로 앞장서서 40여 년전 "공무원과 공모한 혐의"를 들먹이고 나왔다. 스탠퍼드 대학 경력을 문제 삼던 강용석은 스탠퍼드 대학이 해명하자 "그들의 입장이지 국내의 입장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캠프 운동원 또는 위신 회복을 노리는 강용석이 다급한 마음에 설령 그런 헛소리를 입에 담는다고 할지라도, 국회 과반수 의석을 거느린 집권당의 대표라면 그 역풍을 계산할 줄 알았어야 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앞날을 내다보기는커녕, 적중률 제로에 가까운 여론 조사에서 네거티브의 효과가 나타나는 듯하자마자, 한나라당은 환각에다가 당의 명운을 걸어버리고 말았다. 케케묵은 색깔론을 다시 꺼내 박원순을 "평양 시장", 조국을 "패륜", 급기야 이외수와 안철수까지 "좌빨"이라고 불러봤지만, 자신들이 시대에 역행하는 집단임을 증명하는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 점쟁이 흉내는 내지 않겠다. 단,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출신이 "나경원 후보가 지는 것이 길게 보면 한나라당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사는 길"이라고 한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하고 싶다.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모르겠는가? 간단하게 이명박의 독주를 168명의 의원들이 막아내면 그래도 공멸은 면할 것이다. 이미 2년 4개월 전에 말했듯이, 그 중에 20여 명만 국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대통령의 독주는 불가능한 일이다.

각론이 필요한가?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가 있고, 또 이어서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있다. 한미 FTA에 관해서는 미국처럼 국내법 우선 조항을 포함한 '한미 FTA 이행을 위한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것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현시점에서 가장 깔끔한 해법이다. 예산 심의에서는 패거리식 사고에 매몰되어 행정부의 방패막이를 자임하지 말고, 무리한 사업이나 엉터리 회계를 적극적으로 캐내는 모습만을 보여도 잃어버린 신뢰를 상당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마지막 기회다.

한나라당이 이 기회를 잡는다면 한국 정치를 위해서 큰 기여가 된다. 만약 한나라당이 최근 석 달 동안 그랬듯이 눈여겨볼 가치조차 없는 저질 정당으로 영구히 전락해버린다면, 내년 선거 또한 하나마나로 전락한다. "반MB", "반한나라당"이라는 구호만 가지고 집권이 가능하게 된다면, 민주 진보 진영에서도 정책적 응집력은 생성되기 어렵고 권력을 서로 사유화하려는 자리다툼이 횡행할 위험이 높다. 한나라당이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흔적만이라도 유지해야, 민주 진보 진영도 내년의 선거에서 공공성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혼신의 정열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물론 바로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사악한 전략을 세울 이유가 생긴다. 즉, 내년 선거를 이번 서울 시장 선거보다 더한 진흙탕으로 치르는 것이다. 요행이 이기면 다행이고, 지더라도 상대의 체질까지 도매로 오염시키는 효과는 있게 된다. 가뜩이나 통합하기 어려운 민주 진보 진영에게 선거에서 오히려 손쉬운 승리를 안겨준다면, 집권 후에 지리멸렬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리멸렬한 정권은 사법 개혁, 재벌 개혁, 언론 개혁, 사학 개혁, 관료 개혁, 병무 개혁, 세무 개혁, 그 어느 것도 초점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것이다. 이런 영역들에서 기득권이 무사히 유지되기만 한다면, 특히 노무현 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청와대를 일시적으로 내준들 별 문제는 아니다. 국회는 4년 후, 청와대는 5년 후에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다.

민주 진보 진영은 이래저래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 서울 시장 선거의 승패가 어떻게 갈리든, 한나라당이 선거전까지 국회 다수당의 의무를 조금만 되새긴다면, 민주 진보 세력은 외형적/물리적 통합은 물론이고 정책적/화학적 통합이라는 지난한 과제를 풀어내야 하는 처지로 몰린다. 이명박 정권이 워낙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박근혜로서는 이명박과 차별화하는 것만으로도 표를 구할 수 있는 여지가 넓게 열려 있다. 일례로 박근혜의 "생애 맞춤형 복지"보다 민주 진보 진영의 "보편적 복지"가 왜 나은지도 유권자에게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사악한 전략을 취한다면, 검찰과 언론과 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 기관을 총동원해서 관권 선거를 치르기로 대놓고 나선다면, 한미 FTA와 예산안을 날치기로 밀어붙여서 난장판 국회를 유도한다면, 민주 진보 진영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폭주와 날치기 덕택으로 혹여 내년 선거에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분노를 쉽게 동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노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민주 진보 세력은 집권하면 무엇을 개선할지, 집권을 위해 어떻게 통합할지를 가지고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사법, 재벌, 언론, 사학, 병무, 세무 등,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을 민주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해 1987년에 이뤄내지 못했던 근본적인 개혁의 실마리를 열어야 한다.

이명박이 망친 뒤치다꺼리와 동시에 이런 개혁들을 추진해야 한다. 단번에 모든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에 개혁의 초점을 시의적으로 적확하게 포착해야 하고, 이를 위해 종파주의적 불신을 넘어서는 내부 의사 결정 절차를 또한 확립해야 한다. 이와 같은 화학적 통합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인명진의 말은 민주 진보 진영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 일은 없기만을 바란다.

그래도 나는 투표율에 희망을 건다. 만약 서울 시장 선거에서, 평일 보궐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의 대거 참여로 투표율이 60퍼센트를 넘는다면 그것만으로 기성 정치판을 뒤엎는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나라당도 민주 진보 세력도, 그처럼 폭발적인 젊은이들의 참여를 목격한다면, 전향적인 자기 변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참여의 거대한 물결이 내 모든 잘잘한 염려들을 짓밟고 지나가 버린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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